한양도성 순성놀이의 과제

고도가 떨어질수록 인왕산 정상이 점점 멀어져간다. 성곽 보수를 위해 설치된 공사용 안전 가림막 바탕에 한양도성에 관한 탄탄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진과 전통 그림들로 차 있다. 공사용 가림막의 변신은 등산로의 불편함을 극복하며 산속의 작은 역사관이 되어준다.
태양의 기세가 서서히 수그러지는 오후, 싱그럽게 퍼져나가는 녹색 향기를 맡으며 사뿐사뿐 발걸음을 내딛기에 딱 좋은 날이다. 순전하게 드러난 성곽을 끼고 한참을 내려오니 얼마 전까지 걸쳐졌던 ‘한양도성 인왕산구간 군 초소 철거 및 성벽복원공사’라는 공사 안내판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한양도성 내부 순성길로 내주었다.

조선 시대 봄과 여름 두 번에 걸쳐 도성의 안과 밖을 구경하는 이른바 '순성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성곽을 한 바퀴 돌면서 한양의 변화하는 계절의 풍류를 즐기며 나름의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도성이 잘리고 파손되면서 순성놀이의 맥도 함께 사라졌다. 광복 이후에도 남산에는 미군과 국가정보기관이, 인왕산과 북악산에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성곽 일대에 눌러앉으면서 순성놀이는 여전히 어려웠다.

세계적으로 외부로부터 도성을 방어하고 지방 도시와의 경계를 지은 성곽은 많지만, 서울처럼 도시 전체를 성곽으로 에워싸는 도시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특히, 20㎞가량의 도성을 600년 이상 유지하는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고 한다. 서울을 상징하는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면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가 보인다. 한양도성을 통해 켜켜이 쌓여있는 서울의 시ㆍ공간을 둘러보고, 듣고, 걸으면 새로운 서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몸은 거리를 두고 마음을 가까이하기에 한양도성만 한 곳이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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