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과 산호빛 바다, 그리고 재즈의 리듬으로 기억되는 쿠바가 지금은 낭만이 아닌 경계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 외교부가 한국시간 11월 12일 오후 9시를 기해 쿠바 전역에 여행경보 1단계(여행유의)를 발령했다. 이유는 단 하나, 모기가 전하는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치쿤구니야열과 뎅기열이 쿠바 전역에서 확산 중이며, 외교부는 현지 체류 국민과 여행 예정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번 경보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카리브의 여름을 덮친 전염병 확산은 이미 지역 보건당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에 근접했다. 이 두 질병은 모두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에 의해 전파된다. 한 번의 모기 물림이 단순한 가려움으로 끝나지 않고 고열, 두통, 근육통, 관절통, 그리고 심할 경우 출혈과 장기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쿠바의 열대 기후는 이런 바이러스가 퍼지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최근 몇 주간 감염 신고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외교부는 쿠바의 의료 인프라와 방역 여건을 감안해 예방적 조치로 이번 경보를 발령했다.

‘여행유의’는 단순한 경고 문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다. 출국을 금지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여행을 강행할 경우 개인이 감수해야 할 위험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즉, “간다면 생명을 지킬 준비를 하라”는 신호다. 쿠바의 의료 체계는 국가 주도형으로 잘 갖춰져 있지만, 전염병 확산 시 외국인 여행자가 신속히 진료받기는 어렵다. 수도 하바나를 제외하면 지방 병원의 시설과 약품 공급이 불안정하며, 숙소 주변의 위생 상태도 들쭉날쭉하다.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바라데로 해안과 트리니다드 지역에서는 방충망이 없는 숙소가 여전히 많고, 모기기피제조차 구하기 힘들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하바나와 산티아고 데 쿠바를 중심으로 고열과 관절통을 호소하는 외국인 사례가 이미 보고되고 있으며, 일부 여행객은 증상이 악화돼 긴급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 정부는 대규모 소독작업과 모기 서식지 제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고온다습한 환경 속에서 번식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은 여행 전 반드시 「2025년도 바이러스성 모기매개감염병 관리지침」을 확인할 것을 권고했다. 해당 지침은 개인 예방이 최선의 방역임을 강조하며, 야외활동 시 긴 소매와 긴 바지 착용, 노출 부위에 DEET 또는 이카리딘 성분의 기피제 사용, 숙소 내 방충망·모기장 점검을 기본 수칙으로 제시한다. 귀국 후 발열이나 근육통이 발생할 경우 병원 진료 시 해외여행 이력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
국내 여행사들은 이번 경보 발표 직후 쿠바 상품의 일정 조정과 환불 문의 대응에 들어갔다. 연말 시즌에 맞춰 예약된 하바나·바라데로 노선 상품들은 대부분 고객 안내문을 발송 중이며, 일부 항공사는 수수료 없이 일정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여행업계는 “지금은 여행 취소보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외교부는 쿠바 내 감염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필요 시 경보 단계를 상향 조정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쿠바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평균 기온 상승과 장마 패턴의 변동이 모기 서식지를 확대시키고 있다. 과거 열대에 국한됐던 치쿤구니야·뎅기·지카바이러스가 이제는 온대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쿠바의 이번 경보는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인류 보건위기의 한 단면이다. 낭만과 음악의 섬 쿠바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여행을 미루는 것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 된 시대다.
카리브의 노을은 여전히 붉게 타오르지만, 그 빛 아래에서 모기 한 마리가 전 세계 여행의 흐름을 멈춰 세우고 있다. 쿠바는 지금, 낭만 대신 경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