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패는 용산·마포·서강 등의 한강을 통한 생활필수품의 물류 거점 지역

세종대로를 따라 서울역 방향으로 내려가다 가로질러 건너자마자 되돌아 올라오면 숭례문과 거리를 두고 다시 마주한다. 조선의 도읍지를 한성으로 정할 때 관악산의 화기를 막고자 숭례문 밖에 못을 팠다고 한 남지 터南池址를 지나면 서울시 중구 칠패로가 자리한다. 이 일대가 조선 시대 최초의 시장으로 여기는 칠패시장 터이다. 조선 시대 5군영은 군영마다 8패牌로 나누어 구역을 순찰하였다. 지금의 봉래동 일대는 5군영 중에서 어영청 소속의 7패牌 순청巡廳이 있는 이유로 ‘칠패시장’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칠패는 용산·마포·서강 등의 한강을 통한 생활필수품의 물류 거점 지역이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살길이 막막한 농민들이 칠패로에 모여들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실학자 박제가는 ‘한양성시전도가漢陽城市全圖歌’에서 칠패七牌, 이현梨峴, 종루鍾樓를 한양의 3대 시장이라고 소개하였다.

1414년 태종 때 숭례문 근처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것이 최초 시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는 남대문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칠패의 설치시기가 불확실하다는 주장에서도 최초에 시장이 들어선 곳은 숭례문 밖의 ‘칠패시장七牌市場’을 자연스럽게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한편, 칠패와 인접한 남대문시장의 태동은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함과 동시에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되고 남창동에 전국의 대동미를 출납하는 선혜청宣惠廳이 들어선 데서 비롯되었다. 백성들로부터 공물로 받은 대동미를 선혜청에 보관하였다가 관아의 비용이나 관리들의 녹봉으로 주었기에 관리들은 받은 쌀로 어물, 채소, 옷감 등으로 바꾸어 갔다. 이렇게 선혜청 일대는 자연 발생적으로 주막, 도매상, 소매상, 중개상이 법석대는 저잣거리가 형성되어 시장으로 번창해갔다.
선혜청 특수로 인해 인근의 칠패시장의 기능이 지금의 남대문시장으로 점차 옮겨갔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칠패가 없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한양의 역사와 모습을 노래한 한양가漢陽歌에서는 “칠패의 생선전에 각색 생선 다 있구나.”라고 읊었던 19세기 중엽까지 칠패시장이 존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남대문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실향민들이 몰려들면서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각종 물품이 닥치는 대로 거래됨으로 인해 장안에 ‘아바이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남대문시장이 최고의 활황을 누린 시기는 1980년대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이 개최하면서 외국 관광객까지 대거 몰려오면서부터였다. 많은 사람이 물건값을 부르고 깎는 흥정이 흐르는 가운데 생활 정취가 질펀하게 깔렸던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이르면 성벽의 흔적을 재현하고 한양도성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6~7단의 석재를 가지런하게 쌓은 담장이 인도와 경계를 이룬다. 성벽을 원상으로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더라도 한양도성이 지나간 자리라는 점을 상징하듯 돌의 구조가 웅장하고 품격을 갖추었다는 데서 인상적이다. 개중에는 담장 아래로 한양도성의 정겨운 옛 돌이 듬성듬성 차지하고 위로는 큼직한 조경석으로서 고풍 감각이 풍부하다.
빌딩 숲을 헤집고 나타나는 파란 하늘은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하얀 구름과 조화를 이루며 맑은 빛을 하염없이 쏟아내는데, 한양도성의 단절된 구간은 길게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 도심을 떠올리면 답답한 마스크 차림에 사람에게 치이고 매연으로 숨 막히는 따위를 우선 연상하지만, 한양도성이 지나간 자리라서 그런지 불편한 감상은 사라지고 아늑한 느낌으로 의미심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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