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 한강 나루로 바로 가기 위해 세워진 남소문은 1469년 의경세자懿敬世子가 남소문이 열린 이유로 죽었다 해서 문을 폐쇄

 

1963년 우리나라 최초 실내 체육관으로 개장한 장충체육관 모습이 드러낸 대로에 다다르자 한양도성의 수직 단면이 예리한 칼로 벤 듯 한 자세이다. 성 돌의 크기가 메주만 한 것으로 보아 세종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 정비된 한양도성에 올라서서 서울신라호텔 울타리와 경계를 지은 도성 내부 순성길로 진입한다.

장충체육관 국립극장 구간
장충체육관 국립극장 구간

성벽을 끼고 오솔길처럼 좁다랗게 개설한 내부 순성길에는 머지않아 초록으로 그려지게 될 봄기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꽃길을 내딛는 심정으로 걸어가는 동안 길은 향기를 발산하고 쌓인 피로가 위안을 받는다. 잠시 멈추고 고개를 반쯤 돌리면 서울의 전경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이곳이 TV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 까닭은 실물보다 화면에서 보는 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남산 배경이 신라호텔에서 반얀트리호텔로 바뀔 무렵 추억이 서린 '다산팔각정'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성곽마루'로 이름 붙여진 누각에 오르면 남산 소나무 숲 사이로 성벽의 패턴이 아스라이 들어온다. 걸으면 보이질 않았을 성벽이 멈추자 비로소 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남산의 늘 푸른 소나무처럼 묵묵히 서울을 지켜온 서울한양도성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가.

도성 답사를 작정하고 나선 첫 길에서 남소문南小門 터를 찾고자 빈틈없이 찾아다녔음에도 포기한 적이 있었다. 새 날을 잡아 재도전 끝에 장충단로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왼쪽 인도에서 발견하고 나서야 감회는 특별했었다. 남소문은 한양도성과 함께 축조하였지만, 해체를 거듭하며 수난을 겪었다.

세조 때 한강 나루로 바로 가기 위해 세워진 남소문은 1469년 의경세자懿敬世子가 남소문이 열린 이유로 죽었다 해서 문을 폐쇄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내면서 아예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언급은 조선 전기의 남소문이다. 조선 후기는 일제 강점기에 망가진 것을 1975년에 복원한 광희문이 남소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간을 허락해 준 반얀트리호텔 편의시설에서 짧은 쉼표 하나 남겨놓고 남산으로 진입하자 국립극장이 산자락에서 터주처럼 눌러앉아 있다. 해오름극장은 전통예술을 동시대적 예술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며 우리나라 공연예술 역사를 함께 온 국립극장의 대표 공연장이다. 해오름극장을 스쳐 지나가듯 시선 밖에 떨궈 놓고 남산으로 더 깊이 발을 들여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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