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북한군의 청와대 기습 시도 후 닫혀 있다가 52년 만인에 2020.11.1. 비로소 개방

 

암문을 통해 순성길 안으로 들어오자 시원한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불어대며 부드러운 길로 안내한다. 이 일대는 청와대 바로 뒤편으로 나 있는 구간인데, 1968년 북한군의 청와대 기습 시도 후 닫혀 있다가 52년 만인에 2020.11.1. 비로소 개방되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철문 열쇠를 직접 따고 전문 산악인들과 이 일대를 걸었던 장면이 방송으로 나갔었다.

이제 군사시설은 철거되었고 너른 공간이 이념의 때를 훌훌 털어버리고 시민들 품으로 되돌아왔다. 봉인이 해제된 이 일대는 답답한 시야 확보를 위해 쓸데없는 나무를 베어버리면서 백악산 조망 명소로 자리 잡았다. 동쪽으로 망우산과 용마산, 아차산, 검단산, 예빈산 그리고 남쪽으로 남한산, 청량산이 거리낌 없이 시야를 차지한다.

 

 

암문 입구로 되돌아와 백악곡성白岳曲城으로 향한다. 하늘과 맞닿은 길에 초록 터널이 만들어졌다.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흔들어 바람을 부른다. 이 안에 내가 갇혀 있다니 너무 행복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낯가림 없이 쉽게 내어주는 무장애 길은 호흡을 거듭할수록 머리가 상쾌해진다. 나뭇잎이 햇살에 부딪혀 반짝이는 초록 숲으로 이어진다. 햇살을 가려주는 숲속 그늘에서 싱그러운 내음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종종 하늘이 열리더라도 푸른빛이 쏟아지니 상쾌하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산행인지 산책인지 도무지 분간이 어렵다. 아니다, 산행인들 산책인들 의미를 부여한다는 자체가 분에 넘치는 투정질이고 사치성 호사일 뿐일 것이다. 비록 고도가 낮고 평탄한 길이라도 산행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긍정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백악곡성에 바라본 북악산 정상과 한양도성 / 한양도성 제공
백악곡성에 바라본 북악산 정상과 한양도성 / 한양도성 제공

 

산책로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관계로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갈림길에서 잠깐의 수고를 보태어 곡성으로 치고 오른다. 산행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맛보기에 불과한 찰나의 거리에서 이미 시야는 숲에서 벗어나 산행 상태로 바꿔놓았다. 곡성曲城은 주요 지점이나 시설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성벽의 높은 곳에서 둥글게 돌출시킨 전략적인 시설을 말한다.

곡성은 성곽 바깥에 대한 관찰이 쉽고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매우 효과적인 구조이다. 곡성은 흥인지문興仁之門에서 성문 앞에 적의 접근을 차단할 목적으로 반원 모양으로 빙 둘러친 옹성甕城의 기능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곡성 마루에 올라채면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한양도성의 당당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조망된다. 고개만 돌리면 산 아래에 차분하게 내려앉은 부암동 풍경이 들어오고, 선명하게 색칠한 하늘의 자리가 깔끔하게 산과 경계를 그으며 가을 전령사다운 차림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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