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환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소록도의 아름다운 유산을 길이길이 기억

전라남도 고흥반도 끝자락과 맞닿은 섬, 소록도(小鹿島)는 일제가 한센병 환자를 분리하는 수용시설로 이용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가 모여 강제 수용되었다. 이들은 강제 노동, 일본식 생활 강요, 강제 불임 시술 등으로 인권과 신체의 자유를 철저히 유린당했다. 아직도 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름에서 시사하듯 어린 사슴의 서글픈 눈망울처럼 슬프고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이다.
어릴 적 소록도는 일반 사람이 갈 수 없고 가면 안 되는 두려움의 땅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소록도 사람들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고 그릇된 편견이 지워짐에 따라 이들의 삶을 애잔하게 들여다보고 따뜻한 동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 필자에게 소록도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번져가며 가보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첫차로 천 리를 내달려 녹동 전통시장에 이른다. 시장기가 재촉하는 때와 맞물려 향토 음식거리가 줄줄이 늘어져 이방인의 마음을 훅 끌어당긴다. 꾸덕꾸덕 말린 장대와 서대가 끼리끼리 짝을 지고 고만고만한 크기로 저마다의 바구니에 진열된 어물전부터 짭조름한 고소함으로 감동의 반찬으로 여겼던 갖가지 젓갈과 향긋한 제철 봄나물까지 온갖 기운으로 코의 본능을 부채질한다. 여기에다 갓 쪄낸 형형색색의 떡과 전 부치는 냄새가 빠질세라 미각을 부추긴다. 누군들 참을 재간 없이 침샘이 반란을 일으킬 만하다.
소록대교를 건너는 차창으로 비집고 들어온 봄바람에 바다 향이 보태져 상큼한 계절의 정취가 물씬한 가운데 봄은 한반도 곳곳을 꿰차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완연해졌다. 봄철이면 어김없이 텁텁한 공기로 들숨과 날숨을 불편하게 했던 도시를 벗어나 청정해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선한 산소에 포화되어 호사를 누린다.

소록도에 들어서면 초입부터 처연하게 얼룩진 아픈 사연이 기다린다. 이곳 수용소에서 한센병 환자와 그의 어린 자녀는 한 달에 단 한번 면회가 허용되었는데, 전염을 우려한 나머지 미감 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옆에 떨어져 눈으로만 혈육의 정을 나누고 탄식으로 눈물만 삼켰다. 이렇게 탄식의 정을 나눈 데라 해서 여기를 '수탄장(愁嘆場)'이라 부르게 되었다.
섬에는 자치권을 요구하다가 84명이 처참하게 학살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애환의 추모비`와 죽은 자는 의당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어 해부실로 사용되었던 `검시실` 그리고 온갖 강압적 수단으로 환자들을 노역에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기금을 강제 징수하여 자신의 동상을 세운 수호 마사쓰에(周防正李) 만행 등의 현장과 자료 기록관이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섬 바닷가는 시원스럽게 펼쳐진 백사장과 빽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청정 남해의 경향을 보여준다.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찾은 소록도이기에 아름다운 자연 앞에 주체할 수 없는 환희로 가득해야겠지만, 수많은 사람의 얼룩진 기억들이 도사리고 있는 까닭에 무거운 생각이 감정을 억눌리며 숙연하게 만든다. 그들은 그립도록 보고팠을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이 바다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달랬으며, 애절함을 헤아린다면 바다보다 하늘보다 더 깊고 높았을 것이다. 짓눌리게 아픈 심정은 천근만근 더 무거웠을 그들의 삶은 누가 어떻게 보상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지 마음이 막막하다.
지금의 소록도는 과거의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품은 아름다운 섬으로 거듭났다. 소록도가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섬으로 이어지기까지 이곳 중앙공원이 한몫하였다. 공원 조성은 한센병 환자만으로 연인원 6만여 명이 강제 동원되었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손으로 땅을 파서 나무를 심고 맨몸으로 가꾼 공원은 예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다. 성하지 못한 장애를 가지고 오직 피와 땀으로 섬 전체를 가꾸었다는 데서 그들에게 진정 경의를 표한다.

여왕의 계절, 오월의 소록도 하늘은 미세 먼지 하나 없이 맑디맑고, 신록은 어제보다 한층 더 짙푸르다. 싱싱한 대기를 들이켜고 뱉을 때마다 속이 정화된 듯 가슴이 상쾌하다. 하지만, 나병은 널리 알려진 속설과 달리 전염성이 강한 병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들이 어렵고 힘들 땐 보태준 것 하나 없이 무관심으로 방관하다가 그들이 살신성인으로 이룩한 아름다운 섬에 어찌하여 머물며 치유하고 얻어만 간다는 게 두렵고 미안한 마음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위와 명예를 따지고 주머니 속의 돈을 헤아릴망정 한센병 환자들의 애잔 삶을 깊이 되새기며 그들이 남기고 간 소록도의 아름다운 유산을 길이길이 기억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