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대 주변에 갖가지 구부러진 모양의 나이 먹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행위예술 향연을 드러낸다
정상 못지않게 조망을 갖춘 청운대에 이른다. 청운대 주변에 갖가지 구부러진 모양의 나이 먹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행위예술 향연을 드러낸다. 선선한 바람이 수런거리며 주변을 맴돌다가 풍경 따라 도성 밖으로 퍼져나간다. 솔향에 마음을 다독이고, 코로나로 답답했던 일상의 찌든 때를 쓸어버린다.

도성 밖으로 나가고자 가설 육교를 통해 담을 넘다가 육교 마루에서 잠시 시선을 고정한다. 북한산과 백악산 사이에 자리 잡은 평창동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평창동이라는 지명은 선혜청宣惠廳의 부속 창고인 평창平倉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도성 바깥에 키 높은 성벽이 길게 드러난다. 고요함이 짙게 깔린 오솔길이 성벽을 따라서 나란히 줄을 댄다. 한양도성을 걷다 보면 거창한 역사 이야기에 심취하기도 하지만 촘촘한 성벽 틈새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들이 자신의 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신들만의 종을 유지하고자 눈물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동이 일렁거린다. 자연은 어느 때를 추려서 지목하기보다 자기만의 빛을 가지고 순수한 생기로 가득한 바로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겠다.

백악 구간의 유일한 도성 밖 체험은 백악곡성과 성벽 바깥 부분을 더 섬세하게 관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네모반듯하게 큼직한 성 돌 하나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게 완벽함의 극치를 이룬다. 이 구간에는 숙종대와 순조대의 네모난 정방형의 성 돌이 주축이지만 세종대의 두루뭉술하게 메주만 한 성 돌이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입힌 채 듬성듬성 출연하며 시대별 축성을 대비시켜준다.
도성과 대면하며 도란도란 어깨동무하듯 간격을 유지한다. 예전의 이 길은 군사들이 성의 둘레를 순찰하는 순성길이었다. 당시의 군사들이 투철한 직업관을 가지고 긴장감이 무겁게 깔렸던 길이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부담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자연 탐방로이기에 감사한 마음이 솟는다.

산에 올라 숲이 있으면 생각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9월의 신록을 바라보면 눈과 머리, 가슴이 맑게 씻겨나간다. 이런 신록 속에서 유장한 세월과 함께 이어오는 한양도성이 있는 까닭에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못하고 반복해서 이곳을 찾게 한다. 자연에 심취하는 동안 일상의 잡념마저 산바람이 덥석 물고 날아간다. 세속의 탐욕마저 저 하늘로 날려 보낼 수 있다면 누구나 신선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이곳에 눌러앉지 않을까 한다.
성곽 밖에서 경비 목적으로 설치한 철조망과 철문이 꼴사나운 모습으로 비친다. 한양도성은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물이다. 한양도성과 바짝 붙은 흉물스러운 잡철물이 언젠가는 걷어 치어질 이념의 산물일지라도 당장이라도 매끈하게 정비되었으면 좋겠다. 언짢게 바라보는 심정에서 가슴이 저미며 마음은 철물만큼 무겁다. 비록 이런 바람이 소수에서 시작되었더라도 공감을 이루어가면 중론으로 발전하여 결국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