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는 사람들

 

 

 

편지쓰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1990년대 중반, 시트콤 드라마작가 데뷔를 앞두고 꿈에 부풀었는데 갑자기 무산되어버렸습니다.신인 작가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 방송국의 시스템을 이해는 합니다만... 그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전주로 내려갔어요. 서울에 더 있고 싶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데다 글을 써야 하는 동력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계속 몸이 아프고,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우울증에 불면증이 겹치며 밤을 새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글에 대한 욕망을 편지로 썼던 것 같아요. 친구와 선배, 동료 등 여러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무도 답장을 하지 않았어요. 전화로만 편지 잘 받았다는 얘길 들었지요.

​제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것은 아마도 편지를 받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그때 저는 위로받고 싶었거든요. 진심이 묻어나는 위로와 격려가 몹시 그리웠어요.

그때가 1998년, IMF로 인해 뉴스에서는 연일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내가 저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뭔가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자원 봉사를 찾다가 되도록 저를 드러내지 않고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편지를 생각하게 되었구요. 제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편지쓰기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우체국에 사서함을 만들고, 작은 잡지에 광고를 냈어요.

 

어느 날 문득 누군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고 싶지 않으세요? 그런 분들께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원하시는 분은 먼저 신청 편지를 보내주세요.

그 광고가 실린 줄도 몰랐고,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이 신청 편지를 보내올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광고를 낸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 날 무심코 사서함을 열고 가득한 편지들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편지를 읽고서야 반산반의로 낸 광고가 잡지에 실린 걸 알았지요. 학생,주부,군인,직장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100여 통의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며 저는 울컥했어요. 이름도, 사는 곳도 다 저마다 달랐지만 그 편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외롭다고.

 

​그날부터 그 편지들에 일일이 답장을 쓰며 제 편지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알록달록한 편지들 속에 아주 낯선 편지가 있었어요. 바로 담장 안에서 온 편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분들과의 편지는 다 끊어지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그 편지들만 이어졌습니다.

1998년  8월에 시작된 [편지쓰는 사람들]은 수용자분들과 편지를 나누는 비영리모임입니다. 저희와 편지 나누는 분을 "편지친구"라고 부르며 저희의 역할은 이름 그대로 편지로만 소통하는 편지 친구의 역할입니다. 또한 담장 안에서만 편지를 나눌 뿐 사회에 나가시면 편지를 나누지 않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왜 호의를 베푸느냐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차라리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어르신'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저희가 아니어도 그분들은 도와주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만 수용자분들은 다릅니다.

 

 

비난과 편견으로 점철되어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그분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수용자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지만 누구나 수용자가 될 수도 있고, 또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가족이나 친구가 수용자가 될 수도 있고, 또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수용자분들을 두둔하거나 미화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분들이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안에 계신 동안 만큼은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면 좋겠습니다. 많은 수용자분들이 편지쓰는 사람들 앞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물론 편지 나눔을 위해서지만  그보다 더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편지를 통한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과 시선이 아닐까요? 편지 한 통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편지 쓰기는 아주 작은 일 같지만 꽃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일처럼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직접 체험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갇힌 곳에서 , 몸도 마음도 추운 그곳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햇볕입니다. 마음의 빛이 되어주고,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햇볕.

 

기억해주세요. 당신의 편지 한 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이 되고, 그 기다림이희망이 된다는 것을요.

언제든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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