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정녕 황혼이 아름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것
올라가는 방법만 배웠지 내려오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바람이 옷깃을 잡아끄는 산비탈
커다란 삶의 질곡처럼 엉키고
뒤섞인 돌들
딱딱한 질감의 어깨를 결박하고
무덤 되어 쌓여있다
돌무더기 위
엇각의 모순에 기대여
완벽한 중심을 잡고
하나둘 쌓아 올린 돌탑들
딱딱한 돌탑에 스민 사연은
간절하고 경건하다
세찬 바람이 불면 헐렁한 돌탑
관절의 마디가 위태롭고
온몸에서 소멸하는 탈진감으로
다양한 사연과
소망의 탑들이 무너져 내리면
돌탑은 돌무덤 일부가 되고
또다시 일상이 되며
돌무덤에는 누군가의 사연이
또다시 쌓이리라.

저녁노을이 산 아래로 스며들면 겨울 숲은 더욱 고요해지고 적막이 흐르며 등산객의 발길도 뚝 끊어진다.
숲은 검은 나목으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소란스럽게 떠들어 대던 까치도 까마귀도 숨을 죽이고 까칠하게 말라버린 느티나무에 걸린 달 한 조각만 유일하게 오솔길을 안내하는 등불이다.
완만하게 늘어진 오솔길 따라 게으른 산행을 하며 오후의 겨울 숲에서 명상하며 걷는 기쁨은 하루의 행복이자 걷는 자 많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산에 오를 때 보다 산에서 하산할 때 부상의 위험이 높은 것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다시피 최정상에 군림할 때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存)을 외치고 대원군 시절 유래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一紅)이요”라는 말은 권력의 무상함을 이르는 말이고 한 때의 부귀영화와 권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우스갯소리로 소위 말하는 노년에 국립호텔에서 국가가 제공해주는 숙식을 해결하는 사태는 모두가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사리사욕에 눈멀거나 내려올 때를 모르거나 정점에 서 있을 때 올라가는 방법만 배웠지 내려오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데서 초래한 비극이다.
아무리 내가 왕년에 누구인 줄 알아 큰소리를 쳐도 그것은 무의미한 외침일 뿐이며 인생은 정녕 황혼이 아름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서산에 기우는 노을을 등지고 깊어가는 겨울 숲에서 꿈결 같은 하루를 마감하고 작은 소망과 꿈이 있고 아직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비탈진 언덕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뒤를 돌아보게 한다.
겨울의 숲으로 간 것이 내가 아니라 겨울로 가는 숲을 따라간 하루의 여행은 내 삶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또 다른 나의 끝나지 않은 시간 속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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