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앞에 계곡도 단풍에 흔들리며 젖어가고 내 눈동자도 붉게 물들어 눈물이 흘러내리며 만추의 가을 속으로 고여 간다.

칠보산 쌍곡으로 가는 길은 성글 듯하고 허허롭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을씨년스러움으로 공허한 품을 간직하고 밀물이 밀려가듯 산언덕 밑창까지 파고 들어있다. 여름내 펄럭이던 허수아비는 할 일을 잃어 나태한 모습으로 누워있고 알곡을 털어낸 누런 볏짚이 고요하고 따뜻한 질감으로 들판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다.
시원하고 한적하게 뚫린 도로를 달려가다 좁은 소로를 굽이치며 오르는 길과 만나면 도로 옆의 가로수나 산맥의 능선이 형형색색 가을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고 붉게 물들어 가는 군락을 밀어내며 자동차는 달려간다. 속리산 깊은 골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먼 길을 줄기찬 기세로 달려오면서 시내를 이루다 하구에서 몸을 부풀려 넓은 물줄기를 이루어 들판으로 자양분을 실어 나르며 하천이 되고 강이 되어 흐른다.
고지가 높아지고 산맥의 깊은 가슴속으로 들어갈수록 주변 풍경이 경이롭게 변화를 시도 한다. 운무가 하얗게 깔려 산과 산 사이가 흐릿하게 선을 이루며 웅장하게 솟아오른 산맥의 계곡 사이에서는 용이 트림을 하고 승천하며 나타날 것 같은 기세이다. 산맥의 허리가 길게 드리우며 산세는 깊고 높으며 운영(雲影)이 켜켜이 겹쳐 산봉우리 위에 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 뒤에 또 다른 고봉들이 하늘처럼 운해에 떠돌며 산하를 압도한다.
산이 높아가고 골은 깊이를 더하며 골의 길목을 따라 고이다가 흐름을 반복하던 운무의 무리는 낮게 깔리며 계곡의 물길과 만난다. 속리산 자락을 달려 내려와 화양구곡을 섭렵하고 솟구쳐 올라 칠보산 지맥을 따라 절정으로 치달아 쌍곡계곡의 수려한 비경을 만들어 내며 산맥들을 병풍처럼 아우른다.
쌍곡계곡 입구의 소금강의 웅장한 자태는 긴 숨을 토해내며 아득한 절경 앞에 자지러지기에 충분하다. 때마침 휴게소에서 흘러나오는 소프라노 그리운 금강산과 양희은이 부르는 한계령 선율은 가을 그리고 소금강 이라는 주제로 아득한 절경 위에 펼쳐진 자연의 무대와 단풍과 어우러져 취해가며 농익은 가을의 깊이를 느끼며 우수에 잠긴다.

물소리도 풍경이 되어 흐르고 물은 바람을 일으키며 맑은 계곡을 돌아든다. 소금강은 풍화의 세월 앞에 의연하고 화선지 위에 일필휘지로 흘러내리듯 펼쳐진 아름다움에 초연하다. 들풀처럼 태어나 바람처럼 흩어지며 살아가는 미력한 존재일지라도 생이 존재하는 동안 산과 들에 어우러져 제 몫을 다하고 싶다.
흙으로 풍화되는 한 떨기 들꽃이 아름답고 가을이 절정으로 붉게 물들다 슬픔처럼 바람에 팔랑이며 물 위에 떨어져 흘러가도 여린 단풍잎 하나에서 가을은 오고 또 저물어간다. 깊어가는 가을 앞에 계곡도 단풍에 흔들리며 젖어가고 내 눈동자도 붉게 물들어 눈물이 흘러내리며 만추의 가을 속으로 고여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