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감에 있어 이유를 달지 말자. 

 

시골 마을 동구 밖 수백 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는 여름내 번성한 가지가 무거워 길게 바닥을 향해 늘어트리고 있다. 하릴없는 마을 어르신들은 선선한 가을바람에 헐렁한 옷깃 사이로 여름의 더위를 날리며 장군 멍군이 한창이다. 파란 물빛 하늘은 성글어 저무는 노을에 자줏빛으로 물들어가고 파랑과 자줏빛이 어우러져 수채화처럼 곱게 물든 실구름이 곱다.

구름은 흉내 낼 수 없는 마법의 따사롭고 신비로운 햇살과 바람으로 이상하고 신비한 하늘 위 동화 속 미술관을 차려 놓았다. 가을빛 물든 하늘 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촌락 뒷동산 언덕 위 뜬금없이 요란한 소리가 난다. 밤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가을바람에 머리를 흔들며 토실한 밤알이 가을의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뚝뚝 익어가는 소리이다.

툭툭 투두둑 숲 풀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던 산비둘기가 놀라 푸드덕 날갯짓 하며 꽁지 빠지게 달아난다. 신이 난건 동네 꼬마 녀석들 떨어진 밤송이를 까는 것이 제법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어쭙잖은 도시 농부보다 신나게 놀이하듯 밤을 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해맑다.

 

밭둑 옆 언덕 위에 어지럽게 피어있는 보랏빛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서로 가을을 다투고 있고 밭고랑 골골 마다 튼실한 고추가 빨갛게 익어간다. 골짜기 따라 흘러내리는 개천 옆 물가에 무리지어 피어난 갈대가 바람에 일렁거리면 산마루 노을이 투명하게 물들어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금빛인 듯 은빛인 듯 눈이 부신다.

실개천에 돌 틈 사이 둥지를 튼 고마리 꽃잎 위에는 무당벌레가 까만 점을 찍어가며 가을이 동화처럼 깊어진다. 물가의 물봉선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여인의 입술같이 붉게 물든 꽃잎을 사위고 나면 씨방을 로켓처럼 부풀려 누군가 건드리면 펑 하고 터지며 물가 여기저기로 날아든다.

들풀과 나무도 씨앗 한 톨에 가을을 담아 여기저기 분주하게 날아가 생명의 기원을 창조하기에 분주하다. 시골 들녘의 가을은 여기저기 수다스럽게 흔적을 남기며 익어 간다. 가을인가 싶어 풍요와 넉넉함의 기쁨을 즐기고 있노라면 가을의 행복도 잠깐, 수다스럽던 가을은 들판의 바람을 따라 소리 없이 소멸의 길로 증발한다.

산내들에 고운 단풍 물들이며 깊어가는 가을날엔 북풍의 바람을 타고 모두가 성글고 헐렁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빈 들판과 갈비뼈를 들어낸 산언덕을 바라보며 가을도 그렇게 떠나갈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외로움이 고여 가는 가을날이 고독할지라도 마음껏 즐기고 노래하자!

삶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감에 있어 이유를 달지 말자. 오늘 마음껏 사랑하고 깊어가는 가을날처럼 처연하게 흘러가는 파란 하늘 구름 같은 코발트 빛 사랑에 젖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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