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알아가기 보다 이해할 수 있을 때 사랑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의 산맥들이 여기저기에서 타들어 가고 있다. 무더운 여름의 자취를 뒤로하고 녹색의 산들이 술렁이며 변화를 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단풍들은 고운 자태로 진군을 시작한다. 산의 허리를 돌아 높은 곳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듯 변화하고 북에서 남으로 오색의 단풍이 바람에 날리듯 산맥을 점령하고 변화시킬 것이다.
지리산자락이 품은 하동의 쌍계사 계곡을 따라 오르다 잔잔한 가을 햇살에 흔들리며 불연 듯 눈앞에 나타난 고운 빛깔의 단풍을 잊을 수 없다. 붉은색 노란색 알록달록 아기단풍이 빛으로 반짝일 때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파란하늘을 스케치북 삼아 흔들릴 때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가을은 소리 없이 익어가고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면 왠지 모를 쓸쓸함도 함께 온다. 가을은 산맥을 물들이는 단풍으로도 오지만 산등성이 반짝이는 억새의 일렁거림의 진군으로도 오고 들판의 시냇가 옆에 줄지어 흔들리는 갈대숲 사이로도 온다.

황혼의 들녘에 노을빛이 물들면 갈대숲은 황금빛으로 출렁이기 시작하고 곱게 따 내린 어린아이 비단 채 같은 갈대의 수술은 바람에 머리를 흔들며 꿈꾸듯 춤을 춘다. 가을의 맑은 하늘이 뭉게구름 사이로 자취를 감추면 가을밤이 길게 늘어진 어둠으로 다가온다.
찌르르 찌르르 사 아악 바람 끝에서는 바람도 벌레도 함께 가을을 운다. 풀숲 사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가을밤과 함께 더불어 추억 속으로 깊어가고 있다. 가을바람 속에는 고향의 숨결 같은 냄새가 나고 색이 바라 오래된 흑백 사진 같은 아련함이 배어난다. 가을 달빛에 몸을 온전히 맡기고 고요한 달빛 사이를 산책하면 온몸의 헐렁한 뼈마디 사이 틈새로 가을이 파고든다. 달빛에 물들어 저마다의 모양으로 피어난 가을 들꽃이 달빛에 흐드러지게 젖어 들어 찬바람 속으로 자진하고 사그라진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 흔들리는 코스모스 위에 앉아 숨죽여 중심을 잡고 울타리 옆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한 게 남은 감과 대추나무에 빨간색으로 쪼그라져 익어가는 풍경도 예쁜 그림이 된다. 가을의 사랑은 무르익어가고 그리움의 향기는 짙어져 가면 그리움도 사랑이 되고 외로움도 사랑이 되는 계절이 가을인가 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옷깃을 여미며 파스텔 톤의 아날로그같이 멋스러운 그리움의 사랑에 빠져보고 싶다. 앞으로의 삶을 알 수 없지만 삶의 과정에서 아픔과 고난을 통해서 상대의 아픔에 진정 슬퍼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는 것이며 상대를 알아가기 보다 이해할 수 있을 때 사랑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