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장 중간밭과 아래밭 사이에 경사가 크다 보니 꽤나 높고 긴 돌담이 있어 왔다. 늘 그 자리에 있어왔던 돌담이었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며 지내왔다. 작년에 분양받아 때맞춰 물주고 바람길 터주기 위해 가끔 솎아주었을 뿐인데 우리 농장 수국이 어찌나 크고 탐스러운지 ..
매일 아침 출근하여 주차할 때마다 주차장 한켠에서 사무실로 올라오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고마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잘 커 줘서.
이렇게 아름다워서.
이렇게 결실을 보게 해 줘서."
이렇게 한동안 수국 송이들과 대화하고 예뻐해 주느라. 나이를 먹어서인지, 자식을 다 키워서인지, 농부가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농장에 있는 나무들과 꽃들과 대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열심히 아름답게 꽃피운 수국에게 미안해했다.

코로나의 확산을 예의주시하며 체험농장을 일시적 휴업과 오픈을 반복하다 보니 방문객이 많지 않아 바라봐주며 예뻐해 주는 이 몇 없음을.
그러던 중 아들이 제주 돌담쌓기 봉사활동에 다녀오면서 도련감귤나무숲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수국을 한데 모아 수국 산책길을 조성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래 뭔가 하며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자!"
화산섬인 제주는 돌이 워낙 많아 옛 어르신들께서는 밭을 조성하기 위해서 일일이 호미와 삽으로 돌을 캐서 밭한켠에 손으로 들어날라 모아두어야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과수원이나 야채를 심을 수 있는 밭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모아둔 돌이 이웃집, 과수원, 밭과 경계가 되는 돌담이 되어왔다고 한다.
아래 밭과 중간 밭의 경계를 위해 기존에 있던 높은 돌담길도 이런 이유로 시어른께서 만드신 것이란 걸 알고 보니 그 수고로움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2년차 초보농사꾼에겐 그 수고로움이 더 크게 다가왔나 보다.
"그래, 이 돌담을 활용하여 걷고 싶은 산책길을 만들어보자!"
기존 높은 돌담길과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을 만큼의 간격을 두고 수국을 옮겨 심고 수국 앞으로 돌담을 쌓기로 했다. 걸었을 때 무릎 정도의 높이로 나지막한 돌담을 새로 쌓아 수국이 낮은 돌담 위로 쏟아지게 연출하여 걷고 싶은 수국돌담 산책길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높은 돌담 위에는 동백나무가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동백나무 사이로 산수국이 있고, 아래 돌담 수국 뒤로는 노란 감귤이 주렁주렁 달릴 테니...
겨울에는 동백과 귤나무사이를 돌담이 양옆으로 구비구비 산책길을 안내하고, 여름에는 산수국과 일반 수국 사이의 돌담길을 산책할 수 있으니 제주에 이 만한 돌담산책길이 또 있으랴!
이름도 지었다.
'걷고 싶은 산책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