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의 기상

- 관악산행

 

 

봄은 잠시 왔다 가는 손님 같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기후가 긴 겨울과 여름, 짧은 봄과 가을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봄은 더욱 기다려지고 아쉽고 할 일이 많아 분주하기만 한 것일까? 오월 중 휴일에 문학 행사도 많았다. 주중에는 직장 일로 참석이 제한되어, 휴일 행사에는 가급적 참석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예전만큼 산행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체중도 대폭(?) 늘고 말았다. 하여간 물만 먹어도 살찌는 이 체질적 고민을 어찌 말로 다 하리오. 오늘은 만사 재껴두고 산으로 간다.

 

날씨만 맑으면 관악산 봉우리들의 선명한 자태에 끌려 사람들은 산으로 간다. 마치 횃불이 타오르는 듯한 봉우리들의 조화는 아름답고 뜨겁다. 그래서 옛날 민초들은 이 산을 '불산'이라고 불렀다. 한자를 쓰는 이들은 '화산(火山)'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갓뫼'라 불렀는데, 이는 봉우리가 갓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른 말이다. 지금 부르고 있는 관악(冠岳)이란 이름도 산의 형상이 관(冠)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일찍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데로 인지하고 형상화하고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육안의 눈이란 것이 장소와 거리 등 별별 조건에 따라 제 각각 달리 보이니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보고 알고 있는 것을 남도 똑같이 그렇게 보고 알고 있다는 확신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동일 사실에 대한 인식과 형상화의 범위와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도 그러하다.

 

유월에 들어서자 바위에 뿌리내리고 생명을 키워가는 나무들도 제법 혈기 왕성하다. 여리고 여린 게 생명이라 하지만, 억척스럽고도 강한 게 또한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이 경이로운 것이리라. 바위가 많은 관악산은 특히 이런 생명의 강렬한 기상을 확인할 수 있는 야전교범 같은 곳이다. 바위에 뿌리박고 모진 풍파 견뎌내며 생명을 키워가는 소나무와 마주보고 있노라면, 그 놀랍도록 강건한 기상이 경이롭기만 하다. 하마바위를 지나 마당바위로 가는 길가의 우람한 남근석 또한 그러하다.

 

보통 남근석은 입석(선바위) 형태가 많은데 이 남근석은 와근석이다. 누운 형태로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다. 유심히 살펴보아야 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보통 남녀근석에는 다산과 풍요를 소망했던 고대인의 흔적과 설화가 남아 있는데, 이 남근석에는 그런 증표가 없다. 아마 입석이 아니고, 쉽게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그렇다고 원초적 생명력과 소망의 기상까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동작대교 위에 걸터앉은 붉은 해를

등에 지고 간다네

타오르는 불꽃 능선을

 

바위에 뿌리박고

모진 풍파 견뎌내며

생명을 키워가는 소나무

 

그 옆에서 기를 더해주는

굳세고 힘찬 남근석(男根石)이

조화롭기만 하다

 

생명! 그 기상이

이렇게도 강건하고 경건한데

어찌 함부로 소홀할 수 있으랴

 

(졸시,「관악산의 기상」, 전문)

 

호수공원 쪽으로 하산한다. 장미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흔들의자에 앉아 잠시 지친 발을 위무한다. 유월의 여름 해는 길어 바쁠 게 없단다. 장미향에 취해 한숨 잠이라도 푹 자고 일어나도 시비에 걸릴 일이 없는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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