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건강할 때 자기 변을 변 은행에 보관해두었다가 몸이 아프면 먹어야 할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미 많은 제약회사가 변 자체나 변에서 뽑은 미생물군을 캡슐에 담아 팔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간혹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을 한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 하기보다는 재미로 하는 것 같다. 자신의 흥미나 소질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 판사, 검사 되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치열하게 공부에 매달리는 우리나라 학생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진로선택이다. 그런데 인류의 발전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니 우리 교육 풍토가 아쉽다.

 

신기한 심해저 생물, 거대 관벌레

미 해군이 심해잠수정 앨빈호를 타고 깊은 바닷속을 누비기 시작한 해가 1964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해저에 있는 폭탄 수거 작업을 위해 만들어졌다. 1966년에는 실수로 지중해에 떨어진 수소폭탄을 무사히 수거하기도 하였다. 그간 15,000여 명이 앨빈호를 타고 평균 2,000여 미터, 최고 6,500여 미터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승선하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을 만날지 예측할 수 없으니 아무리 안전한 잠수정이라 해도 일 마칠 때까지 목숨을 내걸고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덕분에 햇빛이 전혀 닿지 않은 깊은 해저에서 기기묘묘한 생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사는 모습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1977년 앨빈호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심해저, 일명 블랙 스모커라고 불리는 열수분출공 근처에서 입과 소화기관이 없는 튜브같이 생긴 이상한 동물 등 생명체가 넘치는 장관을 발견하였다. 후에 튜브같이 생긴 동물은 리프티아(Rifita Pachyptila) 혹은 거대 관벌레라고 불리게 된다. 이 동물은 생김새도 이상했지만 사는 곳 주변 온도는 섭씨 400여 도라고 한다. 이 동물이 발견된 이후로 해저 탐험이 더 활발해져 지금은 아주 많은 해저 생물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밝혀지고 있다.

워싱턴 D.C.에 가면 미국 정부가 1846년에 설립한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가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여기에 속한 박물관, 미술관 등이 엄청나게 커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며칠을 두고 봐도 다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박물관에는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동물을 다 모아놓은 듯하다. 어린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공룡 전시관만 해도 대단하다.

이곳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존스(Meredith L. Jones)는 벌레 전문가인데 1977년 앨빈호 잠수부들에게서 이상하게 생긴 거대 관벌레를 받았다. 입과 내장이 없는 기이한 벌레를 손에 든 존스는 수년간 관벌레가 어떻게 사는지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였으나 알 수가 없었다. 1981년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 중, 존스가 벌레 내장에 침착된 노란색 결정체를 청중에게 보여주자 당시 대학원 1년생인 콜린 카바노프(Colleen Cavanaugh)라는 여학생이 벌떡 일어나 그건 그 벌레 몸속에 황을 산화하는 박테리아가 살며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존스는 비웃었지만 후에 표본을 보내주었다. 카바노프는 자기가 맞았다는 것을 증명해 1981년 사이언스 학술지에 발표했다. 대단한 것은 제1 저자인 자기 이외에는 하버드 그 누구도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도 교수의 지도를 받아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한 일이니까 지도 교수 이름도 저자로 올릴 수 없었다. 카바노프는 1985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89년 하버드대 조교수, 1993년 부교수, 2년 후인 1995에는 정교수로 승진하였다.

이만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성공도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1995년까지 많은 논문을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단기간 내에 그 어렵다는 하버드대 정교수가 되었으니 이 사람의 업적이 얼마나 높이 평가되었는지 알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심해저 생물이 화학합성을 하는 미생물과 공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밝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연구란 이렇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것 같다. 카바노프는 앨빈호를 타고 멕시코 서해안에서 2,500여 미터 심해탐사를 비롯하여 수차례에 걸쳐 직접 깊은 바닷속을 탐사할 정도로 바다생물들을 사랑하였고, 그들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열정에 사로잡혀 모험마저도 기꺼이 감행하는 멋진 학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카바노프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카바노프의 발견 이후로 심해저 생물들의 생활사는 물론 생물체 탄생에 대한 개념마저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미생물과의 공생

이런 카바노프도 모든 일을 혼자 한 것은 아니다. 카바노프가 이렇게 큰 발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러시아 미생물학자 위노그라드스키(Sergei Nikolaievich Winogradsky)이다. 이 사람은 스승의 업적을 이어받아 1,887년 황이 많은 지역에서 사는 베기아토아(Beggiatoa)라는 미생물이 황화수소(H2S) 같은 무기물을 에너지로 활용해 살며 세포 내에 노란 황 결정체를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즉 화학합성을 주장한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녹색식물은 태양에너지를 사용해 광합성을 하여 탄수화물을 만드는데, 심해저에서 사는 생물들은 햇빛이 도달할 수 없어 광합성 대신 화학합성을 하는 것이다.

위노그라드스키는 이 외에도 무기물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많은 미생물을 발견한 위대한 미생물학자이다. 콩과 식물 뿌리에서 미생물이 어떻게 질소를 고정하여 단백질을 만드는지 알 수 있도록 해 준 사람도 위노그라드스키이다. 카바노프는 하버드 대학원생 시절 강의에서 이런 내용을 교수들에게서 배웠는데, 존스가 벌레 내장조직에 노란색으로 침전된 황 결정체를 보여주자 바로 이를 기억해 자기 연구에 적용해 큰 업적을 이룬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칼 워즈(Carl R. Woese)이다. 그전에는 생물계를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둘로 나누었는데 워즈가 이를 박테리아, 아케아, 진핵생물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지금은 워즈의 분류가 인정되어 채택되고 있다.

워즈는 단백질과 RNA로 구성된 라이보좀이 모든 생명체에서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소기관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라이보좀 RNA 16S rRNA를 생물체 계통발생 분류에 이용하여 아케아가 박테리아와는 달리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노벨상 수상자와 유명한 진화학자들도 워즈의 이런 주장을 맹렬히 비난하였으나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인정받아 오다가 지금은 워즈의 분류가 정설이 되었다. 16S rRNA는 현재 미생물 분류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학문이란 이렇게 과거의 업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작 뉴턴마저도 자기는 과거의 위인들 어깨에 올라타서 조금 더 멀리 보았을 뿐이라는 말을 하였다.

카바노프는 선배 학자들이 쌓아놓은 지식을 이용하여 2 미터 가까이 자랄 수 있는 거대 관벌레는 자기 세포 내에 사는 박테리아가 심해저 블랙 스모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화수소 에너지와 바다에 떠도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만들면 이것을 사용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즉 세균이 거대 관벌레를 먹여 살리고 있다. 대신 거대 관벌레는 세균이 대사작용에 활용할 수 있는 황화수소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공급해준다. 즉 서로 공생을 하는 것이다.

황화수소를 이용한 화합합성을 화학적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H2S + 6CO2 + 3O2 C6H12O6(탄수화물) + 12H2O + 18S(노란색 침전물)

H2SS()로 바뀌며 H2S에 있던 전자에너지가 방출되어 박테리아는 이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위노그라드스키와 카바노프의 뒤를 이어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지금은 100여 종이 넘는 화학합성을 하는 공생 박테리아 염기서열이 밝혀졌고, 수백 종의 동물이 숙주로 알려졌다. 우리 주변 수많은 곳에서 박테리아와 동물의 공생관계가 밝혀지고 있다. 심지어 인간도 미생물과 공생관계를 벗어나면 생존하지 못한다.

 

심해저의 열수분출공(Hydrothermal Vent)

바닷속 3,000~6,000m 아래에서 마그마를 감싸고 있는 바위들 틈으로 바닷물이 스며 들어가면 마그마에 의해 덥힌 물이 바위에 녹아있는 무기물들과 함께 구멍을 통하여 바다로 뿜어져 나오는데 이 구멍을 열수분출공이라고 한다. 주변 온도가 섭씨 400도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화산재가 터져 나오듯이 열수분출공에서도 까만 연기가 나오니 이를 블랙 스모커(black smoker)라고 부른다. 블랙 스모커는 유황성분을 주로 내뿜는다. 반면에 칼슘, 바리움, 실리콘 등을 내뿜는 열수분출공은 화이트 스모커(white smoker)라고 부른다. 해저 생명체는 블랙 스모커 옆에서 산다.

블랙 스모커는 1977년 지질학자들이 앨빈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군도의 심해저를 탐사하다 처음 발견하였는데 지금은 전 해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거대 관벌레도 바로 이때 채집되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존스에게 전해졌고, 이 샘플을 카바노프가 받아 해저 생물들이 블랙 스모커에서 나오는 무기물을 탄수화물로 바꿀 수 있는 박테리아와 공생하며 양자 모두 살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카바노프와 동료들은 후에 이렇게 사는 심해저 세균들이 지금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의 조상이라는 주장까지 하게 된다. 카바노프의 성공 뒤에는 이렇게 무관해 보이는 지질학자들의 도움까지 있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점을 다시 느끼게 해 주는 이야기이다.

 

김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치고 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도 김을 무척 좋아한다. 이렇게 맛있는 김을 한국, 일본, 중국의 일부 지역 사람들만 먹는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지금은 초밥(스시)이 유럽과 미국에 전해져 많은 서양인도 김을 먹지만 그래도 우리나 일본인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서양인들은 김을 잘 소화하지 못하니 잘 안 먹는 것이다.

왜 한국인, 일본인은 김을 잘 소화하는데, 서양인들은 그렇지 않을까? 2010년 프랑스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답을 일본인을 대상으로 밝혀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였다. 아직도 서양인들에게는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답은 일본인 장에는 김을 소화할 수 있는 장내 미생물 박테로이데스 플레베이우스(Bacteroides plebeius)가 있는데, 서양인에게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후에 한국인도 장내에 이런 세균을 가지고 있다고 밝혀졌다. 즉 인간의 장 내에 박테로이데스 플레베이우스가 있고 없고 하는 점이 김을 소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김(porphyra)을 소화하는 장내세균 박테로이데스 플레베이우스가 처음부터 김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다에서 김을 갉아먹는 조벨리아 갈락타니보란스(Zobellia galactanivorans)라는 해양미생물은 김을 분해하여 먹고 살 수 있도록 베타포피라네이스(β-porphyranases)라는 효소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 미생물이 김에 붙어있어서 김을 많이 먹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입을 통해 장에 전해지자, 조벨리아 갈락타니보란스가 김 분해효소 베타포피라네이스(β-porphyranases)를 원래 장에 있던 장내 미생물 박테로이데스 플레베이우스에게 전해 주자 이 장내 미생물이 마침내 김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김에 붙어있던 미생물 유전자가 인체 장내 미생물에게 전해지자, 이 장내 미생물이 김을 소화할 수 있게 되어 한국인과 일본인은 김을 먹어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유전자에 김을 소화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김을 소화할 수 있는 장내 미생물이 있어서 우리나 일본인들이 김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김에 많은 포피란(porphyran)이라는 황산화 다당체(sulphated polysaccharide)를 소화하지 못하고, 김을 먹고 사는 해양미생물로부터 유전자를 전해 받은 장내 미생물 도움으로 우리가 김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을 먹고 소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대변으로 나오면 자기 내장에는 김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이 연구가 놀라운 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입을 통해 들어간 세균이 장내에 도달해 뭔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장내 유익균, 즉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을 때 산성이 강한 위액 때문에 이 미생물들이 위에서 다 죽어버려 프로바이오틱스를 먹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김 분해 해양미생물은 위에서 죽지 않고 장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일부 미생물도 위액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요즘은 변을 먹여 변속에 있는 균을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둘째, 입을 통해 섭취된 세균이 인간의 장내 미생물에 유용한 유전자를 전해 주는 보고일 수 있다. 병원체로 인한 감염병 때문에 너무나 많이 시달렸던 인류는 항생제 개발과 위생 관념을 높여 세균에 의한 질병을 현격히 줄였다. 식품도 철저히 살균, 소독하여 청결한 음식만 먹는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하는 일이 좋다고만 알았는데, 김 분해 장내 미생물의 예를 보면 음식물과 함께 우리 몸속에 들어오는 미생물이 우리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나친 청결은 오히려 인류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인간도 미생물과 공생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셋째, 서양인들도 적은 양의 김을 먹으면 큰 문제 없다. 즉 어떤 음식물을 분해할 수 있는 장내 미생물이 없어도 소식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음식 먹을 때 절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넷째, 다른 세균으로부터 유익한 유전자를 물려받는 세균은 그 유전자 덕분에 진화에 성공하여 더 많이 증식할 수 있고, 자기 세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런 세균이 공생하게 되면 공생 호스트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호스트의 도움을 받아 더욱 많이 번창할 수 있다.

 

모기 잡는 박테리아

모기는 사람들을 참 성가시게 한다. 모기는 수놈은 사람을 물지 않는데, 암놈이 사람을 괴롭힌다. 암놈 모기 일부는 심각한 질병을 옮긴다. 우리나라도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 일본 뇌염 바이러스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일부 지역에서는 모기가 옮기는 뎅기, 황열, 지카, 치쿤구니야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모기가 매개하는 다양한 질병에 의해 매년 수억 인구가 고생한다고 한다. 모기 잡기 위해 모기 서식지를 모두 없애는 일은 불가하고, 살충제에는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 더구나 살충제는 인체에 해롭다고 하여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다.

월바키아(Wolbachia) 박테리아는 곤충 세포 속에서 공생하는 박테리아로서 전 세계 곤충 약 60%를 감염시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균인 셈이다. 다행히 인간이나 동물들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1924년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병리학자 월바크(Simeon B. Wolbach)가 발견하여 그 사람 이름을 따 월바키아로 명명되었다. 월바크가 처음 이 세균을 발견하였을 때는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지 않아 실망했을 것 싶은데, 이 박테리아가 현재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알면 지하에서나마 큰 기쁨을 누릴 것 같다. 지금은 이 박테리아를 이용해 바이러스 전염병을 전파하는 모기를 없애고자 하는 노력이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 빌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도 이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월바키아 박테리아 중 일부에 감염된 세포는 바이러스 감염에 저항성이 있다. 즉 월바키아 박테리아가 공생하고 있는 곤충은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지 않는다. 이 점을 이용하여 모기에 이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면 말라리아나 뎅기 바이러스같이 모기를 통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과학자들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월바키아 박테리아는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전파하는 모기를 감염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먼저 월바키아 박테리아가 모기 세포에서 자랄 수 있도록 훈련했다. 그런 후 이 월바키아 박테리아를 뎅기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이집트 외줄 모기(Aedes aegypti) 배양 세포에 찔러 넣어 월바키아 박테리아가 감염된 이집트 외줄 모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즉 뎅기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월바키아 박테리아가 증식하는 모기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2011년 뎅기열이 많이 발생하는 호주에 이 이집트 외줄 모기를 방생하여 이 모기가 자연에서도 번성하는지, 뎅기열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이집트 외줄 모기 숫자를 줄이는지, 그 결과로 뎅기열 환자 수가 줄어드는지 확인하였다. 월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암컷 모기가 정상 모기와 교미하여 태어난 모기는 전부 월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되고, 수컷 모기가 감염되었으면 그로부터 태어난 모기는 전부 죽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월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방생하면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 숫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후 이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는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서 방생되어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 외줄 모기 숫자를 줄이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 곤충과 공생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바이러스 질병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집트 외줄 모기는 뎅기, 황열, 지카, 치쿤구니야 바이러스를 전파하기 때문에 이 계통의 다른 바이러스 치료제도 뎅기 바이러스 치료용 이집트 외줄 모기와 유사하게 비교적 쉽게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많은 환자를 일으키는 말라리아는 학질 모기(Anopheles)에 의해 전파되기 때문에 말라리아를 줄일 수 있는 모기를 새로 개발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모기 매개 바이러스 질병 중에서 말라리아가 가장 문제가 심해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으니, 월바키아 박테리아를 이용한 방법도 개발되면 좋을 것이다.

 

다시 각광받는 박테리아

요즘 국내 의과대학에는 미생물, 특히 박테리아 연구를 주업으로 삼는 교수가 거의 없다. 항생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생물에 의한 전염병이 인류의 가장 큰 적이었기 때문에 병을 일으키는 병원 미생물 분야 연구가 가장 활발하였으나, 항생제 출연으로 미생물에 관심이 전폭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감염내과 의사들도 대학병원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편에 속한다.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으로 감염내과 의사에게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이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한직으로 밀려날 것 같다. 나도 임질 균에 관해 연구한 적이 있는데, 병원 미생물에 관한 연구가 균을 죽이거나 예방주사 만드는 쪽으로만 관심이 제한되어 매우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인간과 미생물이 공생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개념이 다시 떠오르며 미생물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1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끝나자, 미국 보건 연구원(NIH)은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진행 중 개발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 몸에서 사는 모든 박테리아를 밝혀보자는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즉 인체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 HMP)2007년 시작하여 2016년까지 1, 2차 프로젝트를 마쳤고, 2017년부터 3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 관심이 생기면 돈이 들어가고, 돈이 들어가면 우수한 사람들이 몰린다. 인체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전문가들 포함 미생물 전문가들이 다시 결집하여 대단위로 이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NIH에서 주로 연구비를 지원하지만 타 부처 등에서 지원하는 금액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2조 원 가까이 된다.

초기에 매우 엉성한 기술로 시작했던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약 5조 원이 투입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에 익숙해진 연구자들에게 인체 미생물 유전체 연구비 2조 원을 제공해준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이 연구 프로젝트가 다 마쳐지면 인간 유익균들에 대한 이해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미국 미생물 연구 프로젝트는 대변(), , 자궁 경부, 음경, 피부, 구강 내 타액, 치석, 머리털, 콧구멍, 귓구멍 등 인체 모든 부위 미생물을 대상으로 연구하는데, 유럽에서 2008년 시작하여 2012년에 마친 메타히트(metaHIT) 프로젝트는 건강인의 장내 미생물과 염증성 장 질환과 비만과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춰 한 연구이다. 물론 연구비도 미국과 비교해 소규모이다. 중국도 이 과제에 참여했다고 한다. 중국의 값싸고 뛰어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현재 지구상에서 새로운 지식을 개척하는데 미국의 역할이 압도적이다. 더구나 미국은 자기네 세금 들여 한 연구를 전 세계에 과감히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 쇠퇴를 예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미국 엘리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보면 미국이 그리 빨리 쇠퇴할까, 미국이 쇠퇴한다면 인류 문화가 지금같이 빨리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곱든 밉든 지금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소규모이긴 하지만 장내세균을 연구하는 연구진이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천종식 교수, 경희대 생물학과 배진우 교수 등이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인체 미생물에게 관심이 폭증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2002년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발표된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지난 60년간 감염병은 확연히 줄었는데, 그와 비슷한 속도로 만성 성인 질환은 증가하였다는 중요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특히 자가면역 질병과 연관이 있는 염증성 장 질환, 류마티스 관절염, 천식, 만성 폐쇄성 폐 질환 등이 증가하였다. 이런 질병 패턴의 역전현상으로부터 의학자들은 항생제 남용이 인체 유익균을 죽여 현대 만성질환을 증가시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인체 유익균을 무분별하게 죽이면 우리가 감염병보다 더 고질적인 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항생제가 세균에 의한 감염병을 물리친 공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와 더불어 위생이 인류 수명 연장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개인위생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청결, 항생제 남용, 과도하게 공정 된 식품, 자연과 격리된 생활 등이 현대인이 겪고 있는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비누로 손을 씻게 한다거나, 음식물을 청결하게 먹게 한다거나, 흙 위에서 뒹굴며 노는 행위를 막거나, 애완견 등 애완동물과 몸을 맞대고 지내는 것을 막는 등 지나치게 위생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절대 좋은 육아 방법이 아니다.

저명한 경희대 심우영 피부과 교수는 피부과에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급증했다고 전한다. 심우영 교수는 철저한 위생 관념은 버리라고 알려주기 위해 스스로 식사 중 식탁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무척이나 깔끔하던 사람이었던 심우영 교수가 이렇게 바뀐 이유는 급증하는 자가면역질환 환자를 실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비만이 장내세균 때문이라면?

비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나도 뱃살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쉽게 날씬해지지 않는다. 비만이 현대 성인병의 근원으로 여겨지고 있어서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다이어트법도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미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장내 미생물이 비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나도 이들 주장이 매우 타당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제프리 고돈(Jeffrey I. Gordon)

장내 미생물이 비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연구한 학자 중 가장 저명한 사람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수 고돈이다. 시카고 의대를 졸업하고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에서 소화기내과를 전공한 교수이다.

고돈은 200612월 학술지 네이처에 두 편의 매우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첫 번째 논문에서는 인간의 장내에는 의간균(박테로이데테스, Bacteroidetes)과 후벽균(퍼미규테스, Firmicutes)이라는 장내 유익균이 주종을 이루는데, 날씬한 사람에게는 박테로이데테스가 많고, 뚱뚱한 사람에게는 퍼미규테스가 많다. 뚱뚱한 사람에게 저열량 식사를 줘 몸무게를 줄였더니 박테로이데테스가 많아졌다. 즉 비만에 장내 미생물이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 번째 네이처 논문에서는 뚱뚱한 쥐의 변에서 채취한 장내 미생물을 무균 쥐(germ-free mice)에 옮겨주면 이 쥐가 뚱뚱하게 되고, 날씬한 쥐 장내 미생물을 옮겨주면 날씬해진다. 즉 장내 미생물이 비만에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2009년 네이처 논문에서는 쌍둥이 중 한 명은 비만이고, 다른 한 명은 정상인 성인 여성 일란성 쌍둥이 31쌍과 이란성 쌍둥이 23, 그리고 그들 어머니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여 한 집에 사는 쌍둥이도 뚱뚱한 사람은 뚱뚱한 장내 미생물을, 날씬한 사람은 날씬한 장내 미생물을 가지고 있고, 뚱뚱한 쌍둥이 장에는 장내 미생물 균종의 다양성이 감소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장내 미생물 종류와 장내 미생물 다양성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 논문에서는 비만도가 다른 여자 성인 쌍둥이의 변에 있는 장내 미생물을 무균 쥐에 넣어준 후 저지방 식사나, 전형적인 미국인 식사를 주고 관찰했더니, 비만인의 장내 미생물이 주입된 쥐는 뚱뚱해지고, 날씬한 쌍둥이 장내 미생물이 주입된 쥐는 날씬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뚱뚱한 쥐와 날씬한 쥐를 함께 키웠더니 날씬하게 만드는 장내 미생물이 뚱뚱한 쥐에게 옮겨가 이 쥐도 날씬해졌다.”고 발표하였다. 즉 비만인에게는 비만을 유발하는 장내 미생물이, 정상인에게는 날씬하게 만드는 장내 미생물이 있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내용은 섬유질이 많은 채소나 과일을 먹어 뚱뚱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바꾸면 날씬한 체질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돈은 장내 미생물의 중요성을 최고의 학술지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섬유질이 많은 채소나 과일이 장내 미생물을 조절하여 인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끊임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고돈 주장대로 섬유질이 많은 식사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을 것 같다.

고돈 교수는 영양실조에 관해서도 연구하고 있는데, 2013년 사이언스, 2014년 네이처, 2016년 셀과 사이언스, 2019년 사이언스 등 최고의 학술지에 영양실조 상태 아이들에게 영양분만 공급해줘서는 안 되고 영양분과 함께 건강한 아이들의 장내 미생물을 공급해줘야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기가 개발한 장내 미생물을 이용하여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의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더 나아가 비만 등 성인병 치료에도 장내 미생물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사이언스, 네이처 학술지에 논문 한 편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에 고돈 교수의 성과는 참으로 경이로워 보인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더욱 겸손히 연구해야 할 것 같다.

 

마틴 블레이저(Martin J. Blaser)

블레이저는 뉴욕 의대를 졸업하고 뉴욕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현재는 뉴저지 럿거스 의과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항생제 과다 사용으로 우리 몸에서 유익한 미생물이 사라져 비만, 소아천식, 소아 당뇨, 알레르기, 역류성 식도염, 염증성 장 질환 등 심각한 만성 질병이 현대인에게 빈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식용동물 사료에 항생제가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점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 (Missing Microbes)”라는 책을 출판해 미생물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한지 널리 알리기도 하였다.

항생제 남용으로 내성균이 발생하여 환자치료에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950년대부터 축산업자들은 닭, , 돼지 등 가축에게 저용량의 항생제를 사료에 넣어 먹이면 안 먹인 동물과 비교해 몸무게가 약 15%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당연히 항생제를 사료에 섞여 먹였다. 거의 모든 항생제가 같은 효과를 내었으니 축산업계에서는 사료에 항생제를 넣어 가축을 키우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항생제 남용은 환자에게 직접 너무 많이 처방하는 일도 문제지만, 항생제를 먹여 사육한 축산물을 먹음으로서도 우리 몸속에 과다하게 들어올 수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사료에 섞어 먹인 항생제가 인체에 위해가 된다는 지적에 따라 2005년부터 허용 항생제 범위를 축소해 오다, 201171일부터 동물 사료에 항생제 첨가를 전면 금지했다.

항생제 잔류검사도 철저히 시행해 국산 축산물의 안전성을 높였다. 주요 국가들도 같은 정책을 펴 지금은 축산물에서 인체에 해로울 정도의 항생제는 검출되지 않고 있다. 다만 2005년 이전까지는 다양한 항생제를 동물에게 먹이는 것을 허용해와서 이전 출생자들에게 이렇게 남용된 항생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블레이저 교수는 항생제가 왜 가축에게 성장을 촉진하는지 알기 위해 생쥐를 가지고 연구하였다. 그 결과, 2012년 학술지 네이처에 어린 생쥐에게 항생제를 먹이면 대장 미생물이 바뀌고, 그에 따라 미생물에 의한 대사가 바뀌어 비만이 된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블레이저 교수는 항생제를 먹인 쥐에서는 정상 식사를 하든, 고지방 식사를 하든 모두 대조군보다 더 심한 비만을 일으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미국 콜로라도대 의대 프랭크 스콧(Frank I. Scott) 교수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21,714명의 영국 어린이들을 분석하여 2살 이전에 3회 이상 항생제를 투여하면 4살 이전에 비만이 올 가능성이 커진다고 발표하였다. 이런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연구결과는 축산업계에서 항생제를 먹인 동물들 비만과 일치하고, 이를 생쥐를 이용해 증명해 보인 블레이저 연구결과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어 항생제 남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려주고 있다. 항생제 남용을 막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항생제는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 사용해야 하며 의사는 물론 부모들도 이 같은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블레이저 교수는 2016년에는 생쥐에게 항생제를 먹이면 제1형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2017년 발표한 자마-소아과학(JAMA Pediatr)에 미국 독일, 스웨덴, 핀란드 생후 3달부터 4세까지 8,49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이 동안 항생제 투여가 제1형 당뇨병이나 실리악 질병과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과 사람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많은 경우 사람과 실험동물은 실험결과가 다르다.

 

자비에르(Ramnik Xavier)

경희의료원 소화기 내과는 명의 김효종 교수가 이끄는 소화기센터가 있다. 이곳에 소속된 의사들 모두 내시경 검사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특히 대장 내시경 검사를 잘 시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효종 교수와 나는 아주 인연이 깊은 동료이다. 오래전 어떻게 대장 내시경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소화기 내과 교수가 되고 보니 소화기 분야 교수들 대부분이 위장 내시경 전문가여서 신임 교수로서는 위장 내시경을 해서는 경쟁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당시 소화기 전문의들이 피하는 대장 내시경을 하면 장래성 있을 것으로 판단해 시작했는데, 자기가 시작하고부터 우리나라에도 염증성 장 질환 환자가 급증하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분야에서 개척해나가면 큰 보상을 준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라는 나라는 참으로 엉망인 나라인 것 같다. 로버트 게이브리얼 무가베 대통령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이 나라에 관해 알 길이 없었는데, 이 나라 학생 한 명이 내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미국 의과대학 학생으로 가서 공부하고 있어 짐바브웨를 알게 되었다. 대통령이 바뀐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은 하버드 의대 병원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병원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이곳 소화기 내과 과장은 자비에르라는 사람인데 짐바브웨 출신으로 짐바브웨 의대를 졸업하고 네덜란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운 좋게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내과와 소화기 내과를 전공한 사람이다. 지금은 하버드 의대, MIT 두 대학에 속한 교수이고, 에릭 랜더 교수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를 이끈 연구소의 주요 구성원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도 제일 후진국 짐바브웨 출신 흑인이 이렇게 성공한 것이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 포함 최고의 학술지에 장내세균과 염증성 장 질환에 관한 연구결과를 계속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인들에게는 매우 친절하나, 아프리카나 동남아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냉담한데, 나도 역시 이런 편견에서 크게 자유스럽지는 못한 편이어서 짐바브웨 출신 흑인이 학문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쌓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되는데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나 자신을 한 번 더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능력이 활짝 피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이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운이 좋아 훌륭한 사람들과 좋은 환경 속에서 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자비에르 교수가 하버드 의대와 MIT라는 최상의 학문적 토대를 가진 대학 환경과 그곳에서 연구하는 최고의 과학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학문을 논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닌 짐바브웨 의대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면 지금과는 판이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라는 점이 이 사람이 하버드 의대에서 자리 잡기 쉽게 만든 한 요인일 수도 있다. 이런 일들 보면 운이라는 것이 참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2012MIT에서는 자비에르 교수를 포함해 몇몇 교수가 주축이 되어 미국 내 최초의 공공 변 은행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MIT라면 이공계 최고의 대학이고, 이곳 생물학 분야 교수들은 최정상 교수들인데 이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 변을 모아 저장하는 뱅크를 만들었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 변은 옛날과 달리 매우 소중한 자원으로 여겨진다.

 

인분을 이용해 중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도 어찌하여 5~6년 전에 박테리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수행한 학생은 간호사인데, 지금은 미국 간호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하고 있다. 조만간 조교수로 승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낭보를 전해 주었다. 이 학생과 유익균 공부를 하며 처음으로 미국에서는 변 이식이 상당히 많이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소화기 내과에도 권했으나 거절당했는데, 몇 년 후에는 우리나라 대학병원 몇몇 곳에서 변 이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변이라면 어쨌든 역겨운 느낌이 들어서 변 이식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변 이식술은 인도에서 3000년 전부터 시행되었다고 한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인분을 거른 물을 마시게 해 병을 치료하는 요법이 전해진 것 같다. 서양의학에서는 1958년 벤 아이즈만(Ben Eiseman) 콜로라도 의대 외과 교수가 항생제를 많이 먹은 일부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치명적인 설사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처음 보고하였다.

아이즈만 교수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외과를 전공한 저명한 의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람이 돈키호테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마스 보로디(Thomas Borody)1988년부터 약 14,000명의 염증성 장 질환 환자와 항생제에 듣지 않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 장염 환자치료에 적용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

2013년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환자치료 효과에 관한 연구가 대규모로 시행되었는데, 효과가 너무 좋아 도중에 중지했다. 지금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뿐만 아니라 난치성 염증성 장 질환 치료를 위해 미국, 캐나다, 유럽 많은 의료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변 은행도 2012MIT에 처음 설립된 이후 서구 많은 나라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면역 치료제는 현재 암 치료에 획기적인 효과를 보인다. 그래서 이를 처음 발견한 제임스 앨리슨(James P. Allison)과 혼조 다스쿠(Tasuku Honjo) 교수는 2018년 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면역 치료제가 모든 환자에게 다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20181월 시카고 의대, 엠디 앤더슨 암 센터, 프랑스 그룹이 변 이식이 면역 치료제의 암 치료 효과를 높인다는 논문을 학술지 사이언스에 연달아 발표했다. 즉 면역 치료제가 효과 없는 암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환자의 변을 이식해 준 후 면역 치료제로 치료하면 암이 낫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면역 치료제의 부작용마저 없애준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변으로 암을 치료하는 세상이 열릴 것 같다.

분변 이식술은 아무래도 시행하기 어렵고, 부작용도 있어 지금은 효과적인 장내세균을 골라 변 대신 이 세균들을 이식하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난치성 염증성 장 질환 환자에게는 변을 반복적으로 장기간 이식해줘야 하는 난제도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거른 변을 항문을 통해 이식하였으나, 지금은 변을 캡슐에 담아 경구투여하기도 한다. 먹기 쉽게 만들어 먹이는 것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는 변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들도 많이 생겼다. 더러워 피하기만 했던 변이 이렇게 다시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과거에 축적된 지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동의보감에도 새롭게 연구, 발전시켜 현대의학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들이 무궁무진하게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과거의 지혜를 더욱 발전시켜 현대화하는 것이 후세들이 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과거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장내세균은 우리 모든 장기의 발육과 건강에 영향을 준다.

장내 미생물이 뇌를 비롯한 모든 장기의 발육과 형성을 도와준다고 한다. 비만, 심혈관 질병 등 대사질환만이 아니라, 류마티스 관절염, 천식 등 자가면역질환, , 우울증, 불안, 기타 정신장애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유전성 신경질환 환자도 장내 미생물을 잘 조정해주면 증상이 많이 호전된다고 한다. 모든 질병에 관여하고 있고, 장내세균을 개선하면 모든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장은 장내세균을 전문하는 사람들의 과장된 주장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듯이 이들도 같은 사고오류에 빠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장내세균이 모든 질병에 일부 책임이 있고, 이들을 개선하면 일부 치료 효과는 있을 수 있다는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좀 더 많은 연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장내세균의 종류와 숫자가 감소한다. 100세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기 위해서는 장내세균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장내 미생물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작용을 나타내는가?

반추동물인 소, , 기린, 사슴, 낙타 등이 스스로 풀을 소화할 수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동물들은 위에 있는 미생물 도움으로 스스로는 소화할 수 없는 거친 풀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나 쥐 같은 동물도 위나 소장에서 식이섬유를 거의 소화할 수 없다. 소화되지 않은 식이섬유가 대장에 도달하면 그곳에 사는 미생물이 소화하고 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뷰트릭산 같은 짧은 사슬 지방산(Short Chain Fat Acid)이라는 생체물질을 많이 만들어낸다.

짧은 사슬 지방산은 우리 장에서 흡수되어 에너지원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우리 장을 튼튼하게 보호하며, 면역계를 안정시켜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지방 축적을 막거나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과식을 막아 비만을 예방하기도 한다. 쌍둥이 중 정상 체중인 사람은 짧은 사슬 지방산을 만드는 세균이 많고, 뚱뚱한 사람에게는 적다. 생쥐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되어 짧은 사슬 지방산이 비만을 막는다는 것은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서양인들에게 비만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미생물 주요 먹이인 식이섬유 섭취가 적어, 장내에서 짧은 사슬 지방산이 충분히 생산되지 않는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짧은 사슬 지방산에 관해 많이 알려졌지만, 장내세균이 만드는 대사산물은 이 외에도 많아 이들만의 작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혈액 내에서 발견되는 대사산물의 약 30~80%는 장내세균이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장내세균의 작용이 무궁무진하여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어떤 음식이 장내 미생물에 좋을까?

요즘 생물학은 컴퓨터 공학과 생물 정보학(Bioinformatics)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좋은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단순히 생물학 지식만 가지고는 급변하는 생물학 연구를 좇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미네소타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의 댄 나이츠(Dan Knights) 교수가 2018년 학술지 셀에 매우 중요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나이츠 교수는 미국 이민 온 사람들에게 이민 전에는 없었던 대사성 질환에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를 알고자 이민 온 1, 2세대 카렌족의 식생활과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이민자들의 식생활이 미국식으로 바뀌면 이민 오기 전 가지고 있던 장내 미생물은 많이 사라지고, 미국인들에게 많은 장내 미생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장에 많아 식이섬유 소화를 돕는 프레보텔라라는 세균 수가 점차 줄어드는 대신 서구화된 식단에 특화된 박테로이데스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발표하였다.

영국 팀 스펙터 (Timothy David Spector)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쌍둥이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다. 2015년에는 다이어트 신화(Diet Myth)라는 책도 출판하였다. 스펙터 교수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고, 같은 핏줄이라고 여겨지는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였더니 놀랍게도 서로 많이 차이가 났다. 즉 유전적으로 유사하고 비슷하게 생활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나라마다 식사형태가 다르다 보니 장내 미생물이 다른 것이다.

스펙터 교수는 쌍둥이 연구를 통해 식사 종류에 따라 어떤 장내 미생물이 우세하느냐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비만이 결정된다는 연구결과를 얻고, 그간 비만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알려진 고지방 고칼로리 식사보다도 장내에 식이섬유를 소화하는 미생물이 적은 것이 비만에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건강하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식품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식이섬유가 많은 다양한 종류의 채소나 과일을 먹는다. 둘째, 과일의 껍질이나 채소의 겉 부분을 버리지 말고 먹어 충분한 피토케미칼을 섭취한다. 셋째, 가장 잘 발효된 상태의 발효식품을 적절히 섭취한다. 넷째, 과자나 국수 백미 등 정제된 탄수화물이나 가공식품은 피한다. 다섯째, 항생제는 절대 남용하지 않는다.

 

제왕절개 분만은 가능하면 피하고 정상분만하자.

마리아 도밍구에즈-벨로(Maria Gloria Dominguez-Bello)는 뉴욕 의과대학에서 마틴 블레이저 교수의 동료였다가 새 배우자가 된 미생물학자이다.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의 미생물이 정상 분만된 아이들과 다르고, 이로 인해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많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물론 도밍구에즈-벨로 교수가 이런 연구를 발표하기 이전에도 많은 소아학과 교수들이 통계적으로 유사한 발표를 많이 하였으나,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발표한 사람은 도밍구에즈-벨로 교수이다.

이 연구 이후 제왕절개 수술이 신생아 장내세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많은 연구자가 수행한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모두 같은 결과였다. 즉 정상분만한 아이들은 엄마의 장내세균을 물려받는데,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은 수술 방 내에 떠돌던 균이나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들의 피부에 있는 균들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비만이나 천식 등 자가면역질환에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도밍구에즈-벨로 교수는 제왕절개 수술 중 산모의 질 속에 거즈나 솜을 넣어두었다가 수술로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질 속 거즈나 솜을 빼내 아이 몸이나 입에 발라주면 일부이기는 하나 엄마의 세균을 물려받을 수 있어 차후 발생할 수 있는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제왕절개 수술 시에는 자신의 주장대로 해 주기를 분만에 참여하는 의료진들에게 강력히 권고하기도 하였다.

2019년 영국 연구팀은 314명의 정상분만 아이와 282명의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의 변을 생후 4, 7, 21일에 받아 미생물을 분석하여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의 장내세균이 정상분만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도밍구에즈-벨로 교수의 주장이 맞음을 다시 증명해 주었다. 다만 제왕절개 수술 중 채취한 산모 질 속 균을 수술로 태어난 신생아 몸에 발라주는 것은 위험하니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였다.

최근 학술지 셀(20209)에는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의 빌렘 드 보스(Willem M de Vos) 교수가 엄마의 음부 내 미생물을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 몸에 바르고 먹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17명의 제왕절개 수술을 할 예정인 산모를 모아 수술 전 변을 받아두었다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에게 조금 먹이는 방법이 신생아의 장내세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여 보고하였다.

결과는 정상분만한 아이와 미생물군이 아주 유사했다고 한다. 이 연구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정상분만한 아이 장내세균을 결정짓는 것은 질 내 세균이 아니고 분만 중 분비되는 산모의 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분만 과정 중 산모가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나오는 변을 정상분만 중 신생아가 조금 먹는 일이 장내세균을 결정하는 듯하다.

이 연구는 소규모이어서 아직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상당히 타당해 보인다. 좀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산모 질 속 세균, 혹은 장내세균 중 어느 것을 신생아에게 옮겨주는 일이 옳은지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는 장내세균이 정상분만으로 태어난 아이와는 다르다고, 이렇게 다른 장내세균이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의 건강에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몸은 몸만이 아니라 세균과 바이러스로 이루어진 총체적 생명체이다

우리 몸 안에는 우리의 세포 수보다 약 10배 정도 많은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곳곳에 퍼져있다. 심지어 지금까지는 균이 없다고 믿어진 건강한 사람들의 혈액과 소변에서도 살아있는 균이 발견되고 있다. 정확한 숫자야 알 수가 없으나 인체 세포가 약 10~50조 개라고 하니, 우리 몸에는 대략 100~500조 마리의 세균이 공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종류도 10,000종이 넘는다. 인간의 유전자는 약 20,000가지인데, 미생물 유전자는 200~1000만 가지나 된다고 추정되고 있다.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 세균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장내 미생물은 혐기성 박테리아, 즉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는 자라지 못하는 세균이 많다 보니 이들을 배양하기가 어려워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가 않다.

세균만이 아니라 세균 속에서 사는 바이러스도 세균에 못지않게 많으니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 몸만이 아니고 몸과 세균과 바이러스로 구성된 통합적 생명체이다. 생명에 대한 인식이 항생제 발병으로 세균을 정복했다고 좋아하던 시절과는 전적으로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의학과 약이 탄생하고 있다.

옛날 우리 농부들은 자기 똥 먹지 않고 몇 년 살면 병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비료가 부족한 시대에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한 미개한 사람들의 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인분이 약이 된 세상이 되었다. 인분이 다양한 질병에서 효과가 좋다고 하니 앞으로는 건강할 때 자기 변을 변 은행에 보관해두었다가 몸이 아프면 먹어야 할 시대가 올 수도 있다.

특히 나이 들면 장내 미생물이 급속히 감소한다고 하니 청춘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노인들은 젊은 시절 건강할 때 받아놓은 자기 변을 주저하지 말고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제약회사가 변 자체나 변에서 뽑은 미생물군을 캡슐에 담아 팔고 있다.

유익균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세균은 아니다. 건국의대 박영민 교수님은 결핵균에서 패혈증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어 패혈증 치료 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벤처회사까지 설립하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생물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세상 참 급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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