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중앙선 전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순간 너무나 사람이 많아 몸이 마치 도미노처럼 앞사람을 밀치며 내려선다. 안전요원이라도 배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승차장에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마치 한국전쟁 통에 흥남부두의 피난민들이 배에 오르는 아비규환의 국제시장 영화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얼마쯤 기다리자 춘천 ITX 열차가 들어오고 일부 사람들은 중앙선 열차와 ITX를 구분을 못 하고 밀려들어 가듯이 열차에 달려들다시피 오르고 승무원은 이 열차는 일반 열차가 아님이다 다급한 일이라도 난 것 같은 목소리로 연신 안내 방송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선택은 또 다른 기다림이 필요하다. 잠시 후 일반 전철인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으나 중앙선 열차를 한 시간 이상 타고 상봉역에 가서 춘천방향 열차로 한 번 더 갈아타야 하는 수고로움이 남아 있다. 승강장의 수많은 사람에 비하면 전철은 그다지 혼잡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앉을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재빠르거나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 출입구 한쪽 기둥을 붙잡고 숨차게 달려가는 열차의 차창에 흐르는 풍경을 초점 없이 바라보고 서 있다.

응봉역을 지나며 발아래 보이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용비교 위에 자전거를 타고 강바람과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시원해 보인다. 두 해전 용비교를 거쳐 뚝섬유원지까지 걷던 둘레길 코스가 생각난다. 그때 그 길을 같이 걸으며 마냥 즐거워하던 해맑은 사람들의 표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몇 정거장을 지나 도심을 벗어나자 주변의 풍경은 목가적 전원의 풍경으로 바뀌고 여기저기 비닐하우스 흰색 물결이 보이고 멀리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 것 같은 바위산인 도봉산 줄기가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오월의 산은 이미 짙푸른 녹음으로 갈아입었고 바라보는 시야 속으로 녹음이 뚝뚝 묻어난다. 터널을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면서 기차는 어느덧 상봉역에 도착한다. 때마침 대기하고 있던 춘천방향 열차를 바로 탈 수가 있었다. 시간이 안 맞으면 이십 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데 작은 행운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도심지의 정차구간에 비교하면 정거장 거리가 멀어 한 정거장도 꽤 달려야 다음 정거장에 도착할 수 있다. 상봉에서 출발한 열차는 호반의 도시가 가까워져 온다는 것을 알리듯 시원한 강물의 반짝임이 풍경으로 흐르고 산골을 달려 열네 번의 정거장을 멈추어 서고서야 첫 번째 목적지인 가평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 앞의 도로는 마치 도마뱀의 꼬리처럼 늘어서 있는 차량의 행렬들로 가득하다. 남이섬 방향 버스 승차장이라고 쓰여 있는 푯말 앞에도 많은 사람이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스스로 고행의 길을 나선 것이고 차량을 이용하는 것 보다 걷는 편이 힘은 좀 들어도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차들 사이를 벗어나 부지런히 길을 걷는다.

도로 옆 인도를 피해 대각으로 가로지르는 논두렁에는 아지랑이가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논둑길도 재미있고 좀 더 빠르게 갈 요량으로 물막이 공사가 한창인 논두렁길을 택하였지만, 얼마간 논두렁길을 걷다 이내 후회가 밀려온다. 물막이 둑 위로 논물이 흘러넘쳐 논두렁길이 질척이며 신발이 푹푹 빠지는 것이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살이 조금 빨리 가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면 안 되는 거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웃음이 났다. 힘들게 넘어왔지만 나름 둑길을 걸어 본지가 언제인가 생각하니 꼭 싫지만은 않았다.

 

ⓒ이미지 제공 - 박미애 사진작가
ⓒ이미지 제공 - 박미애 사진작가

 

나미나라공화국 비자 발급받는 곳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이고 좌측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젊은 청춘들의 용기가 즐거움의 환호성과 함께 들려온다. 십 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거리지만 배를 타야 들어갈 수밖에 없는 강 중앙에 위치한 섬이기에 매표를 하고 많은 사람의 대열에 끼어 배를 기다린다.

새파랗게 출렁이는 강물 위로 온 세상 나라의 국기를 머리에 게양하고 마치 축제라도 하듯 화려한 치장을 한 배가 들어온다. 배는 아가리를 크게 벌린 동물의 입같이 출구를 크게 열어젖히고 접안을 하여 많은 사람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삼켜버린다. 그래도 배가 강물에 떠서 간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여러 척의 배들이 쉴 사이 없이 사람을 태우고 섬을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한다.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국적인 풍경과 강가 옆으로 잘 다듬어진 오솔길 하며 동화 속에 나옴 직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과 드넓은 초원을 연상케 하는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즐기는 아빠의 모습이 오늘만큼은 최고의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겨울연가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명소로 진열해 놓은 사진들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줄지어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이 아름답고 깜찍한 예쁜 조형물들 옆으로 한가로이 지나는 관광용 미니 기차의 풍경이 환상의 나라로 만들었다.

가족과 단란한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과 연인들의 초록빛을 닮은 예쁜 사랑이 더욱 아름답다. 비교적 한적한 강가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나만의 여유를 즐긴다.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이 저녁노을 햇살과 어우러지고 보랏빛 하늘에는 부드러운 날개 모양의 깃털 구름이 형형색색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는 아름다움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강가를 시원하게 쾌속 질주를 하며 달리는 보트와 환호성은 도심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버리는 도시의 고독한 외침이다 문득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남이섬은 애인과 함께 가는 거야"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눈은 강 건너 산마루에 머물다 천천히 보라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궁궐의 정원에서나 봄 직한 커다란 소나무 밑 잔디에 앉아 땀을 식히며 과일과 간단한 음료로 요기를 하고 다시 배를 타고 섬을 나왔다.

언제 다시 오려나 막연한 약속을 하면서 이제 막 들어오는 반대편 배 위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서 가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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