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95%가 상록수로 이루어져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검게 보인다하여 흑산도라 불린다

 

들어가며

예전 흑산도에 들어가는 뱃길은 참 멀었다. 지금이야 목포항에서 2시간 남짓 쾌속선을 타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여객선을 타고 도초도, 흑산도, 홍도에 들러 다시 흑산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오는 여정을 거쳐야 했다. 흑산도는 예전부터 머나먼 육지로 떠난 님을 기다리는 아가씨의 그리움으로, 귀양지로 유배된 기약 없는 죄인의 깊고 깊은 한숨으로, 때로는 파시가 열리면 동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활기과 풍요로움으로, 그리고 요즈음에는 영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보듯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의 고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흑산도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3년)부터이며,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후 서해상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한 전초기지로 이 섬에 반월성을 쌓으면서부터라고 한다. 본래는 월산군에 속하였으나 조선시대인 1678년(숙종4년) 흑산진이 설치되면서 나주목에 속하였고 1914년에는 무안군에, 1969년에는 신안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흑산도는 홍도, 다물도, 대둔도, 영산도, 가거도 등과 더불어 흑산군도를 이루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은 19.7km2, 해안선 길이는 41.8km이다. 위치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97.2km, 진도에서는 66.5km 떨어져 있으며 인구는 약 2,100명 정도이며 섬의 95%가 상록수로 이루어져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검게 보인다하여 흑산도라 불린다. 홍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대부분 거치게 되며 홍도가 관광지라면 흑산도는 장터 같은 곳으로 특산물인 홍어, 멸치 등 수산물을 구입 할 수 있다.

또한 흑산도항은 서남해안 어업전진기지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일원의 여객선 기항지이지만, 태풍시 이웃 섬들의 선박 대피항으로 역할도 하고 있다. 흑산군도를 비롯하여 하태도, 만재도 등 주변 11개 섬의 해상 교통중심지 역할을 하며 근해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이곳에 와서 배와 그물을 수리하고, 기름과 얼음, 생필품과 물을 싣고 선원들이 휴식을 하는 모습이 일상인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대흑산도는 흑산도, 소흑산도는 가거도를 일컫는다.

 

흑산도 위치
흑산도 위치

 

흑산도항

흑산도항은 과거 수산청으로부터 1964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9월 국가관리 연안항으로 지정되었다. 흑산도항은 거문도항과 같이 섬으로 둘러싸인 도내해(島內海)형태의 항으로 태풍시에는 주변 도서 및 외국 선박까지 피난하는 피난항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시설현황

 

흑산도항 전경
흑산도항 전경

 

○ 년차별 투자계획(1985~2030)

단위: 백만원
단위: 백만원

 

흑산도항 계획평면도
흑산도항 계획평면도

 

흑산도 특산물 및 주변명소

○ 흑산도 홍어

남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삭힌 홍어의 독특한 맛을 이용해 홍어회, 홍어무침, 삼합, 홍어애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즐겼다. 지금도 남도 지방에서는 홍어요리가 잔치 음식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잔치의 성패는 홍어 요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어의 독특한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으나 요즈음은 홍어의 살과 내장에 EPA와 DHA가 다량 함유돼 있어 관상 동맥질환을 예방하고 혈전의 생성을 억제하며 관절염과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하여 전국적인 건강식과 기호식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삭힌 홍어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모르나, 먹게 된 유래는 조업기지로 유명한 흑산도에서 목포나 영산포에 도달하기까지 거리가 먼 까닭에 운송 중에 자연적으로 발효된 홍어를 먹게 되면서부터라고 전해 오고 있다.

예전에는 홍어가 조기 등과 더불어 흑산도의 중요한 수입원이었으나 지금은 남획과 어족 고갈로 국내 해역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지 않게 되면서 외국산 홍어를 수입하고 있다.

○ 진리 처녀당과 초령목 천연기념물 제369호

선착장 근처 진리마을 당산에는 처녀당이라 불리는 성황당이 있고 그 아래 50m 지점에는 초령목이 있다. 수령이 320년쯤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초령목은 가지를 꺾어 불전에 놓으면 귀신을 부른다 해서 일명 귀신나무로도 불린다.

○ 상라산성(반월성)

도 기념물인 상라산성은 읍동마을 뒷산 정상 8부 능선에 구축된 반달 모양의 성이 반월성이다. 이 성은 신라시대 장보고가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것이라 하며, 성 뒤편이 바다와 접해 있는 자연적 요새로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좋은 성터였다고 한다. 길이 2,300m, 높이 0.5~2m로 그 옛날에 적을 막아낸 전투의 흔적으로 불리는 암벽 피바위가 있다.

 

상라봉 봉수대(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상라봉 봉수대(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홍도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위치한 홍도는 빼어난 절경,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총면적 6.630km2, 해안선 길이 19.7km, 인구는 255가구, 585명(2021기준)이다.

홍도는 사암(砂岩)과 규암(硅岩)의 수직절리(垂直節理)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며 약간의 역암(礫岩)과 혈암(頁岩)도 존재한다. 사암과 규암의 층리(層理)와 절리가 잘 발달되어 섬 전체가 홍갈색을 띠고 있다. 파식애(波蝕崖)와 파식대(波蝕臺) 등 해식단애(海蝕斷崖)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해안은 독특한 자태를 자랑한다.

 

홍도 전경(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홍도 전경(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홍도 규암층리(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홍도 규암층리(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홍도(紅島)라는 이름은 붉은 동백꽃이 섬을 뒤덮고 있어, 해질 녘 노을에 비친 섬이 붉은 옷을 입은 것 같다 하여 홍의도(紅衣島)라고 불리다가 규암으로 된 이 섬의 바위가 홍갈색을 띠고 있어 홍도라 붙여졌다고 전해 오고 있다.

이 섬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숙종 4년(1679)제주 고씨였으며, 사람이 정착한 곳은 홍도2구였다 한다. 지금도 홍도1구 마을에는 고씨의 12대손이 살고 있다.

홍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 중 하나로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섬으로, 성수기에 홍도를 오가는 쾌속선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라 하며 토요일이나 휴일에는 5백 명 정도가 머문다고 하니 가히 전남 관광지를 대표하는 대단한 섬이라 아니할 수 없다.

 

홍구2구 등대(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홍구2구 등대(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가거도(소흑산도)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있는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으로, 총면적 9.710km2, 해안선 길이 22km, 인구는 343세대, 504명(2021년 기준)이다.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km, 뱃길로는 233km이며, 흑산도에서 동지나해를 향해 남서쪽으로 82km 떨어져 있는 절해의 고도(孤島)이다.

가거도는 흑산군도 중에서 가장 멀리 있는 섬으로 최악의 조건에 처한 곳이지만 섬 주민들은 대대로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섬이라 해서 가거도라 불렸다 한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가거도는 대한민국과 중국대륙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가거도에서 목포까지 직선거리의 두 배 정도 가면 중국대륙에 닿는다. 그래서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가거도 전경(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가거도 전경(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또한 가거도는 서해안 어업전진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섬이다. 한중일 어선들의 각축장이 되어 있는 황금어장으로서, 동지나해는 가거도에서 불과 16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태풍이나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특히 겨울철이면 외국 선박들이 많이 몰려든다. 국토의 최서남단에 있기에 지리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섬이기도 하다.

또한 가거도는 항만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항만시설이 있는데, 가거도 방파제는 1979년 공사를 시작하여 30년만인 2008년 완공이 되었으나, 공사중 셀마(1987), 프라피룬(2000), 라마순(2002), 볼라벤(2012) 등의 태풍으로 공사 현장이 번번이 쑥대밭이 되곤 했다.

당초 가거도항에는 높이 12m, 길이 490m, 폭 15.2m의 방파제를 건설하였으며, 방파제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는 64t짜리 테트라포드와 108t짜리 큐브 블럭을 쌓았지만 2012년 9월 태풍 볼라벤의 여파로 방파제 350m가 부서지고 테트라포드 2천500여 개가 유실되어 274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최근에는 2019년 9월 발생한 태풍 링링에 의한 피해를 아직도 복구중이며 기후 변화에 따른 심해파 상승으로 인한 상습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파트 9층 높이의 슈퍼방파제로 대응하고 있다.

 

가거항 방파제(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가거항 방파제(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나가며

흑산도 예리항은 1964년에 수산청으로부터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예리항이 갖는 파시(波市)의 기능이 매우 커서였다. 파시란 풍어기에 일시적으로 고기잡이배와 운반선 사이에 고기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배와 배에서 형성되는 거래시장을 말하며, 먼바다에 있는 흑산도는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히는 황금어장의 중심지였다. 홍어뿐 아니라 조기, 고등어, 삼치 등 파시의 종류도 다양했다.

특히 흑산도는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들이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이동하며, 3월에서 7월까지 흑산도와 재원도, 칠산바다를 거쳐 연평도로 무리지어 올라갔다가, 8월이 되면 다시 제주 남쪽의 따뜻한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어 항상 풍어와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어장이었다.

60년대 예리항은 2,000여척의 조기잡이 배들로 가득했으며 동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할 만큼 풍요와 활기찬 어항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배들이 커지고 고기잡이 기술과 장비가 좋아지면서 알밴 조기까지 싹쓸이함으로써 연안의 고기가 사라졌으며, 더불어 1969년에는 북한의 무장간첩선 침투 루트를 막는다며 서해 어로한계선을 남하시킨 탓에 파시는 이름만 남긴 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간 치어까지 싹쓸이하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였으나, 한때 흑산도를 위시하여 자은도 사월포와 증도 상월포, 재원도와 위도, 연평도 등에서 열려 각 섬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던 예전의 파시의 영광을 다시 한번 찾을 수 있는 풍요로운 바다를 가꾸는 것이 절경과 어우러진 신비의 섬과 무한한 관용의 바다에 빚을 갚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참고 : 2021 항만편람. 2021-2022 항만업무편람. 네이버 지식백과-흑산도, 홍도, 가거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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