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로 이룬 꿈, 통영 동피랑 마을 이야기

 

 

피랑이란 말은 벼랑을 뜻한다. 80년대 초 청년 시절에 운명적으로 군부 장성 집에 집사로 발탁되어 첫날 운전을 하게 됐다. 김포공항에서 워커힐에 가는데  무작정 양화교를 건너서 강북 쪽으로 달렸다.

! 이놈아~ 외길 남쪽 길을 두고 북쪽으로 건너서 가느냐? 이상한 놈이네!”

호통 소리가 들린다.

장군님! 강을 우측으로 보면서 달려야 전망이 좋습니다.”

그러자 무릎을 탁 치면서 놀라신다.

“아! 그러네~ 진짜 최군 말이 맞다! 처음 너 같은 놈을 봤다. 오늘이 면접 날인데 합격이다네가 지금 받는 월급이 얼마냐? 내가 열 배로 주겠다!”

30만 원이다! 정비공장에서 잠깐 3만 원으로 일하다가 스카우트 되었다. 지난날이 꿈같이 지나갔다. 이젠 다 옛 추억이다!

그날 이후 나는 늘 뷰를 강조했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열 배나 더 받고 출근했다부자들만 산다는 한남동 옥수동 근처 아파트 리모델링 인테리어 일이 들어왔다여러 경쟁 업체들이 견적을 넣은 터라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 그 집을 방문 했는데 조망권이 없었다. 나오는 길에 아파트 뷰를 얘기했다. 한강도 안 보이는 집을 왜 거금을 들여서 수리하느냐? 나 같으면 한강 보이는 아파트에 돈을 반만 들여서 인테리어 하겠다고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그 자리에서 나의 의견대로 한강 보이는 곳을 사 내 맘대로 공사 하라고 했다기쁘고 감동이었다!

 

 

초창기 사업 때 통영이 고향이라는 직원이 찾아왔다. 고물 장사하다가 아트 건축 간판 보고 왔다면서 늘 통영 자랑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일도 잘하고 씩씩한 직원이었다리모델링 현장을 다섯 개쯤 하고는 통영 가서 산다고 떠났다. 공무원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아트 건축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훗날 통영 동피랑이 탄생했다!

 

 

절벽의 집들을 리모델링하고 적극적으로 바다가 보이는 뷰를 강조했다. 그 유명한 동피랑이 됐다! 사업차 둘러보니 벼랑 길 위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동피랑은 통영 절벽 집들의 새 모습을 찾게 해줬다. 섬이 보이고 배가 오가는 낙천적인 항구가 된 시점이 골목길 벽화다. 나는 칼라 하우가 브랜드다! 건축에 아무도 브랜드가 없을 때 앞서갔다. 알록달록한 피카소 그림이 나를 감동 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동피랑 마을 탄생의 씨앗은 아트 건축 한국예건이다!

지방 도시는 지금 어렵다. 구도심 건물들이 생존이 어렵다. 통영 동피랑은 성공했다뷰가 잘 퍼져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통영은 달랐다한 사람의 생각이 도시를 변화시켰다! 동피랑은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서피랑도 시작이다.

 

 

 

 

뷰를 반대로 보는 시각도 생겼다. 한국의 나폴리 별명이다!

항구에서 보면 바다가 신통치 않다. 그러나 건너편 바다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나폴리 같다. 특히 야간에 더 화려하다. 꿀빵이나 시장 횟감, 돼지국밥 정도가 상품이다. 다행히 여행지 물가는 싼 편이다집을 짓지 않고 수리만 해서 장사를 한다. 동피랑은 지금 핫 하다.

서쪽도 뜬다. 서피랑도 시작이다바다는 섬이 보일 때 상품이 된다. 지형적인 언덕을 살려서 땅속에다 신축 허가를 내줘야 한다. 도심 속 빈터가 부족한 것이 바닷가 마을이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통영은 섬들을 많이 볼 수 있다전망대에 올라가서 사방을 살펴보니 명당이다. 사면이 모두 탁 트인 뷰가 자랑이다살아온 흔적이 묻어있는 건물들을 있는 그대로 수리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과거는 마술이다! 그러나 마술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샘플을 봤다!

통영 동피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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