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꿈의 항구

부산행

 

 

 

서울역, 09시 출발하는 부산행 KTX를 탔다. 부산역 도착 시각은 11시 15분.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도 여여한 시간이다. 한 시간을 달려온 열차는 대전역에서 잠시 숨 고르기 무섭게 바로 도움닫기 한다. 30년 전 대구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휴가를 받아 대전 집에 오려면 두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그 시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으니, 그때보다 대략 세 배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인 셈이다. 그 덕분에 보름 후 입대하는 아들과 1박 2일 부산행 가족여행도 할 수 있으니 좋은 세상이다!

 

우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부산역 앞길을 건너 식당으로 갔다.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돼지국밥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한국전쟁 때 이곳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자 미군 부대에서 나온 돼지 뼈를 고와 설렁탕을 만들어 먹은 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지금은 정갈하고 담백한 지역 토속 음식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음식 하나에도 아픈 역사와 삶의 애환이 담겨 있으니.

 

배도 빵빵하고 바닷바람도 비릿하고 시원하니 룰루랄라 여행을 즐겨보자. 부산역 앞 버스승강장에서 1003번 버스를 타고 해운대로 달린다. 동백섬과 백사장이 한눈에 펼쳐진 그린나래 호텔에 짐을 풀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먼저 해동용궁사로 가자. 용도 때때로 바위로 올라와 햇볕을 쫴야겠기에 비탈진 해변에 용궁을 지었는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용궁사. 바다를 향한 그리움인가? 경계의 눈빛인가? 그 속을 어찌 알랴만, 용궁사에서는 부처님도 관음상도 크고 작은 보살님도 말없이 바다만 바라본다. 사람들은 해동용궁사에 와서 소망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우리 가족의 소원이야 딱 하나, 아들 녀석 무사히 군 복무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것.

 

 

깊고 먼 용궁에서 청룡이 홀로 나와

해변에 쏟아지는 고운 햇볕 쬐다가

나른한 잠에 빠져서 그만 밤이 되었네

 

무심한 파도 소리 밀려와 부서지고

이슬비 하염없이 차갑게 내리는데

어쩌랴 용궁 길목을 찾을 수가 없으니

 

젖은 몸 바위 되어 파도를 막아내고

이 풍진 사바세계 수호신 되었나니

용궁사 오시려거든 소원 하나 말하소

 

(졸시,「소원 하나 말하소」전문)

 

 

 

저녁 해운대 해변은 여전히 붐빈다. 해안선과 동백섬으로 이어진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간다. 바다에서 인어상(황옥 공주)을 만나고 해변 길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해동 유학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는 신라 시대 유학자 고운 최치원 동상을 만난다. 최치원은 12세에 당에 유학하여 18세에 등과한 후 벼슬을 받아 활동했다. 28세에 신라로 돌아와 여러 지방 태수를 거쳐 37세에 아찬 벼슬을 받았으나, 국운이 다한 신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여 40세에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했다. 평생 방랑하며 시를 짓고 살다가 합천 가야산으로 가서 갓과 신을 숲속에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한때 이곳에 들러 거처했다 하여 후대가 그의 비를 세우고 그의 학문과 덕망을 추모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 삶은 정치적 격동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산다. 그 선택에 따라 후대가 기억하는 역사는 현저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한시도 선택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것을 외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해운대전통시장에 왔다. 콧등을 스치는 향긋한 냄새, 무엇부터 먹어야 하나? 그래도 부산에 왔으니 일단 회는 먹어야지. 모둠회를 주문했다. 소주와 사이다도 한 병씩 추가. 혀끝에 출렁이는 파도 소리처럼 남쪽 바다 위로 펼쳐지는 수다는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었나 보다.

 

다음날 파도를 박차고 솟아오르는 해를 기다렸으나 일출은 없었다. 나는 기억한다. 3년 전 이곳 동백섬에서 태평양을 달려와 힘차게 비상하는 해와 눈싸움을 했다. 아픈 눈물이 바다에 떨어져 쏟아지는 윤슬 소리를 들었다.

 

 

 

잿빛 햇살이 눈을 스치며 길을 연다

이대로 달려가면 바다에 닿으리라

가자, 남쪽 끝 태평양과 맞닿은 바다로 가서

물욕과 심욕 가득한 가슴을 씻어내고

푸른 파도만 담아 오자

불타는 구름에 등을 기대고 서서

수평선을 맞대고 펼쳐진 일몰의 선을 붙잡고

말없이 바다와 대면하자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일출의 기상과 마주 서자

 

바다는 냉큼 해를 내놓지 않는다

애타는 기다림도 본체만체 한참 뜸을 들인다

진통이 있는 게다

어찌, 깊이 잠든 해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

바다인들 만만하다 하겠는가

드디어 바다는 해를 수평선 위로 들어 올렸다

해가 온전히 내 눈에 내 가슴에 들어올 때까지

맑은 해와 눈싸움을 한다

태평양을 힘차게 건너온 작열하는 기세

푸른 파도도 홀로면 외로우니

저 밝은 해도 함께 담아 오자

 

(졸시, 「해운대 일출과 마주 서다」전문)

 

 

오늘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잔뜩 기대를 했는데 변덕이 심한 바다는 해산을 미루고 은둔에 들어갔다. 다가가 손을 담그면 바닷물은 맑고 차가운데 수평선은 짙은 안개를 덮고 숙면에 빠져 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짐을 챙기고 남포동 어묵요리점에 들러 몇 종의 어묵과 어우동, 볶음어우동, 어파게티를 먹고 송도로 간다.

 

부산은 소망과 꿈이 열린 소통의 도시다. 6.25 전쟁 때에는 몰려온 피난민들이 척박한 환경을 견디며 소망과 꿈을 일구었다. 1958년에는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제1지남호가 남태평양으로 소망과 꿈을 찾아 떠났다. 베트남전 기간 중에는 맹호부대ㆍ백마부대ㆍ청룡부대 등 파월장병들이 부산항을 떠났다. 지금도 연 60여만 명이 부산항에서 해외로 떠나고 들어온다. 여름 휴가철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 피서객이 몰려든다. 소망과 꿈은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빌고 바라는 가슴의 크기야 별반 차이가 있으랴. 소망과 꿈의 항구에서.

 

송도 에어크루주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날아간다. 수평선을 붙잡은 눈은 파도에 이끌려 자꾸만 낯선 꿈의 나라로 간다. 지구 반대편에 하루면 날아가 일을 볼 수 있는 꿈같은 세상이 되었지만 바다에 오면 여전히 꿈을 꾼다.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삶의 지평선 저편의 세상을 향한 그리움 같은 것은 아닐는지. 해와 별의 넓이가 하늘의 크기 이듯, 소망과 꿈의 양이 삶의 깊이라고 바다가 살짝 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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