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이 되어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때로는 무용지물이 된다.
애용하는 식품도 약품과 함께 먹을 때 뜻하지 않은 낭패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코데인을 먹고 두살 난 아이가
캐나다에서 죽었다.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렇게 죽은 아이가 여러 명이었다.
이와같이 약은 약이 되어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때로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런 사실을 의사는 물론 환자도 알아야 한다.
애용하는 식품도 약품과 함께 먹을 때 뜻하지 않은 낭패를
볼 수 있다. 몇가지 약품을 함께 복용해도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현대과학은
조금씩 유전적 답을 찾아가고 있다.
다만 복잡하기 그지없는 성분으로 구성된 한약은 상상할 수 없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 과학은 너무나 미흡하다.
사람마다 다른 약물 반응을 예측할 수 있을까?
내가 미국 병원에서 경험하고 엄청나게 놀란 일인데 미국 환자들은 피부 색깔, 나이, 남녀, 교육 정도, 빈부 차이에 무관하게 자기가 복용하고 있는 약 이름과 용량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의사가 요구 시 주저 없이 말해준다. 약이 한 알이든, 20-30종 되든지 정확히 외워 답을 준다. 약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기초의학에 종사하고 있지만, 명색이 의사인데 간혹 약 처방을 받으면 약사들이 싸주는 대로 먹지 약품명과 용량을 기억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명망 있는 임상 의사들도 처방받은 약품들에 익숙하지 않으면 자기가 먹는 약품명과 용량 잘 기억하지 못하리라고 추측한다. 의사들이 이런데, 일반인들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약품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미국인들에게 배워 실천해야 한다. 아마도 미국인들은 평소 철저한 문화에 젖어 살고, 우리는 대충 생각하며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페니실린 쇼크
서양의학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까닭은 1928년 여름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페니실린은 의학에서 중요하다. 나는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노태우 대통령이 사단장을 지낸 백마부대 신병 훈련소에서 군의관을 시작하여서 만 3년간 군에서 복무하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내가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사병으로 입대한 젊은이 중 성병에 걸려 고생하던 신병들이 꽤 많았다. 이런 환자들에게 쓰라고 페니실린 주사제가 많이 제공되었다. 군의관도 위생병도 심지어 신병들도 성병은 페니실린 한 방이면 모두 낫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니 어찌 보면 페니실린이 남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주사제 페니실린을 남용하면서 간혹 페니실린 아나필라시스 쇼크를 겪게 되는 환자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페니실린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은 위생병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사 놓기 전에 반드시 피부에 알레르기 테스트 (skin test)를 시행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어쩐 일인지 간혹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도 있었다. 심하면 쇼크에 빠져 군의관, 위생병 모두 엄청나게 당황하게 된다.
나는 사회에서도 페니실린 쇼크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페니실린 쇼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미리 선별할 수 있으면 매우 바람직하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레르기 테스트도 번잡하니 뭔가 페니실린 쇼크를 예측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매우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와 내 친구들 대부분이 군 생활을 한 기간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이다. 사병으로 간 친구들은 좀 일찍 입영했고, 장교로 간 친구들은 좀 늦게 입영했다. 같은 세대이니 나는 당연히 그 시대 입영 통지를 받은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에 대해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10년 전후 세대들도 비슷하게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지금과는 판이한 당시 젊은 청년들의 문화가 옳거나 그름을 떠나, 우리는 그런 문화 속에서 살며 성장통을 겪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자라던 젊은이들이니 입대 전 사고 치는 일도 흔해 당시 신병훈련소에서는 페니실린 주사가 다량 필요했었다. 지금은 이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당시, 청년들은 입대 앞둔 친구들을 위로한답시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잔뜩 마시며 함께 우울해하곤 하였다. 송별식을 거창하게 치른 것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하는 일이 죽는 일도 아닌데 왜 그리 심란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 젊은이들은 그랬다. 세월이 흐르면 먼저 입대했던 친구는 제대하였고, 늦은 친구들은 뒤를 이어 같은 소동 일으키고 입대하였다. 제대하면 친구들과 또 모여 파전 한 장과 막걸리, 소주 몇 병 앞에 두고 군대 생활 과장하는 재미로 밤샘하기 일쑤였다. 여자 친구들은 이런 남자들 보며 “그 지긋지긋한 군대 얘기 또 하네”라며 비아냥거리기며 재미있어하였다.
내 세대 사람들은 당시 청년 남성들의 이런 마초 문화를 당연시하며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1960-70년대에는 집 형편 어려우면 누나, 여동생들이 버스 안내원이나 공장 노무자로 일해 번 돈으로 오빠, 남동생 출세시키기 위해 대학 공부시키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희생한 여자들의 돈으로 공부한 남자들이 출세 후에는 여자 형제들 돌보지 않아 생긴 가정불화가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고, 종종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런 시절이니 여권, 더 나아가 성희롱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기는 요원하였다.
남녀불평등의 문제가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이 되고 있다. 농경사회가 시작하기 전 수렵-채취 시대에도 이미 남성들이 여성들을 지배하였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농경문화가 시작되고 초기 국가가 성립되고부터는 육체 힘이 강한 남성이 확실히 주도권을 장악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까지는 남녀불평등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부터 유교 문화가 사회 저변에 정착함에 따라 우리 사회가 가부장제를 정착시키며 급격히 남녀불평등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원천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다. 여자들에게 정조를 지나치게 요구하여 열녀문이 생기는 일도 시작되었다.
이러던 남녀불평등 문제가 우리 사회가 발전하며 평등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여성계에서는 우리 사회의 남녀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남녀불평등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권이 신장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첫 번째 사건은 국가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합법적으로 부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정권은 남성에게도 170여 년 전부터나 주어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남성과 일부 흑인 노예 남성은 1870년 참정권을 획득했고, 여성은 1920년에 획득하였다. 흑인이 미국 전체 주에서 투표권 확보한 해는 1966년이다. 영국은 남성 1918년, 여성 1928년, 프랑스에서는 남성 1848년, 여성 1944년에야 참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됐다. 스위스 여성들은 1971년에야 참정권을 획득했다.
유엔이 여성 참정권 협약을 채택한 것은 1952년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은 2015년 참정권을 얻었다. 일본은 1945년, 중국과 북한 1946년,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 인도 1949년, 남녀 동시 참정권을 얻었으니 이들 나라 여성은 연합군의 2차 세계대전 승전과 각국의 독립 덕택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권이 차츰 증대하다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을 고발하기 위해 시작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인류사회에 새로운 문화를 열어가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직 검사 서지현에 의해 2018년 1월 29일 시작되었다. 이후 많은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고, 지금은 남녀 모두 극도로 조심하는 사회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남녀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지금은 과도기이지만.

맥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40여 년 전에 밝힌 점핑 유전자(jumping gene)라고도 하고 전이인자(transposon)라고도 불리는 유전자를 밝혀 1983년 단독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아주 뛰어난 학자이다. 1902년 출생하여 1992년 사망하였으니, 미국에서 여권이 발아하던 시대부터 만개를 시작하던 시기까지 살던 분이다.
맥클린톡의 삶을 기록한 ‘생명의 느낌: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을 읽으며 나는 맥클린톡이 살았던 미국 사회를 다양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해 많이 배웠다. 감동도 받았지만 슬프기도 하였다. 맥클린톡 아버지는 의사로서 딸 대학 교육비 정도는 대줄 수 있을 정도로 재력이 있었으나, 당시 여성들이 대학에 가면 결혼도 할 수 없다는 문화 때문에 딸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맥클린톡은 대학에 가기 위해 농장에서 일하면 학비를 면제해주는 뉴욕 주립 코넬대 농대에 진학하였고, 우연히 옥수수를 연구하다 ‘전이인자’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코넬대는 사립대학인데 농대만 특이하게 뉴욕주립대이다. 농대에 진학하는 학생이 적어서, 혹은 농대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런 체제를 유지하는 것 같다. 맥클린톡은 뛰어난 성과를 내고도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일자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다가 40세가 돼서야 유전자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받은 왓슨(James Watson)이 소장으로 있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홀로 옥수수 유전학 연구를 계속하다가 1951년 ‘전이인자’를 발견하였다.
당시 생물학계는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특히 왓슨과 크릭의 유전자 모델에는 물리적으로 ‘전이인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학계에서 오랫동안 인정을 받기는커녕 정신 나간 과학자로 여겨졌다. 지금은 ‘전이인자’가 후성유전학 분야에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어, 앞으로 더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될 것 같다.
많은 과학자, 특히 여성 과학자는 맥클린톡의 전기 ‘생명의 느낌: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를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맥클린톡의 전기에 기술되어 있듯이 20세기 미국 여권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유교 문화에 의해 강력히 통제받던 우리나라 여권 상황은 어찌했을지 너무나 뻔해 보인다.
인간 백혈구 항원(HLA)은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MHC)의 한 부분이다. HLA는 우리 몸속 핵이 있는 모든 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이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이물질은 우리 HLA와 다르거나 없어 우리 면역 체계는 이들이 자신의 몸이 아니라고 인식하여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궁극적으로 제거한다. 자기 몸은 같은 HLA를 가지고 있어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설혹 다른 사람 세포라 할지라도 HLA가 똑같으면 우리 면역 체계는 이 세포들을 이물질로 여기기보다는 자신이라고 여겨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장기이식할 때 공여자 중 가능하면 최대로 HLA가 같은 사람의 장기를 적출 해 수혜자(환자)에게 이식시킨다. HLA가 일치하지 않는 장기를 이식할 경우 면역 반응이 일어나 이식한 장기가 금방 망가지기 때문이다. 이식학 발전 초기에는 이런 면역 반응의 기본 원리를 잘 몰라 면역 거부반응으로 많은 환자가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많은 면역학자가 노력하여 지금은 심장까지도 이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무척이나 이상한 사람이 탄생하겠지만, 언젠가는 뇌를 이식하는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HLA는 장기이식뿐만 아니라 수많은 질병과의 연관성, 친자감별, 법의학적 수사, 유전학적 인류학 연구, 그리고 약물 부작용 등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내 몸이 다른 사람이나 이물질을 나로 인식하여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 내가 죽거나 큰 병으로 고생할 수 있으니 HLA 단백질은 우리 몸 그 어느 단백질보다 다양하다. 즉 다형성(polymorphism)이 가장 높다. 인간 염색체 6번의 짧은 부위에 있는 HLA 유전자 부위 (HLA gene region)에는 여러 개의 유전자 자리 (gene locus)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장기이식과 관련성이 높은 고전적 의미의 HLA Class Ⅰ유전자 자리에는 3종(HLA-A, -B, -C)이 있고, HLA Class Ⅱ 유전자 자리에는 9종 (HLA-DPA1, -DPB1, -DQA1, -DQB1, -DRA, -DRB1, -DRB3, -DRB4, -DRB5,)이 있다. 이 각각의 자리에 수많은 종류의 다른 유전자(대립유전자, allele)가 있는 것이다.
예로 HLA-A 4,340개, HLA-B 5,212개, HLA-C 3,930개의 다른 대립유전자가 있고 Class II도 다양하다. 2018년 10월까지 밝혀진 주요 대립유전자만 18,827이다. Class I에서만 똑같은 유전자가 나올 확률도 1/4340 X 5,212 X 3,930이니 쌍둥이가 아니면 Class I, II 모두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과거에는 HLA 결정법(HLA typing)이 혈청학적으로 이루어졌지만, 1990년대부터 HLA 유전자 분석에 중합 효소 연쇄 반응기법(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이 도입되면서 각 유전자 자리에 대한 염기서열 분석이 쉬워졌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중 혁명적으로 개발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기술(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이 HLA 타이핑(Typing)에 도입되고 있으니 많은 HLA 대립유전자가 발견될 것이다.
페니실린 아나필라시스 쇼크는 페니실린을 전에 사용한 경험이 있는 일부 환자에서 페니실린에 대한 항체 IgE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런 환자가 다시 페니실린을 사용하면 IgE 항체와 반응해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게 나오는 것이다. HLA 일부 대립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한다고 밝혀졌다.
최근 영국인 5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HLA-B*55:01 대립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페니실린 쇼크를 많이 겪는다고 발표하였다. 다만 인종 간 차이가 있을 테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도 같은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페니실린만이 아니고 다양한 약품에서 아나필라시스 쇼크가 발생한다. 이런 알레르기 반응을 많이 일으키는 약품들은 HLA 대립유전자와 연관성을 밝혀 약품에 의한 쇼크로 사망하거나 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면 국민 건강에 좋을 것이다. 특히 아스피린, 통풍 치료제 알로퓨리놀(allopurinol), 허니문 방광염이나 급성 신우신염에 많이 사용하는 박트림(cotrimoxazole, sulfamethoxazole and trimethoprim), 다양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와 항생제 등이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니 HLA 대립유전자와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코데인 맞고 아이가 죽다니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은 의학에서는 최고로 좋은 학술지로 알려져 있다. 이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은 많은 임상 경험이 축적되었거나 임상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싣고 있어 모든 논문이 매우 가치 높다. 그래서 임상 의사들이나 의학 관련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이 학술지에 논문 발표하는 일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소위 인용지수(impact factor)도 74.699로 네이처(42.778), 사이언스(41.845), 셀(38.637)보다 훨씬 높다. 다만 임상에 치우쳐 있어 기초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은 근접하기 매우 어렵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2009년 8월 호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수가 편도선 수술을 한 2살 난 아이가 퇴원하고 이틀이 지나 사망하였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수술은 매우 잘 되었고, 발육상태도 매우 좋았고, 수술 부작용도 없었고, 진통제로 사용한 코데인(codeine)도 적정량을 투여해서 죽을 이유가 없었는데 아이가 죽은 것이다. 캐나다같이 사람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큰 위험이 없다고 생각되는 편도선 수술을 받고 아이가 죽었으니 당연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의사들과 연관 학자들이 왜 이 아이가 죽었는지 깊이 연구한 후 이 아이에게 시토크롬 P450(Cytochrome P450 2D6, CYP2D6)라는 효소 유전자가 3개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대개 엄마, 아버지로부터 1개씩 물려받아 2개가 있는데, 이 아이 부모 중 한 분이 2개를 물려주어 이 아이는 CYP2D6를 3개 갖게 된 것이다. 이 결과로 이 아이가 죽었다고 이 논문 저자들은 결론 내렸다.
코데인은 진통제, 진해제, 지사제로 많이 쓰이는 약품이다.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아스피린(co-codaprin), 타이레놀(Tylenol 1-4 series), 이부프로펜(Nurofen Plus) 등과 혼합된 정제로 만들어져 사용되기도 한다. 이들 혼합형 약들은 단독으로 쓰일 때보다 더 강력한 진통 효과를 보인다. 일부 감기 시럽에도 첨가되어 있다.
코데인은 그대로는 약효가 없고, CYP2D6가 모르핀으로 바꾸면 약 효과를 나타낸다. 일반인들에게는 2개의 정상 CYP2D6가 있어 적당한 속도로 대사되어 적정량의 모르핀이 되는데, 이 어린이는 3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코데인을 모르핀으로 너무 빨리 바꾼 것이다. 그 결과 모르핀 농도가 너무 급격히 높아져 아이가 죽은 것이다. 약을 처방하고, 복용하는 일을 간단하지 안 된다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아이가 CYP2D6가 없거나 부족했다면 이 아이는 코데인을 모르핀으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통증으로 고생은 하였겠지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1969년부터 2012년까지 편도선 수술 후 코데인 부작용으로 사망한 아이를 조사하였더니 8명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위 캐나다 아이처럼 코데인을 너무 빨리 모르핀으로 바꿀 수 있는 유전적 소인으로 인해 이런 비극이 발생하였다.
이후 미 FDA는 편도선 수술한 어린아이에게 코데인을 처방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는데, 아직도 코데인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한다. 약은 약이 되어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때로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의사는 물론 환자도 알아야 한다. 한의학자들도 이런 면에서 좀 더 과학적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시토크롬 P 450(Cytochrome P450, CYP)
시토크롬 P 450(Cytochrome P450, CYP)은 우리 몸 자체가 만든 화합물이나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 대사에 필요한 효소이다. 사람에게는 57개의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 이 중 CYP1, 2, 3에 속하는 11개가 약물 대사에 중요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체 약물 중 약 75%를 CYP가 대사하여 우리 몸 밖으로 배출한다. 그중 특히 CYP1A2 14%, CYP2C9 14%, CYP2C19 11%, CYP2D6 23%, CYP2E1 5%, CYP3A4-5가 30% 정도 약물 대사에 관여하는데, 약물 부작용과 연관성에 대해서는 CYP2C9, 2C19, 2D6가 가장 주목을 받는다. 대다수 CYP는 내적인 기능이 없으니 진화적으로 압력이 없어 HLA 다음으로 유전적으로 다양하다.
CYP 유전자의 대립유전자는 두 가지 방법으로 형성되는데 첫째) 단일염기 다형성 (SNP, Single-nucleotide polymorphism), 둘째) 유전자 복제 수 변이(CNV, Copy-number variation)이다. CNV에는 유전자 복제(duplication)와 삭제(deletion)가 있다.
단일염기다형성 (SNP)
단일 염기 다형성(SNP)은 약 3억 3천 5백만 종류가 발견되었다. 지구상 약 70억 인구가 모두 특색을 가지고 다른데, 그렇게 사람들이 다른 이유는 바로 SNP 때문이다. SNP가 게놈 중 단백질을 만드는 부위에 발생하면 다른 단백질을 만들거나(missense) 단백질을 만들지 못할 수(nonsense) 있는데, 이렇게 되면 표현형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를 비동의 SNP(non-synonymous SNP)라고 한다.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세 번째 염기가 같아도 같은 아미노산을 지정할 수 있어서 세 번째 염기가 변해도 단백질은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이를 동의 SNP(synonymous SNP)라고 한다. 그래서 비동의 SNP(non-synonymous SNP)가 더 의미가 있다.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앞, 뒤, 때로는 사이에도 단백질 발현을 조절하는 부위가 있는데 이를 프로모터(promoter), 인핸서(enhancer)라고 하는데 이 부위에 SNP가 오면 단백질 발현, 즉 세포 내 단백질량에 변화가 올 수 있다.
대립유전자는 주로 이 SNP가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대립유전자를 가지느냐에 따라 어떤 질병에 잘 걸릴 수도, 안 걸릴 수도 있고, 어떤 약품에 부작용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HLA이나 CYP가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말은 곧 SNP가 이 단백질 만드는 유전자 부위에 많다고 뜻하는 것이다.
유전자 복제(duplication)와 삭제(deletion)
복제(duplication)는 말 그대로 어느 유전자가 복제되어 2개 이상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 체세포에는 엄마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염색체(chromosome)가 각각 1개씩 존재하는데 어떤 유전자가 아버지나 어머니 염색체 한쪽에서만 복제가 일어나 2개 이상 가질 수도 있고, 양친 모두에게서 복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삭제(deletion)는 반대로 양친 모두 혹은 각각의 염색체에 있던 유전자가 어떤 이유든 없어지는 것이다.
CYP 대립유전자 표기법
CYP의 경우 SNP나 CNV에 의해 생기는 대립유전자를 표기하는 방법이 표준화되어 있다. CYP 대립유전자(allele)은 *로 표시된다. 예로 *1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있어 정상으로 여겨진다. *2, *3 대립유전자를 가질 수도 있다. 한 사람에게는 두 개의 대립유전자가 있으니 다양한 대립유전자 중 두 개를 가진 것으로 표시한다. *1/*1을 가질 수도 있는데, 모두 정상임을 뜻한다. *1/*3는 양친 중 1분에게서는 정상 염색체를 받았고, 다른 분에게서는 변형된 대립유전자를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대립유전자 표기 방법에 CYP의 종류를 붙여서 CYP의 표현형을 말한다. 예로 CYP2D6*1/*1은 정상, CYP2D6*4/*4는 대사를 잘못하는 사람, CYP2D6*4/*10은 정상보다 조금 못하는 사람, CYP2D6(*1/*2)xN은 *1/*2를 2개 이상 복제하여 가지고 있어서 대사를 너무 잘하는 사람을 뜻한다.
위에서 언급한 캐나다 어린이의 경우 CYP2D6*1/(*1)x2, 즉 CYP2D6 정상 유전자를 3개 가지고 있어, 정상인보다 코데인을 모르핀으로 빨리 바꿔 사고가 난 것이다. CYP 유전자 형태가 어느 약물 대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런 이유로 많이 되고 있다.
CYP 대립유전자는 인종에 따라 다르다. 예로 CYP2C9*2는 단백질 만드는 부위 유전자 430번째가 C인데 T로 바뀌어(이를 c.430C>T로 표기) CYP2C9 단백질 아미노산 144번째가 정상에서는 아르기닌(Arg)인데 시스테인(Cys)으로 바뀐 대립 유전자(이를 c.430C>T, p.Arg144Cys로 표기)를 말한다. CYP2C9*3는 (c.1075A>C, p.Ile359Leu)이다.
CYP2C9*2 대립유전자는 유럽인 12%, 혼혈 아메리카인 7%, 남아시아인 5%, 아프리카인 2%가 가지고 있고, 동아시아인에서는 희귀하다. 반면에 CYP2C9*3 대립유전자는 유럽인 6%, 남아시아인 11%, 동아시아인 3-4%에서 발견된다. CYP2C9 활성도도 *3 대립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상인*1 대립유전자와 비교해 80% 정도 떨어져 있다. 와파린은 CYP2C9에 의해 주로 대사된다.
그래서 혈전과 색전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 뇌졸중, 심근경색 환자에게 사용하는 와파린 사용량은 CYP2C9*3 대립유전자를 가진 환자에게는 상당량 줄여야 한다. 일반인과 같은 양을 사용하면 이 환자는 출혈로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위와 같이 약물과 CYP의 유전자 형태와의 관계가 많이 알려져 있으니 환자가 자기 CYP 유전자 형태를 알고 있으면 약물에 의한 사고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약물이나 식품이 CYP 기능에 미치는 영향
약품이나 식품도 CYP 기능을 억제하거나 증가시켜 다른 약의 대사에 영향을 준다. 고지혈증 환자에게 많이 처방되는 스타틴(Statin)은 심혈관계 질환 환자와 이 질환 고위험군 환자에서 마법의 탄환 같은 약으로 인식되고 있다. 스타틴을 복용하는 환자 중 15%가 근육통, 간 기능 저하 같은 부작용을 겪는다.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근육이 융해되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스타틴 계열 약물 중에서 아토바스타틴(Atorvastatin, Lipitor), 심바스타틴(Simvastatin, Zocor), 로바스타틴(Lovastatin, Mevacor, Altocor)은 CYP3A4를 통해 대사된다.
자몽주스는 CYP3A4 기능을 억제한다. 따라서 위 스타틴을 복용하는 환자가 자몽주스를 많이 마시면 당연히 혈중 스타틴 농도가 올라가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애용하는 식품도 약품과 함께 먹을 때 뜻하지 않은 낭패를 볼 수 있다.
약물과 약물이 반응하여 부작용을 더 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유방암 환자에게 많이 처방되는 타목시펜(tamoxifen)은 에스트로젠 수용체(estrogen receptor)에 결합해 에스트로젠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유방암 치료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CYP2D6가 타목시펜을 엔독시펜(endoxifen)으로 바꿔야 유방암 치료제 효과가 난다.
항우울제로 널리 쓰이는 플루옥세틴(fluoxetine, Prozac)도 CYP2D6를 통해 대사되기도 하며 CYP2D6를 억제하기도 한다. 따라서 타목시펜과 플루옥세틴을 함께 쓰면 타목시펜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타목시펜만 복용한 유방암 환자는 7.5%가 타목시펜과 플루옥세틴을 함께 먹은 환자는 16%가 유방암이 재발했다고 보고되었다.
우리는 많은 약물 부작용을 겪고 있다. 약물 부작용에 기인한 의료비도 상당액이다. 미국의 경우 입원 환자의 약 7%가 약물 부작용 때문이라고 하고, 매년 10만 명 이상이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 약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약물 부작용은 페니실린의 경우처럼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경우 약용량과 관계가 있다. 알레르기 반응은 HLA 타입과 관계가 있고, 후자의 경우는 약물 대사와 관계가 있다.
CYP는 약 75%의 약물을 대사하는 효소이니 이에 대한 유전자 변이가 식품, 약품 상호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CYP는 약물을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대사시킨다. 이를 1차 약물 대사 효소(Phase 1 enzyme)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2차 약물 대사 효소(Phase 2 enzyme)은 약물 대사의 약 25%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효소들은 글루쿠론산(glucuronic acid), 메틸(methyl), 글루타치온(glutathione) 등 작은 물질을 약물에 붙여 약이 우리 몸 밖으로 배출되게 만드는 효소들이다. 2차 약물 대사 효소(Phase 2 enzyme)에 의해 영향받는 약품들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

결론
약물을 사용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약물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까지 하며 약물을 신중하게 투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학문을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제의대 임상 약리학 교실에서 신재국 교수를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하고 있어, 신약개발 회사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좀 더 과학적으로 약을 처방해야 한다. 물론 의사들 경험과 환자들 반응에 따라 약물을 처방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주로 처방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문화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위 코데인의 경우처럼 대충 처방하다가 큰 의료사고가 터지면 의사들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환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사망할 수도 있다.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과학적 근거가 분명한데도 과학과 무관하게 처방하는 행위를 방조하는 일은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의학계도 더 노력해야 하지만, 한의학계는 근본적으로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막무가내로 약 처방하는 일은 철저히 금해야 한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이 값싸게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으니 약물유전체학은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우리를 약물 부작용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도록 발전할 것 같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이 더 많이 해소된다. 의학도 마찬가지이다. 의학을 더욱 과학화하여 환자들이 더 편리하게, 더 확실하게 나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의학 연구자들을 더욱 육성하는 일이 매우 필요하다. 실제로 일부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의사들도 환자 보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의학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학 전반에서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일을 최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초의학자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저명한 외과 교수가 “외과는 수술기술이 중요한데 기초의학은 해서 뭐해”라는 말을 듣고 우리 일부 의학자들의 의식에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 먼저 의학계 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기초의학자들과 연구에 전념하는 임상의학자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좋을 것이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