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삶엔 어머니의 강인함과 성실함이 그대로 배어있는 듯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유난히 핏기없어 보이는 하얀 얼굴의 여려 보이는 그녀.

하지만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수식어는 그녀의 삶이 여린 소녀의 삶이 아님을 말해준다.

 

미국에서 탄생, 10살 전까지 외국에서 생활한 그녀의 삶엔 어머니의 강인함과 성실함이 그대로 배어있는 듯했다.

5남매를 키우기 위해 새벽부터 컨비니언스를 경영했다는 그녀의 어머니는 불고기햄버거를 최초로 개발해 파시기도 했다 한다. 오빠를 낳고 항상 천식으로 고생하셨다는 어머니는 에고 힘들어 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실 정도였다고...

어머니 화장대 위엔 화장품 대신 천식 치료 기구들이 즐비해 있었어요. 천식 치료하던 드렁드렁 소리가 아직도 제 귓가에 들리는 듯해요.”

항상 입으로는 힘들다 하셨지만 한 번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시지 않았다는 어머니!

그녀의 기억 속의 어머니는 한마디로 슈퍼우먼이셨다.

 

일을 하시면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5남매 아이들의 앨범을 각각 만들고, 따로따로 인화해 각자의 앨범을 만들어 놓으셨다 한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처음 가본 발레학원. 조그마한 목조건물의 교회 안에 있던 그 발레학원은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고.

이곳에서 처음 언니들이 하는 공연에 다람쥐로 출연했어요. 저의 첫 데뷔 공연이라 할 수 있지요. 다람쥐 복장을 뒤집어써서 엄청 덥기도 했지만,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발레리나 문훈숙은 선화예술학교, 영국 로열발레학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워싱턴발레단에 입단하면서 프로무용수가 되었으며,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구성원이자 한국의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아빠 비서가 너무 멋있어 아빠 비서가 되고 싶었던 어린 꼬마

 

아빠 비서가 너무 멋있어 아빠 비서가 되고 싶었던 어린 꼬마가 1989,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 초청으로 지젤주역 무용수로 무대에 올라 7차례의 커튼콜을 받는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성장했으며, 키로프 극장에 선 최초의 동양인이라는 화제까지 불러일으켰다.

 

7살 때 시작한 발레, 토슈즈를 신고 처음 섰을 때 내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된 느낌이었어요. 온 세상 위에 내가 올라선 느낌이랄까? 바닥에서 몇 센티 밖에 안되는 높이를 올라 선 거지만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어요.”라는 그녀는 이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32년을 발레리나로 살아온 그녀도 공연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게 있다고.

서곡이 시작되고, 입장하기 전의 시간은 저에겐 지옥 같은 시간입니다. 커튼 뒤에 서 있으면서 뛰는 제 심장은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쿵쾅거려요. 만화에서 보면 심장이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듯이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파바로티가 한 말이에요. ‘막이 오르기 전 5분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적이라도 그 순간을 겪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라고. 세계적인 테너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내가 나약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에 그나마  좀 위로가 되더라고요.”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1992년 키로프 발레단 초청 돈키호테’, 1995년 키로프 발레단 초청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며 세계적 발레스타로 자리매김한 그녀지만 항상 어려운 동작 부분에서 실수할까 봐 걱정을 한다. 나이가 들면 수월해질 거라 생각되지만,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짐으로 인해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첫 공연보다는 두 번째 공연이 더 힘든 것 같아요. 둘째 공연에 대한 징크스가 있는 것 같고요. 첫 번째 공연은 몰입도가 극치에 달하지만 두 번째 공연에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므로 인해 공연 몰입도가 첫 번째보다는 떨어지는 법이거든요. 아마 심리적 요인이 큰 거겠지요.”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뜨개질하면서 살고 있을 거라는 그녀는 아름다운 것을 담는 사진 촬영이나 책을 읽는 시간을 좋아해요. 쉬는 시간에 청소하는 게 나에게는 정리의 시간과 스트레스 해소의 시간이 된다라고 한다.

 

발레리나로서의 활동 외에도 단장으로서의 그녀는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초기부터 발레의 종가(宗家)’라 할 수 있는 러시아 키로프 극장의 정통 바가노바 교수법을 채택, 유니버설발레단의 초석을 탄탄히 다져왔다.

엄마의 영향으로 생활력이 강한 면이 있나 봐요. 전 집안 정리를 정말 잘하는 편이에요. 집안 정리와 마찬가지로 경영도 일종의 정리가 아닐까요? 저는 경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항상 전체 공적인 것만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사적인 것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어서 제 나름대로 사적 감정은 배제하는 편입니다.”.

 

'어떤 삶이 되더라도 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여자가 돼라'

유니버설발레단은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비전에 따라 19845월 창단한 민간예술단체이다. 1회 공연인 신데렐라를 필두로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18개국에서 1,800회 이상의 공연을 선보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으로 성장해 왔다.

 

유니버설발레단을 이끄는 예술경영인으로서의 문 단장은 공연 전 발레 감상법 해설’ ‘공연 중 실시간자막 제공등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15년에는 유니버설발레단 교육장학사업의 일환으로 주니어컴퍼니를 설립하여, 재능과 소질이 뛰어난 10대 유망주를 발굴 육성하고 있다. 그 외에도 유니세프와 자원봉사 애원을 통해 지속해서 기금과 재능을 기부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훈숙 단장은 2009년 한국발레협회 대상, 2010년 대한민국정부 화관문화훈장, 2011년 경암문화재단 경암학술상, 2012년 국제공연예술협회(ISPA) ISPA AWARD-최고 경영자상과 한국 발레협회발레 CEO,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여성문화인상과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공연예술 경영상 대상,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문화상, 2018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2019년 한국무용협회 예술대상을 수상했다.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코로나 19로 공연계는 너무 힘들어요. 공연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요. 저희도 몇 개월째 힘들어 고용지원금을 신청했답니다. 경영적인 것도 문제지만 무대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단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발레리나가 무대 위에 설 수 없다는 건 살아있는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는 문 단장. 통일교 신자인 그는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차남과 약혼했고,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숨지자, 스물한 살의 그녀는 '영혼결혼식'을 택했다. 자신의 이름인 '박훈숙'이 아닌 '문훈숙'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보상에 따른 결혼이라는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무슨 욕심이 많았겠어요. ‘혼자 예술에 몸 바쳐 살아라라는 아버님의 말씀에 순응했고, 종교적인 믿음에 따라 제가 결정한 겁니다. 친정 아버님은 전쟁을 경험하신 분이시고 전쟁터에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답니다. 그런 아버님이 저에게 '어떤 삶이 되더라도 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여자가 돼라'는 말씀을 하셨고요.”

 

만약 지금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어떤 결정을 하겠냐는 질문에 생각할 수도 없다. 약속이니까라는 그녀. 믿음과 약속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발레는 아름다움 자체에요

발레는 아름다움 자체에요. 괴테가 인간의 영혼 속에 아름다움이 상실되지 않도록 매일 시를 읊거나 아름다운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것을 보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마 괴테가 발레를 알았다면 발레도 저 말속에 포함되었을 텐데요. ㅎㅎ. 발레라는 예술은 높이 뛰고 하나님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예술이라 생각해요.”

 

발레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 뒤 발레리나의 고통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모든 예술은 바라봐주는 관객이 있어야 해요. 상대를 위해 기쁨을 주고 또한 그 행위에 나도 행복해하는 서로를 위한 행위라 생각해요. 창조하신 그분에게 기쁨을 드리는 역할, 부모님과 형제에게 기쁨을 드리는 것처럼...”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단장으로서의 삶과 발레리나의 삶, 어느 쪽이 더 힘드냐는 질문에 발레리나로서의 삶은 몸이 힘들지만, 단장은 모든 이들을 챙겨야 하고 단원들에게 에너지를 매일매일 나누어 주어야 해요. 현역으로 춤출 때는 이 세상에 이것만큼 힘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은퇴 후 보니 또 다른 난관이 있다라고 말하는 문 단장은 “ceo의 삶도 예술이다. 한 조직을 잘 돌아가게 하는 것도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비전을 제시하고 의욕을 북돋워 주어야 하고, 동기부여도 해주어야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고,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줄리아 발레아카데미는 발레를 통한 행복한 성장을 돕는 통합예술교육의 프리미엄 발레 교육기관으로써 행복한 성장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주니어컴퍼니는 유니버설발레단이 만든 영재 육성 프로젝트다. 재능과 끼가 넘치는 중·고등학생 유망주를 발굴해 발레단의 앞선 교육 시스템을 통해 세계적인 프로 무용수로 성장시키고자 이 단체를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창작발레 ‘심청’과 ‘춘향’은 외국인이 한국문화를 쉽게 이해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며 발레로써 한류의 붐을 일으킨 작품이다. 

문 단장은 코로나가 안정화되어 빠른 시기에 공연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자료제공 - 유니버설발레단
자료제공 - 유니버설발레단

 

찾아가는 발레, 관객과 좀 더 가까이 가고자 노력한다는 그녀는 다시 학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처럼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그녀.

본인이 조금이라도 그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그녀.

 

여린 듯 강한 큰마음을 가진 그녀가 추구하는 한국 발레의 세계화가 가까워지는 시간이 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한국적인 발레가 k-pop처럼 세계인들을 매료시킬 그 날을.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촬영 - 박미애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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