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보다 중요하다.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적게 먹고, 제철에 나는 다양한 채소와 과일은 껍질 채 먹어 다양한 피토케미칼을 섭취하고, 인스턴트 식품과 정제된 탄수화물 식품은 피하고, 적당량의 단백질과 지방을 먹으면 좋다.

 

조선 시대 우리 선비들은 사군자(四君子) 즉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즐겨 그렸다. (매화, 雪梅), 여름(난초, 蘭草), 가을(국화, 秋菊), 겨울(대나무, 靑竹)을 뜻하는데 정직, 순결, 겸손, 인내의 상징이기도 하고 군자를 비유한다고 하여 많은 문인이 먹을 듬뿍 묻혀 정갈하게 준비된 한지에 담담하게 그렸다. 사군자는 그림의 소재보다는 시문의 소재로 먼저 등장하였다. 송나라 시대부터 중국 회화에 자주 이용되었고, 한국, 일본의 예술가들이 이를 받아들여 즐겨 그렸다. 사군자라는 명칭은 명대 이르러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희 문인 조희룡은 매화, 또 다른 김정희 제자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은 난, 정조와 허필은 국화, 신사임당, 신위, 강세황은 대나무 묵화에 뛰어난 경지를 보여 주었다. 김정희는 서예만이 아니라 난을 잘 그린 대가로도 알려져 있다. 석파 이하응의 난 그림은 현재 매우 고가로 거래되고 있는데, l910 년 대에는 우당 이회형 등이 흥선대원군의 그림을 대량 위작, 판매하여 독립군 자금을 마련하였다니 흥선대원군 묵난화는 중국인들도 매우 좋아했던 것 같다.

강세황의 필란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묵난화로 인정받고 있고, 조선 초기 수문의 묵죽화책은 현존하는 대나무 그림으로서는 가장 오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불행히도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민영익, 김규진 등이 대나무를 잘 그렸다. 최근에는 전주의 강암 송성용 묵죽화가 유명하다. 송성용 그림과 서예는 전주 송성용 서예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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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선비들과는 달리 서양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매난국죽 중에 국화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르누아르, 모네, 세잔, 드가 등이 국화를 즐겨 그렸다. 대나무는 모네가 몇 점 그렸고, 매화는 서양에는 없는 나무여서 그림 소재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흐는 사군자를 그린 그림은 없고, 대신 장미와 해바라기 그림이 유명하다. 현대화는 소재에 제한을 두지 않고, 보이는 풍광은 물론 보이지 않는 소재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림이 많이 난해해져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된 단점이 있기는 하다.

그림은 그림대로 좋지만 그래도 꽃과 숲과 나무들을 자연에서 직접 보고 만지고 호흡하면서 향기 맡으며 느끼는 감정은 남다르다. 담양 대나무숲에 들어가면 묵으로 친 대나무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섬진강 매화, 보성 무안 나주의 난과 그 꽃들, 마산 서산 화순 함평의 국화, 거기에 더해 제주도 유채꽃, 부천 삼척의 장미 등 이곳저곳 다녀보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이 화려한 꽃과 나무로 장식된 정원 같은 느낌이 든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특화하는 면도 있어 보인다. 사연이야 어쨌든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우리나라는 원래 산수가 아름답다. 2009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을 한가히 걸으며 오랜 수목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의 기적은 경제발전이 아니라 헐벗었던 산천을 짧은 기간에 수목으로 가득 채운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산림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계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숨겨져 있는 명승지도 이들보다 못하지 않다.

그런데 인간이 수목을 바라보며 느끼는 이런 충만한 감정을 식물들도 똑같이 느낄까? 아니면 인간만이 느끼는 주관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일 뿐일까? 인간들이 속사정도 모르고 곁에서 철없이 희희낙락할 때 식물들은 행복은 잠깐,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식물의 입장이 되어 조금만 생각하면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모진 고생을 감당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동물들은 비바람 불고 눈보라 날리면 몸을 옮겨 피할 수 있다. 자기를 먹기 위해 다가오는 포식자들에게서는 줄행랑을 칠 수도 있다. 배고픈 동물들은 주변 나무 열매나 잎을 먹거나, 잡은 먹잇감을 먹으면 된다. 반면에 식물은 자연재해나 동물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한다. 눈비가 오거나 추위와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낮과 밤이 바뀌어도, 폭풍우로 가지가 꺾이거나 뿌리가 뽑혀도, 지나가는 동물의 무심한 발길에 몸뚱이가 짓이겨져도, 게걸스러운 동물들이 탐욕스럽게 뜯어 먹어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식물은 동물보다 삶의 조건이 훨씬 고달프다. 그런데도 식물들은 살아남아, 일부는 수천 년 살아남아, 단명의 동물들을 품속에 품어 편하게 살 수 있게 한다. 풀과 나무와 숲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는 생명이 풍성하게 살아갈 수 없다.

그럼 식물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식물들도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피토케미칼이다. 피토케미칼은 식물의 2차 대사물이다. 우리 몸에 유익한 작용이 있어 생리활성물질이라고도 한다. 식물이 살아가는데 직접 필요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이 1차 대사물이라면, 2차 대사물인 피토케미칼은 식물이 자신을 먹으려 하는 침입자나 각종 미생물, 해충 등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경쟁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여 자기가 더 우위를 점하려고 만들어내는 대사물질이다.

특히 식물이 위협이나 곤경에 처했을 때 많이 생산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물질이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좋거나 성장이 활발할 때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식물은 성장을 포기하고 피토케미칼을 더 많이 생산하여 일단 생존을 유지한다. 살고 봐야 나중에 성장도 할 수 있으니 성장을 포기하고 생존에 집중하기 위해 피토케미칼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피토케미칼은 침입자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온실에서 살아온 사람보다는 역경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아우라가 더욱 세듯 식물도 역경을 극복하며 살수록 더 다양하고 진한 피토케미칼을 생산하는 것이다. 영악한 인간과 동물들은 이런 산고 끝에 생산된 피토케미칼을 헐값에 먹는 것이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그런데 어떻게 초식동물이나 사람들은 독성마저 있는 피토케미칼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인간이나 동물은 부모와 동료로부터 배우거나 시행착오를 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유익한 식물을 성공적으로 골라왔다. 먹을 수 없는 피토케미칼을 함유한 식물을 섭취한 동료들이 병들어 아프거나 죽는 것을 보며 결국 먹을 수 있는 소수의 식물을 성공적으로 선택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과일 채소 등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그 많은 식물 종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고른 과일 채소 속에 있는 피토케미칼은 적정량을 섭취하게 되면 우리 몸에 매우 유익하다. 물론 양이 결정한다. 과량은 독이 되고, 적정량은 유익하다.

피토케미칼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식물에서 정제하여 현재 약품으로 쓰이고 있는 화합물들도 피토케미칼의 일종이다.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아스피린, 키나 나무의 껍질에 있는 말라리아 특효약 퀴닌, 커피의 카페인, 주목에서 추출한 항암제 택솔 등이 모두 피토케미칼이다.

분류 방법은 다양하지만 크게 페놀화합물(Phenolic compound), 유기황화합물(Organosulfide), 알칼로이드(alkaloid), 카로테노이드(carotenoid), 질소화합물(nitorgen-containing compound)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각각의 물질들은 아주 많은 화합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페놀화합물에는 단순페놀물 (simple phenolic)과 폴리페놀(polyphenol)이 있다. 단순페놀물에는 페놀산과 쿠마린 계통 화합물이 속하고, 폴리페놀은 다시 플라보노이드와 비플라보노이드 계통으로 나눠진다.

플라보노이드는 플라본(루테올린), 플라바놀(카테킨), 플라보놀(케르세틴), 이소플라본(제니스타인), 안토시아닌 등 다양한 화합물을 포함하고 있고, 비플라보이드 계통에는 스틸벤(레스베라트롤), 탄닌, 커큐미노이드(커큐민), 리그난 등의 화합물 계통이 있다.

유기황화합물 계통에는 설포라판(sulphoraphane), 다이알릴 설파이드(diallyl sulfide), 이소티오사이아네이트(isothiocyanate)등 황이 들어있는 화합물을 칭한다. 카로테노이드에는 루테인(lutein), 카로틴(alpha, beta carotene), 리코펜(lycopene) 등이 있다.

모든 생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활성산소가 발생한다. 심지어 박테리아도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항산화 방어기전을 가지고 있다. 식물은 동물보다 더 강력한 항산화 방어막을 가지고 있다. 동물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하다. 피토케미칼이 바로 식물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항산화 물질이다. 이것들이 섭취한 인간이나 동물의 몸속에서도 항산화 작용을 나타낸다. 이 외에도 암과 염증을 억제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심혈관, 신경계, 골격계 등 신체 모든 부위의 질병을 예방한다. 특히 성인병 예방에 좋다.

그럼 피토케미칼은 정제된 화합물을 먹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야채나 과일 혹은 곡물로 먹는 것이 좋은가? 시중에는 정제된 다양한 피토케미칼이 건강보조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결론은 채소나 과일을 직접 먹어 피토케미칼을 보충하는 것이 정제된 피토케미칼 몇 종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살펴보자.

토마토는 오래전부터 전립선암 발생률을 낮춘다고 잘 알려져 있다. 남자들의 경우 나이가 들면 이 질병 예방을 위해 토마토를 많이 먹는다. 이 토마토에는 리코펜이라는 피토케미칼이 가장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이 토마토 대신 리코펜만 먹어도 전립선암과 전립선 비대증 발생률이 낮아지는지 궁금했다.

만약 리코펜이 토마토를 대신할 수 있다면 제약회사나 건강기능 식품회사는 큰돈을 벌 수 있어서 과학자의 단순한 호기심만이 아니라 돈이 관여된 연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쥐에다 전립선암을 발생시킨 후 일부 쥐에는 토마토 가루를 먹이고, 일부 쥐는 고용량 리코펜을 주었더니 순수 리코펜만 먹은 쥐가 전립선암으로 현저히 많이 죽었다. 쥐는 사람과는 다를 수 있어 과학자들은 사람에 관한 연구도 쥐와 같은 실험을 하고 싶었으나, 이 실험을 위해 인위적으로 사람에게 전립선암을 유발하는 것은 불가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쥐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자 했다.

과학자들은 전립선암 병력이 없는 55에서 74세 사이 남성 28,000명을 8년 동안 추적조사 했다. 그동안 1,320명이 전립선암에 걸렸는데 이들의 혈중 리코펜 농도와 발병 사이에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었다. 직접적인 실험은 아니지만, 통계분석을 통해 정제된 리코핀이 전립선암 발생률을 낮출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립선암 생쥐들에게 토마토 가루 10%를 함유한 식단, 브로콜리 가루 10%를 함유한 식단, 토마토와 브로콜리 가루를 섞어 10% 함유한 식단을 먹인 후 전립선암이 줄어든 정도를 보았더니 토마토와 브로콜리를 섞어 먹인 집단의 암 크기가 가장 많이 줄었다. 이 실험 결과는 유효성분만 추출해 먹는 것보다는 채소나 과일을 먹는 것이 좋고, 한 종류를 많이 먹는 것보다는 다양한 종류를 한꺼번에 먹어야 좋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었다.

그럼 과일의 경우 껍질과 과육 중 어느 부위를 먹는 것이 좋을까? 답은 과일 껍질에 피토케미칼이 많으니 가능하면 껍질 채 먹는 것이 좋다. 식물이 피토케미칼을 생산하는 목적이 미생물이나 병충해, 혹은 초식동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니 당연히 과육보다는 껍질에 많다. 그래야 타 생명체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더 잘 지킬 수 있으니까.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아도 과일 껍질에 피토케미칼이 가장 많다. 과육은 에너지를 제공하는 탄수화물이 가장 많다. 그래서 당뇨병 등 대사질환이 심한 사람은 사과 껍질만 먹고, 과육은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버리는 것이 더 좋다. 대부분 깎아 버린 사과껍질이 더 좋은 식자재라니 상식에 어긋나 당황스럽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영양학적으로는 그렇다. 사과만 그런 것은 아니고 식감이 나쁘더라도 껍질을 먹을 수 있는 과일은 껍질 채 먹는 것이 좋다. 과육은 탄수화물이 풍부해 혈당을 올리고 그에 따라 대사질환을 악화시키거나 비만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에너지가 부족했던 시절과는 다른 상황이다. 채소도 마찬가지로 햇빛에 직접 노출된 바깥쪽을 먹어야 좋다. 배추의 경우 바깥 거칠고 파란 부위보다는 하얀 속살이 부드럽고 보기 좋다고 이 부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피토케미칼을 잘 섭취하기 위해서는 바깥 푸른 부위를 먹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과일을 껍질 채 먹을 때 많은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농약이다. 합성 살충제나 비료를 쓰지 않고 엄격히 유기농만으로 재배한 이상적인 유기농 식품에는 농약이 없을 것이다. 바람직한 식품이다. 이 외에도 유기농 식품은 또 다른 이점이 있다. 합성 살충제나 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된 식물은 농약을 사용해 재배된 식물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유기농 식품에는 피토케미칼이 더 많이 들어있다.

인도 농촌 지역에서는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를 쓰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데 이를 먹는 인도인들은 혈중 살리실산 농도가 유럽인보다 매우 높고, 특히 채식만 하는 불교 승려의 경우 어린이용 아스피린을 매일 한 알 먹는 정도의 혈중 살리실산 혈중 농도를 보였다고 한다. 인도인들에게는 대장암 발생이 적다고 하는데, 살리실산이 많은 유기농 식품섭취에 더해 인도인들이 즐겨 먹는 여러 향식료에도 살리실산이 많다고 하니 살리실산의 축적으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아스피린은 대장암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기농 식품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도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영상의학계에서 명의로 알려진 임재훈 교수는 미나리에 붙어 있던 간질충이 입을 통해 들어온 뒤 소장 벽을 뚫고 뱃속을 돌아다니다 간을 거쳐 담관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 기생충이 담관에서 장기간 살면서 담낭암 등 병을 일으키게 된다고 보고하였다. 원래 간질충은 소의 기생충으로 주로 소의 간을 날로 먹을 때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임재훈 교수가 새로운 사실을 밝힌 것이다.

임재훈 교수는 내가 학생 때 영상의학 강의를 해 주신 은사님이기도 한데, 퇴임 시까지 이런 중요한 연구를 열정적으로 수행하여 세계 의학계에 큰 공헌을 이루었다고 하니 후학들에게 큰 교훈을 주신 것이다. 이처럼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나 과일은 더 많은 기생충이나 미생물에 노출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재배 된 채소나 과일이라 할지라도 잘 살펴보면 농약도 그리 크게 염려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1일 섭취 허용량을 의미하는 ADI(Acceptable Daily Intake)는 사람이 평생 매일 먹어도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하루 섭취 한도량을 말하는데 세계보건기구(WHO)가 농약에 설정한 ADI는 매우 엄격하다.

어떤 농약에 가장 민감한 동물을 정한 후 그 동물에게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 최대 섭취량을 알아보고 그 양을 100으로 나눈 수치가 사람의 ADI라고 한다. 즉 어떤 사람이 ADI1%를 섭취했다고 하면 그 농약에 매우 민감한 동물에게 아무런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 양의 일만분의 일을 섭취했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 사람에게서 관찰되는 농약 잔류량은 ADI1-5% 정도라고 하니, 채소나 과일을 잘 씻어 먹으면 일반재배 식품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농약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유기농 식품도 미생물이나 기생충 때문에 잘 씻어 먹어야 한다. 일반재배 식품이나 유기농 식품 모두 결국 먹기 전에 물에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공통 과정을 겪어야 한다. 특히 기생충이나 병원성 미생물이 염려되는 채소는 반드시 익혀서 이들을 죽인 후 먹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2WHO10가지 몸에 좋은 식품을 정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을 통해 알려줬다. 토마토, 시금치, 견과류, 브로콜리(또는 양배추), 귀리(또는 보리), 마늘, 녹차, 적포도주, 블루베리(또는 가지), 그리고 연어가 권장된 식품이다. 9가지가 피토케미칼이 풍성한 식물성 식품이고, 연어만이 동물성 식품이다. 물론 이 식품들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식품에만 너무 집착하면 좋지 않다. 대신 제철에 나는 다양한 색깔-무지개색을 나타내는 모든 채소와 과일을 적정량 고루 섞어 먹는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물론 흰색의 마늘과 버섯, 검은색을 띠는 콩과 곡물에도 다양한 피토케미컬이 들어있어 함께 섭취하면 좋다. 다만 단 과일을 먹을 때에는 탄수화물 과량 섭취를 염두에 두고 소량만 먹는 지혜와 자제력이 필요하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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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포도주에 얽힌 사연을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식품선전을 대할 때 과학적으로 잘 밝혀진 사실이라고 광고를 해도 쉽게 믿으면 안 되고 세심히 따져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1991년 미국 CBS 방송국의 ‘Sixty Minites’라는 인기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초대받은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심장 전문의이자 포도주 연구자인 세르주 르노(Serge Renaud) 교수는 적포도주가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프렌치 파라독스라는 학설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세간의 입을 타고 유명해졌다.

프랑스인이 미국인이나 영국인과 비교해 심장병 유발 인자들, 즉 포화지방 섭취량, 혈압, 혈청 내 콜레스테롤 농도, 운동량, 흡연량 등이 더 나쁜데도 심장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은 까닭은 프랑스인들은 적당한 양의 포도주를 규칙적으로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르노 박사는 적포도주에 포함된 폴리페놀 성분이 이러한 효과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적포도주 폴리페놀은 붉은 색깔과 적포도주 고유의 씁쓸하고 텁텁한 맛을 내게 하면서도 와인을 맑게 만드는 주요 성분이다. 이 페놀 화합물은 껍질과 씨에 풍부하며 오크 통에서 숙성할 때 우러나오므로 적포도주에 다량 함유돼 있다. 함유된 폴리페놀의 종류는 레스베라트롤, 안토시아닌, 프로안토시아토닌, 페놀산 등이 대표적이다. 이 폴리페놀은 레드 와인의 경우 1 리터 당 1-3g, 화이트 와인에는 0.2g이 함유되어 있고, 알코올에 용해되는 성분이므로 포도 주스나 백포도주, 포도를 섭취할 경우 적포도주를 마실 때보다 흡수량이 적다.

레드 와인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학설이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런데 프렌치 파라독스의 주원인이 레드 와인이 아니고,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보다 칼로리를 적게 섭취하고, 비만도 적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또 다른 이유로는 프랑스 의사들은 사망 시 심장이상으로 기술하지 않고 다른 원인으로 기술하는 반면, 미국 의사들은 주로 심장이상으로 기술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더구나 프랑스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미국 사람들과 거의 같다고 한다. 이런 학설은 프렌치 파라독스의 원인이 적포도주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아직도 적포도주 학설을 믿거나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포도주 생산지 사람이나 와인 애호가들은 레드 와인이 프렌치 파라독스의 주원인이라고 믿고 주장한다. 적포도주를 서너 잔 마시는 사람들은 대장암과 전립선암에 걸리는 비율이 낮다는 보고도 있고, 수명을 연장하거나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한다는 주장도 있다.

레드 와인에 많은 레스베라트롤이 주로 이런 작용을 나타낸다고 한다.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레스베라트롤이 장수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밝히고, 장수를 위해 레스베라트롤에 추가해 메트포르민, 그리고 NMN을 섭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토케미칼이 우리 몸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매 식사 시간에 어떤 식품에 어떤 피토케미칼이 많이 있는지 따져보고 그런 식품을 먹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양의 비밀저자인 프레드 프로벤자 교수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몸이 알아서 부족한 화합물을 섭취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영양소 앞에 있으면 각각의 동물들은 자기 몸에 부족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식물을 섭취해 부족한 피토케미칼을 섭취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1939년 클라라 데이비스(Clara Davis)라는 소아과 의사는 시카고에서 6개월에서 11개월 난 보육원 아기 15명에게 다양한 음식을 차려준 후 먹는 모습을 관찰하고, 인간도 자기 몸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선택해 먹는다고 주장하였다. 클라라는 지방, 탄수화물, 아미노산, 미네랄, 비타민 등이 잘 섞인 34가지 음식을 제공하고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관찰했는데, 어떤 아이도 다른 아이와 똑같은 음식을 선택하지 않았고, 어떤 아이도 똑같은 음식을 두 번 먹지 않았다. 그래도 모든 아이가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랐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어린아이라 해도 자기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스스로 찾아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해야 할 때 너무 머리 쓰지 말고 몸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갑자기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가 생긴 경험이 많이 있어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수긍할 수 있다.

식품회사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는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사람들의 이런 욕망을 만족시키고 부추김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취한다. 그들은 피토케미칼은 함유되어 있지 않으나 그와 유사한 향내와 식감을 내는 인공감미료를 개발하여 정제된 고에너지 탄수화물이나 육류에 넣어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런 식품에는 식욕 억제작용이 있는 다양한 피토케미칼이 없어 포만감을 느끼지 못해 더 먹게 된다. 비만 당뇨병 등 대사증후군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엄마의 식성이 태아에까지 영향을 미쳐 태아가 성인이 되어도 엄마의 식성에 영향을 받게 된다니 건강한 식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적게 먹고, 인스턴트 식품은 피하고, 제철에 나는 다양한 채소와 과일은 물에 잘 씻은 후 섞어 껍질 채 먹어 다양한 피토케미칼을 섭취하고, 정제된 탄수화물 식품은 피하고, 적당량의 단백질과 지방을 먹으면 좋다. 기생충이나 미생물이 염려되는 식품은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한다. 어떤 종류의 식품을 먹을 것인가 선택하는 문제는 몸이 원하는 대로 따르면 될 것 같다.

중요한 점 하나. 약과 식품은 다르다. 정제된 피토케미칼보다 과일이나 채소를 먹으면 좋다고 하니, 다양한 동식물이 혼합된 첩약이 현대 의약품보다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약은 정확한 용도에 맞추어 복용해야 하니 의약품에 대한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기준을 정해 그렇게 까다롭게 조사하고 기준을 통과해야만 허가를 내주는 것이다.

정제가 어려우나 효과가 있는 일부 식물제품들에 대해서는 생약이라는 이름으로 허가를 내주는데, 이 경우에도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생약으로서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첩약도 표준화된 제품을 만들어 철저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것이 무엇이든 첨단과학의 시대에 국가가 주먹구구식을 공인, 허락해주는 짓은 이제 더는 하지 말아야 우리나라도 더욱 이성적인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공인이 없는 민간요법을 개인들이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일이야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매일 먹는 음식이 약보다 중요하다. 조상님들 지혜대로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적당히 먹으라는 말씀 잘 따르면 백 세까지 건강히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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