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종교의 힘은 막강하다.
우리는 간혹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방황한다. 특히 치명적인 질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종교, 과학 모두 급할수록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종교와 과학은 서로 대립하는 것 같다. 기독교의 창조론과 다윈의 진화론은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의학은 과거에는 기술로 여겨져 인술 혹은 의술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정밀한 과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종교와 의학은 상호의존적이고 보완적인 면이 많다. 물론 의학이 발달할수록 의학은 더 과학적이 되지만, 환자들은 급한 경우에는 아직도 종교에 더 의탁하는 경우가 많다.

루르드(Lourdes)는 프랑스 남서쪽 피레네산맥에 있는 작은 시장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매년 500만 명 정도의 순례자와 관광객이 방문하고,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숙소가 많은 곳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까닭은 이곳에 기적의 치료 샘물이라고 알려진 성수가 있고, 루르드의 성모(Notre Dame de Lourdes)로 알려진 성모 마리아께서 18회에 걸쳐 현신하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많은 가톨릭 신자들께서도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루르드 샘물은 순례객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도록 매년 무상으로 1000만 리터(L)나 제공된다고 한다. 이곳에 오는 모든 방문객은 성스러운 분위기에 사로잡혀 성모 마리아 은총에 깊이 감사하며 매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진제공 - 박미애 사진가
사진제공 - 박미애 사진가

 

루르드가 이렇게 유명한 성모 순례지가 되어 많은 순례객이 방문하게 된 계기는 1858211일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라는 14살 가난한 소작농 소녀가 마사비엘 동굴에서 아름다운 부인을 보게 된 일이다. 그해 225일 이 부인의 지시에 따라 베르나데트가 손으로 작은 흙탕물을 깊이 파헤친 후 마시고 목욕하자 갑자기 엄청난 양의 깨끗한 샘물이 나왔고, 이를 통해 베르나데트는 앓고 있던 천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갖 종류의 병을 앓는 많은 환자가 몰려와 이 샘물을 이용하여 기적적으로 치료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도관을 통해 성수를 마시거나, 일부 환자들은 특수하게 마련된 차가운 목욕탕 안에서 약 5분가량 침수 치료를 받는다. 어느 곳에서나 일에 익숙한 대부분 봉사자가 그렇듯 그곳 봉사자들도 환자들을 기계적으로 목욕탕 속으로 던져 넣는데, 희한하게도 이런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매우 행복하다고 한다. 봉사자들은 환자들이 탕에서 나올 때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여,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옵소서! 베르나데트 성녀님,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옵소서!”라고 외친다고 한다.

마사비엘 동굴의 아름다운 부인은 나중에 성모 마리아로 알려지게 되어 현재는 루르드의 성모(Notre Dame de Lourdes)라고 부르고 있다. 성모 발현 이후 루르드에서는 지금까지 7천여 건의 기적 치유 사례가 보고 되었는데,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적은 20202월 현재 총 70건이라고 한다. 베르나데트는 나중에 수녀가 되었고, 봉사하는 삶을 살다 35살에 사망하였는데, 시체가 부패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다. 신기한 일이다. 베르나데트의 일생은 몇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일반, 특히 가톨릭 신자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 같다.

루르드의 기적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안세화(Florian Demange) 주교는 마사비엘 동굴과 똑같은 동굴을 만들어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하고, 19177월 착공하여, 1918815일 완공하였다. 실제 마사비엘 동굴의 크기와 바위의 세부적인 형상까지 비슷하게 만들었고, 루브르 동굴에 있는 모습과 유사하게 성모 마리아상을 모셨다.

이 건물은 19901215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구 성모당도 루브르처럼 병을 낫게 한다고 알려져 많은 천주교 신자가 찾고 있다. 성모당의 건축물 상부에 크게 적힌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 글자가 인상적인데, 1911은 대구대교구청이 처음 생긴 해이며, 1918은 성모당을 완공한 해이다. 가운데 글자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와의 약속대로'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안세화 주교의 염원이 우리나라에 영원히 꽃피게 된 것이다.

루르드의 성수에 대한 소문이 무성해지자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시도도 많이 따랐다. 1858년 루르드의 앙셀름 시장이 처음 시도하였는데, 물은 깨끗하며 특별한 물질이 들어있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191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알렉시 카렐(Alexis Carrel)은 불치라고 판정된 결핵 환자가 이 물을 마신 후 완치되자 루르드 성수의 기적을 인정하게 된다. 카렐은 이 일을 계기로 프랑스 의학자들로부터 따돌림받아 프랑스 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혈관 봉합술과 장기이식에 관한 연구를 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전화위복인 셈이다. 카렐의 이러한 인생역전을 루르드의 성모께서 도우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프랑스로 돌아간 카렐은 비시 정권과 가깝게 지내다 말년이 좋지는 않게 사망하였다. 카렐은 후에 루르드 성수에 게르마니움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성수효과가 게르마니움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모든 종교에는 기적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많다. 불교와 관련된 기적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세조와 강원도 오대산의 문수보살에 관한 전설이 대표적이다. 오대산 상원사는 문수 신앙의 중심지인데, 상원사 위쪽 적멸보궁은 신라 말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수도를 마치고 귀국해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한 곳이기 하다. 지금은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가는 길을 세심하게 다듬어 놓아서 힘은 들어도 좋은 경치 감상하며 상쾌하게 걸을 수 있다.

세조는 왕이 되기까지 조카 단종과 사육신을 비롯한 숱한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그런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인지 세조는 피부병을 심하게 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나병이라는 말도 있다. 등창을 심하게 앓던 세조는 즉위 10년째 되던 해 오대산에 왔다가 종기가 난 몸을 신하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혼자 오대천 물에 몸을 담갔는데, 마침 지나가는 동자가 있어 등을 닦게 했다고 한다. 동자의 손이 등에 닿자 종기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고 몸이 가뿐해져 기분은 좋았지만 자기 병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던 세조는 너는 왕의 몸을 만졌다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하고 주의를 주자, 등 뒤의 동자도 왕께서도 문수동자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해서 세조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으나 동자는 보이지 않았고 종기만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사진제공 - 김태훈 사진가
사진제공 - 김태훈 사진가

 

기묘한 영험을 겪은 세조는 화공에게 자신이 보았던 문수동자의 모습을 설명해 주고 그림으로 그리게 했고, 그 그림을 보고 문수동자상을 조성해 상원사에 모셨는데, 오늘날 상원사에 전하는 문수동자상이 바로 그것으로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원사에 가서 문수전에 들어서면 귀여운 문수동자상이 보인다. 세조가 권력을 잡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인 일이 이렇게 문수동자를 통해 참회받았다고 미화하였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굳이 비하할 필요는 없고 아름다운 전설로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루르드 샘물의 기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가톨릭은 1882년부터 루르드 의무국을 설립하여 운영해오고 있다. 1954년부터는 공신력을 더 높이고자 세계 각국 출신의 전문의 30명으로 구성된 국제의학위원회를 설립하여 루르드 의무국의 판정을 재검토해 기적 판정을 최종결정하게 하고 있다. 이들 의료기관에서 기적이라고 판정받기 위해서는 심리적 병이 아니어야 하고, 확실히 육체에 이상이 있는 난치병이어야 하며, 치료약물을 사용하지 않았어야 한다. 또 치유는 즉시, 완전하게, 영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제의학위원회의 판정 기준이 너무 엄격해 루르드의 기적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아예 없어질지 모르겠다. 가톨릭의 이러한 엄격한 과학적 노력은 타 종교도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루르드 샘물이 기적을 낳았다고는 하나 치료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매년 500여만 명의 환자 순례자가 찾아온다고 하니, 루브르 샘물이 처음 발견된 1858년부터 지금까지 치료목적으로 방문한 사람은 수억 명이 넘을 것이다. 그중 70명이 기적적으로 치료되었다고 하면 치료율이 매우 저조한 것이다. 만약 어느 병원이 이 정도의 치료율을 나타냈다면 그 병원은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루르드 샘물이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바는 환자 치료는 기적의 성지가 아니라 병원이어야 하고, 성직자가 아니고 의사들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소경을 눈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셨다는 이야기가 분명 기록되어 있지만 이를 문자 그대로 믿지 말고 신앙의 한 상징으로 수용하면 좋을 것 같다.

분명 현대의학의 한계는 있다. 현대의학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받았는데도 낫기는커녕 결국 사망하게 되는 환자가 너무 많다. 치료가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환자와 보호자는 의학과 의사들을 불신하게 되고, 검증되지 않은 유사의학이나 기적을 찾아 헤매게 된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곳으로 몰려간다. 그러나 기적은 특정 장소나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암 환자 중에는 어떤 현대의학적 치료에도 좋아지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도 다수 있다. 이런 기적이 왜 일어나는지 아직 잘 모르지만, 암세포에 대한 자체 면역력이 강화되어 자연 치유되었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종교에 귀의하여 열심히 기도하면 환자의 스트레스가 감소해 면역력이 강화되어 치료 효과가 나타날 수는 있다. 종교만이 아니다. 때로는 숲속 새로운 기운과 맑은 공기가 신체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좋은 섭생을 통해 기적 같은 치료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기적적인 치료 효과를 고려해도 치료의 정답은 첨단의학과 훌륭한 의사이다. 의학에 기반을 둔 치료를 적절히 받으며 기타 요법을 통해 기적을 바라는 것은 타당하나 그 역은 해가 득보다 클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역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학은 신념이나 미신보다 확률이 높다. 급하면 급할수록 현대의학에 의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저곳 떠돌며 병을 더 키우는 것보다, 이성적 판단으로 취할 것은 취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할 줄 아는 현명한 환자나 보호자가 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루르드의 성수나 상원사 문수동자의 힘을 찾아 경건히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그리하건 아름답다. 다만 신도 여기저기에서 하는 지나치게 많은 요구에 지칠 것이다. 병든 자가 낫기 위해 루르드의 성수나 상원사 문수동자를 찾는 일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요구 대신 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려고 가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복은 쌓는 만큼 받는다고 한다. 탐욕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신을 찾아 나선다면 더 좋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신도 무지하게 요구하는 사람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람을 더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기적은 흔한 일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과학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이 우선이다. 힘든 병마와 싸우며 심신이 허약해질 때 종교에 귀의하여 신의 은총을 기대해 볼 수는 있으나, 그래도 주된 치료는 현대의학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방법이다. 현대의학이 포기하면 신의 뜻으로 알고 차분히 주변 사람들과 얽힌 삶을 정리하며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그리하다 보면 기적도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닐까?

병 치료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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