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펀드 계를 혁신하고픈 이승언 회장
NPL 계의 미다스 손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

 

 

㈜보정피제이티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보정피제이티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21년간 일본에서 고생해서 번 돈, 한국 와서 사업으로 한꺼번에…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승언회장은 어머님이 절에 가서 백일기도 덕분에 태어났다고 한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의 재력 도움은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21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경영정책학을 전공, 졸업 후 21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일을 해 그는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그동안 고생하며 돈을 벌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후에 제가 성공을 하게 되고 나이가 조금 더 먹으면 묻어놨던 지난 스토리를 말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21년 생활, 아직은 오픈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에 온 지 13년 되었다는 이 회장은 이렇게 일본에서 벌었던 돈을 한국에 오자마자 시작한 LED 사업에 투자해 말 그대로 쫄딱 망하고 만다.

“사업적 분석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 당시 LED 기술은 킨텍스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LED에 관한 법령이 바뀌게 된 겁니다. 원래는 LED 형광등이었는데 LED 표준화 방안이 패널형 규격으로 교체되어버려 사업을 할 수가 없게 된 거죠”

고국에 돌아와 호된 신고식을 하게 된 이승언 회장은 어린 딸이 태어났지만, 백일 및 돌잔치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거의 2년 동안 모든 걸 잊기 위해 산속을 헤매며 칩거 생활을 하였다 한다.

 

고생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고생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해병대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도 되고 싶었고, 의사도 되고 싶었던 꿈 많던 소년 이승언이 고국에 돌아와 처음 맞게 된 위기였다.

주머니엔 정말 몇천 원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이었을까? 일본에서 NPL 투자로 상당한 돈을 벌고 있을 때 그가 도움을 주었던 후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후배에게 전후 사정을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급한 대로 돈을 빌려 월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4개월 후 그 후배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빨리 돈을 못 갚아서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더군요”

이 회장의 일본에서의 NPL 투자 성공신화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후배는 NPL 사업을 제안하였고, 이승언 회장은 일주일 만에 후배가 제안했던 일을 해결하였다.

“제가 유능하다기보다는 하늘이 도왔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일의 운 때가 딱 맞았던 거죠. 이 일로 인해 많은 돈은 아니지만, 알거지가 되었던 저는 그나마 견딜 힘이 생겼습니다”

투입된 인원만도 만 오천 명,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 - 용인 공세지구 복합단지 개발사업.

다행히도 얼마 뒤 그 유명한 용인 기흥구 공세동 대주피오레 아파트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당시 UAMCO(연합 자산관리)가 보유한 용인 공세지구 복합단지개발 사업의 PF 채권 일체를 2013년 1월에 인수 2,000세대 중 미분양된 538세대를 분양 완료하는 프로젝트다.

“공세동 대주피오레 아파트 현장은 말 그대로 상상도 못 할 무법천지였습니다. 2,000 세대 중 538채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있었고, 분양을 받은 입주자들은 부도로 인해 입주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극도에 달해 있었죠. 모든 대한민국 증권사들과 업체들이 눈독을 들인 현장이었습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그 당시에는 각종 이권과 관련된 단체들이 거의 현장을 점거해 있었습니다”

“부실채권으로 인한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선 돈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법적, 정치적, 자금, 조직적인 힘 등이 필요합니다. 공세리 현장의 경우 당시 강남역에 50명 정원의 관광버스가 15대 집결되었고, 동원 인원 오백 명이 현장으로 출발하기도 했지요. 1년 2개월 동안 투입된 인원만도 만 오천 명이었으니까요. 아마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겁니다”

 

매일 붓글씨를 쓰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매일 붓글씨를 쓰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당시 일을 회상하던 이 회장은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세 명이 있다고.

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시너를 몸에 뿌리던 신나 맨, 동원 인력이나 경찰이 투입되면 옥상에서 떨어질 자세를 취하던 슈퍼맨, 이 회장에 대한 온갖 거짓 정보를 기사로 만들어 찌라시를 만들어서 뿌리던 찌라시맨.

“지금도 그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이름을 다 지어드렸죠. 현장을 빨리 수습하려다 혹시나 이분들에게 작은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 현장 해결은 어렵게 되고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게 되거든요. 이분들에게는 작전을 달리해서 인간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매일 만나다 보니 정이 들어 무난하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공세동 현장은 힘도 들었지만, 이승언 회장의 능력을 입증한 곳이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인생 최대위기의 시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었던 해결 과정의 이야기는 영화 속 장면들을 연상케 했다. 그의 삶 자체가 영화 속 각 신(scene)이다. 두둑한 배짱, 신속한 결단력, 넓은 인맥을 다 갖춘 이승언 그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아니었을까?

 

NPL 계의 미다스 손

 

‘NPL 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이승언 회장은 금융과 건설 분야를 연계해 침체 된 건설 경기를 살렸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제13회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 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후 그는 불곡산 자락에 있는 분당 율동공원 라폴리움 21세대를 투자 인수해 6개월 만에 전 세대 분양을 완료한다. 2011년 준공되어 65평, 75평, 79평의 31세대로 주차장 면적만 해도 23평, 27평, 30평의 멀티 룸 구조로 구성된 고급 단독주택이라 그 당시 분양가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 당시 함께 분양 일을 했던 부부 두 사람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정말 성실한 분들이었어요. 2년 동안 방문한 사람들에게 방문록을 보고 일일이 전화와 편지를 써 안부를 묻고, 주소가 있는 곳은 작은 선물도 보내고 하시더라고요. 결국엔 이분들 덕분에 빠르게 분양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지구력이 이 일의 성공을 이끈 원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붓글씨를 쓰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매일 붓글씨를 쓰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2남 1녀, 남자 일란성 쌍둥이 아빠이고 예쁜 딸의 아버지기도 한 이승언 회장.

그는 매일 책상에 앉아 붓글씨를 쓴다.

“옛 선인들의 글을 붓글씨로 쓰다 보면 저의 흐트러진 생각들이 모이고, 정신도 맑아집니다”

일어나자마자 운동으로 아침을 맞이한다는 이 회장의 팔은 그야말로 무쇠다.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해야 균형적인 신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단련시키는 방법이기도 하죠”

하루를 빠지지 않고 운동과 붓글씨를 쓴다는 이 회장의 지구력도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수시로 몸과 마음을 수련한다는 이승언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수시로 몸과 마음을 수련한다는 이승언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수시로 몸과 마음을 수련한다는 이승언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수시로 몸과 마음을 수련한다는 이승언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버려야 채워진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함께 나누고 베풀어야 하고요”

평소에도 이 회장은 나눔을 소리소문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문화예술 부분에도 상당한 후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미니펀드(홍콩) 전략적 투자 제휴 협약 체결, 아시아퍼시픽어드바이저스 해외펀드 투자협약 체결, 아시아어드바이저스 코리아 투자협약 체결, 파주 아델휴(가족형 휴양호텔 68세대) 투자인수 및 분양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불도저같이 진행하는 이승언 회장.

이렇게 거칠 것 없이 나가던 그의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브레이크가 걸린다. 갑자기 참고인 자격으로 법원으로부터 6개월 내사를 당하게 된다.

“제 일도 아닌 후배 일로 6개월이나 내사를 받았습니다. 부정으로 일을 저지른 것을 말하라고 하더군요. 설사 있더라도 제 성격에 말할 수도 없었지만, 정당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습니다”

알선수재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까지 조사를 받았던 이 회장은 결국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마음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최고권력의 뒷배가 있다는 소문까지 날 정도였다 한다.

 

때론 카리스마 넘치는 ceo, 때론 형님같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때론 카리스마 넘치는 ceo, 때론 형님같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우여곡절 끝에 현재 진행 중인 용인 보정동 테라스하우스 사업을 위한 토지 인수를 2017년에 완료하고, 현재는 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7,540평에 139세대를 분양하는 보정동은 19,221평의 토지 중 약 11,000평의 허가를 처음에 접수하였지만, 다시 7,540평으로 줄여서 허가를 받았다.

“11,000평을 모두 허가받고 싶었지만, 제 욕심을 줄이지 않으면 허가도 나지 않을뿐더러 허가를 내주는 관할관청도 힘들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버려야 채워진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좋은 생각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요. 욕심을 줄인 덕분에 개발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게 되었고요.”

땅을 구매한 후 허가가 나오기까지 3년 동안 상당한 손실이 생겼지만, 이제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이승언 회장.

“사업은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살아온 길, 그 속에서 쌓아온 인맥이 있어야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오너의 빠른 결단도 중요하고요”

 

한국계 부동산 펀드 조성의 거대한 꿈을 꾸다

 

시원시원한 말투,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그이지만 일에서는 예리한 칼날을 내미는 사람이다.

“부동산 분양과 컨설팅은 철저한 분석과 정확하고 합리적인 사업 방향을 제시하는 전문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야지만 수요자의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으며, 수익창출도 극대화할 수 있는 겁니다”

 

지역경제와 주변 환경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지역경제와 주변 환경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부동산 개발 시 지역경제와 주변 환경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이승언 회장은 부동산 개발 시 외국계 펀드의 횡포로 인해 시행사 부도 등으로 부실 건축물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을 꼬집는다.

“현재 NPL 시장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작년에 이어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은행부실 여신의 증가로 인해 시장의 규모가 점차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로 인한 유치권 행사 등의 부실 건물의 수는 늘어가고요. 건설 경기는 바닥을 치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수는 늘게 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포착한 외국계 펀드는 거의 바닥 수준으로 부실채권을 인수하게 됩니다. 그 이윤은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의 수입으로 송두리째 나가게 되고요”

외국계 펀드의 횡포를 막고 정당하게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한국계 부동산 펀드를 조성하는 게 남은 인생 꿈이라는 이승언 회장.

“한국 부동산 펀드를 만들어 함께 힘을 합하면 정당하게 부동산 개발을 할 수 있고, 적정한 가격을 산출해 투자함으로 인해 하청업체들도 수익을 위해 부실공사를 하지 않게 되며, 그로 인해 부실 건축물도 생기지 않게 됩니다”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작은 것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작은 것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자. 특히 부끄러운 아버지는 되지 않겠다’라는 이 회장은 ‘부끄러운 사업, 정당하지 않은 사업은 하지 않겠다. 정당하게 가야 가는 길이 빠른 길이다’라고 강조한다.

“같은 지점에서 출발해서 가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제일 잘 알지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기대하면서요. 그러나 되돌아올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 국민이기 때문에 정직한 사업,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고, 배우고 성공한 분야가 부동산이라 마지막 그의 인생을 한국계 부동산 펀드에 걸고 싶다는 이 회장.

“직원들에게도 뒷돈 거래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수익이 발생할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배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10원짜리 하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것입니다. 받으면 해 줄 수밖에 없으니 정당하게 요구를 할 수 없게 되는 거지요.

 

‘함께’가 좋아 결성한 ‘해피포럼’

 

13년 한국생활, 그는 50명이 참여하는 ‘해피포럼’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그가 믿고 의지하는 지인들로 구성되어있다 한다. ‘함께’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그는 일 년에 2번 포럼회원들과 함께 여행도 한다고.

”한 가족 같아요. 월례회도 하고 여행도 하고. 제가 잘 되기를 누구보다도 기원해주는 분들이라고…”

사알짝 알려준다. ‘같이 사업에 동참하는 분도 계셔서 그렇다고…’

한 사람만의 바람이 아니라, 함께 응원하고 함께 바람을 위해 기원해주는 이들이 많아 세상 어느 사람보다도 부자라는 이승언 회장.

“현재 이 자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입니다. 현재 시각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한 것만이 성공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남이 잘되면 손뼉 쳐 주고, 응원해주면 그 복이 나에게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죠. 함께 하는 이들을 칭찬해보세요. 받는 이도 주는 이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낳고, 신념은 성공을 부르는 열쇠다. 믿음과 신념이 있으면 반은 성공했다고 본다’는 그는 ‘내가 이러한 기준을 갖고 마음으로 수양을 하면, 나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믿는다고.

“영국 속담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업에 투자할 때는 사업주를 봐야 합니다. 혹시나 그 사업이 망해도 다른 사업으로 성공할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책과 가까이 하려 한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시간이 나는 대로 책과 가까이 하려 한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용인 ‘죽전 테라스 & 139’에 그림을 그리다

 

올해 그의 목표는 현재 개발 중인 용인 ‘죽전 테라스 & 139’의 성공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전 세대 개별테라스를 갖춘 테라스하우스는 현대인들의 지친 삶에 쉼을 줄 수 있고, 모든 걸 누릴 수 있도록 특화된 설계를 했다 한다. 세대별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넉넉한 동 간 거리를 확보했으며, 여유로운 주차공간 조성과 함께 단지 내 피트니스 클럽, 북카페, 게스트하우스, 둘레길, 등산로 연계 및 경비시설, 세대별 창고 등 아파트 못지않은 커뮤니티를 갖춰 편의성을 강화했다고.

“분양이득보다는 꼭 살고 싶은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도 이곳에 사옥을 지어 살려고 합니다. 용인시 건축상도 받을 자신이 있을 정도입니다. 주변에 조경을 조성, 다양한 꽃들도 많이 심어 누구나 오고 싶은 명소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용인 ‘죽전 테라스 & 139’ 하우스는 단순히 ‘사는 곳’에만 머무는 곳이 아닌 가장 살고 싶은 건물, 여가도 누릴 수 있는 건물로 지을 거라는 이 회장은 테라스하우스가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길 기대한다.

 

용인 ‘죽전 테라스 & 139’ 하우스 조감도
용인 ‘죽전 테라스 & 139’ 하우스 조감도

 

용인 ‘죽전 테라스 & 139’ 하우스 조감도
용인 ‘죽전 테라스 & 139’ 하우스 조감도

 

‘이제는 스펙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 회장은 ‘사람을 중심에 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게 살아온 이승언 회장!

본인이 굴곡진 삶을 살아봐서인지 겸손과 후덕함이 몸에 배어 나온다. 사람이 중심이어야지만 모든 사업은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 이 신념이 세상의 모든 이들의 맘을 움직여 그와 함께 그가 꿈꾸는 목표를 순탄하게 이루어가길 기대해본다.

 

한국계 부동산 펀드 조성의 거대한 꿈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한국계 부동산 펀드 조성의 거대한 꿈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이승언 회장 ( 촬영 - 박미애 사진가 )

 

저작권자 © 이치저널(each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