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심 물류의 ‘뒷문’을 뜯어고친다. 늘어나는 택배 물동량을 외곽 터미널에만 의존한 채 방치하면 배송거리·교통혼잡·대기오염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토교통부는 11월 20일부터 한국도로공사·한국철도공사·국가철도공단이 보유한 공공 유휴부지 7곳(총 면적 3.9만㎡)을 생활물류시설 부지로 공급하기 위한 사업자 모집에 나선다. 이번 조치는 도시 한복판에 물류거점을 마련해 ‘도심배송 병목’을 해소하겠다는 사실상의 실전 처방이다.
선정된 부지는 고속도로 교량 하부 4곳(약 2.8만㎡)과 철도 주변 3곳(약 1.1만㎡)로 교통 접근성이 우수한 지점이 중심이다. 정부는 이들 부지를 택배의 마지막 집결지(서브터미널)로 활용해 배송 차량의 이동거리를 줄이고, 물류 흐름의 효율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모집 공고와 사업설명회 일정(11월 27일 한국통합물류협회 주관)은 각 기관 누리집(www.ex.co.kr, www.korail.com, www.kr.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업자 선정은 각 공공기관과 공동평가단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제출된 사업계획서는 부지 개발계획과 시설 운영계획을 중심으로 심사되며, 특히 중소·중견 물류업체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 취약계층의 기회 확대를 의도했다. 단순한 입지 제공에 그치지 않고 자동분류기 설치 여부, 우천·동절기 대비 시설계획, 휴게시설 등 종사자의 안전과 근로여건 개선 요소를 평가항목에 대폭 반영해 ‘사람 중심 물류’를 유도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국토부 첨단물류과 심지영 과장은 “도심 외곽에 치우친 물류구조는 배송거리 증가와 교통혼잡, 대기오염으로 귀결된다”며 “이번 사업은 단기적으로 배송거리를 단축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도시 물류체계의 구조적 개편을 유도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실질적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제시한 기대효과는 명확하다. 도심 거점의 확충으로 배송거리가 단축되면 화물 이동에 따른 시간·연료 비용이 줄어들고, 차량 운행거리 축소는 온실가스·미세먼지 감축으로도 연결된다. 또한 자동분류·하역 설비의 도입으로 작업 효율화가 이뤄지면 종사자 피로도와 사고 위험이 감소하고, ‘휴게시설·근로환경 개선’ 평가기준은 현장 노동자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토부는 이 같은 효과를 토대로 장기적으로는 교통혼잡비용과 물류비용을 낮춰 소비자 후생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적 난제도 적지 않다. 도심 내 유휴부지를 물류시설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소음·교통 유발, 안전 문제, 인접 주민의 반발 등은 사전에 풀어야 할 과제다. 국토부는 이를 위해 사업자 평가 시 소음 차단·교통관리 대책과 환경영향 최소화 방안을 엄격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철도·도로 등 공공시설 인접 부지의 특성상 안전관리와 접속도로 정비가 필수적이라며, 선정 사업자에게는 관련 공사 및 운영계획의 구체성 제출을 요구할 방침이다.
선정 대상 사업자는 물류기업뿐만 아니라, 도심 물류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할 운영능력을 갖춘 중소·중견업체에 유리한 구조로 설계됐다. 자동분류기 등 첨단 장비 도입을 통한 효율성 제고 계획, 종사자 근로여건 개선계획(휴게공간·보호장비·우천 대비 시설) 등을 충실히 제시한 업체가 높은 점수를 받을 전망이다. 공공기관 측은 “단순한 임대가 아니라 장기 운영을 전제로 한 파트너십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물류업계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도심에 적절한 물류거점이 생기면 도심 배송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도심 소형 전기트럭 등 친환경 배송수단 도입이 촉진돼 거시적 환경 목표 달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부지별 특성과 주변 교통여건을 고려한 개별 맞춤 설계가 관건”이라며 “평가 단계에서 실무적 실행 가능성이 엄격히 따져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업 참여를 원하는 업체는 11월 20일 게시될 각 기관의 모집공고문을 확인하고, 11월 27일 설명회에 참석해 구체적 요건과 제출서류, 평가방식을 숙지해야 한다. 국토부는 이번 공급 사업을 시작으로 도심 내 생활물류 거점 공급을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도시의 ‘배송 병목’을 풀기 위한 정부의 실험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차제에 지자체와 물류업계, 지역주민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이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가 향후 도시 물류의 판도를 좌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