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숨 쉬기 시작했다. 포장과 콘크리트 사이로 자리한 숲이 기후재난의 방패가 되고, 지역공동체의 삶터를 바꿔놓는다. 산림청이 올해 ‘녹색도시 우수사례’ 14곳을 발표했다. 접수 43건, 현장심사와 전문가 평가를 거쳐 고른 14곳은 각각 기후 대응·도시숲·가로수·학교숲·사후관리 분야에서 ‘현장에서 작동하는 숲의 가치’를 증명한다. 이번 선정은 단순한 상장이 아니다. 폭염·폭우·미세먼지 등 기후위기 속에서 도시숲이 실제로 어떤 기능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보여주는 실증 사례 모음이다.

올해의 녹색도시로 ‘기후대응도시숲 분야’에 △경상북도 구미시 구미국가산업단지 미세먼지 차단숲,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유천생태습지 기후대응 도시숲,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천대로 완충녹지 기후대응 숲이, ‘도시숲 분야’에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 폐선철로 도시숲,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치악산 바람길숲, △부산광역시 남구 황령산 생태숲이, ‘가로수 분야’에 △경상북도 포항시 이화숲 가로수길, △경기도 평택시 평택 NO.1 가로숲터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청사로가로수가, ‘학교숲 조성 분야’에 △대구광역시 중구 경북여자고등학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초등학교 △경상북도 상주시 상주여자중학교가, ‘학교숲 활용·사후관리분야’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귀덕초등학교, △ 경기도 부천시 시온고등학교가 선정됐다.

 

원주시 치악산 바람길숲
원주시 치악산 바람길숲

 

선정 개요부터 보면 절차는 간결했다. 8~9월 전국 공모로 접수된 43건을 1차 서류로 걸러낸 뒤, 도시숲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단이 직접 현장을 확인해 최종 14곳을 확정했다. 선정 기준은 생태적 건강성(탄소흡수, 미세먼지 저감, 수분·온도 조절 등)과 사회·문화적 기능(시민 참여, 교육·체험, 경관·관광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산림청은 2007년부터 이 사업을 이어오며 지방자치단체와 관리주체 간 선의 경쟁을 유도해 도시숲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이번 수상지는 분야별로 특징이 분명하다. 기후대응도시숲 분야 최우수 사례로 선정된 경북 구미 ‘구미국가산업단지 미세먼지 차단숲’은 산업단지와 주거지를 분리하는 완충녹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조성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토양·식재 기반 보강과 마운딩 등으로 보완했고, 교목과 관목을 층층이 식재해 다층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미세먼지 저감과 방음·경관 효과를 동시에 확보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경북 구미 ‘구미국가산업단지 미세먼지 차단숲’
경북 구미 ‘구미국가산업단지 미세먼지 차단숲’

 

도시숲 분야의 대표작인 경남 김해 ‘진영 폐선철로 도시숲’은 폐선로를 선형 녹지 네트워크로 재활용한 사례다. 국토부·환경부 사업과 연계해 길게 뻗은 녹지축을 만들고, 도시 바람길을 형성해 도심 통풍과 열섬 완화에 기여한다. 이처럼 폐기 인프라를 녹지로 전환해 생태적·사회적 가치를 회복한 점이 이번 선정의 핵심이다.

가로수 분야에서는 포항 ‘이화숲 가로수길’이 주목을 받았다. 철길숲–이화숲길–상생공원을 연결하는 녹지축이 만들어지면서 도시 생태 네트워크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보행환경 개선과 교육적 효과를 동시에 거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가로수는 단순한 길목 장식이 아니다. 그 자체로 도시의 ‘쉼터’, ‘그늘’, ‘미세먼지 여과기’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 사례가 증명한다.

 

포항 ‘이화숲 가로수길’
포항 ‘이화숲 가로수길’

 

학교숲 분야의 최우수 사례인 대구 경북여자고등학교는 교내 중정에 조성된 밀도 높은 교목·관목 식재로 탄소흡수율과 미세먼지 흡수 기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상록 활엽수의 혼재로 미관과 정서적 안정에 기여하는 점 역시 강조됐다. 학교숲 활용·사후관리 부문에서 선정된 제주시 귀덕초등학교는 유휴 공간을 발굴·조성하고 유지관리 협약을 전제로 지속가능한 운영 체계를 갖춘 점이 높게 평가됐다. 단순 조성이 아닌 ‘관리 가능성’과 ‘커뮤니티 참여’를 함께 본 것이다.

이번 선정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실무적 교훈을 남긴다. 첫째, 식재 설계에서 다층 구조(교목·아교목·관목·초본)의 구현은 기후대응 성능을 끌어올리는 핵심이다. 둘째, 토양 개선(식재 기반 강화)과 마운딩 등 물리 디자인은 초기 정착과 장기 생존률을 결정짓는다. 셋째, 선형녹지(폐선로·하천변 등)의 연결은 도시 전체의 생태 네트워크를 키우는 지름길이다. 넷째, 학교숲·공원·가로수길 등은 관리 협약과 주민·학생 참여 프로그램이 결합될 때 사회문화적 기능을 온전히 발휘한다. 마지막으로, 도시숲 정책은 조성에서 끝나지 않고 유지관리·모니터링·커뮤니티 운영까지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정책적 시사점도 명확하다. 도시숲은 기후재난 대응의 ‘녹색 인프라’로서 도심의 열섬 완화, 빗물 저류·유출억제, 초미세먼지 저감, 탄소흡수 등 여러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단편적 사업비 투입보다 중장기적인 관리비·인력·거버넌스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낙후된 도시공간을 녹지로 전환하는 ‘그린 리노베이션’ 정책을 확대하면 도시 회복탄력성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산림청도 “양질의 도시숲을 구도심 등 부족한 곳에 집중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히며, 생태적으로 기능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도시숲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시민 관점에서의 기대효과는 단순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녹지 축이 늘어나면 여름 폭염의 체감강도는 낮아지고, 비가 쏟아질 때의 홍수 위험도 일부 경감될 수 있다. 교육적 측면에서는 학교숲을 통해 학생들이 생태 교육을 일상적으로 받을 수 있고, 지역 경제 측면에서는 그린 관광코스와 연계된 지역 활성화가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도시숲은 ‘녹색민주주의’의 실천 장이다 — 김기철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장은 “생태적으로 기능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도시숲을 통해 기후재난에 대응하고 온 국민이 숲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는 녹색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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