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삼킨 산에서 다시 향이 피었다.
3년 연속 송이가 돋은 강원 고성의 산불피해지가 ‘죽은 산’이 아닌 ‘회복하는 숲’임을 증명했다. 숯처럼 그을렸던 땅이 다시 향기로운 버섯을 품은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송이 감염묘를 이용한 인공재배 연구를 통해,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의 산불피해지에서 3년 연속 송이 발생에 성공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지역은 1996년 대형 산불로 황폐화되며 송이 산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던 곳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07년 이곳에 송이 감염묘 27본을 이식했고, 16년의 기다림 끝에 2023년 5개체의 송이가 처음 발생했다. 이어 2024년 1개체, 올해는 무려 11개체가 추가로 확인되며 복원 실험의 성과가 눈앞에서 입증됐다.
이번 결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과학적 재현성이 확인된 실험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송이 발생지의 버섯을 대상으로 SSR마커 기반 DNA 분석을 실시한 결과, 고성 지역에서 발생한 송이와 감염묘를 육성한 홍천 시험지의 송이 유전형이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이식된 감염묘가 실제 송이 발생에 직접 관여했다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제시된 것이다. 송이 재배의 불확실성을 넘어, 인공 감염묘를 활용한 송이산 복원 가능성을 실증한 첫 사례라 할 만하다.

고성의 기적 뒤에는 15년에 걸친 꾸준한 연구와 관리가 있었다. 간벌, 가지치기, 수분 관리 등 숲의 미세한 생태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송이는 토양 내 균근을 통해 소나무 뿌리와 공생하는 생물로, 생태계의 복합적 균형이 무너지면 쉽게 자취를 감춘다. 그런 송이가 산불피해지에서 다시 자란다는 건, 숲의 복원이 생태적 깊이까지 도달했음을 뜻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홍천 시험지에서도 안정적인 송이 발생 추세를 재확인했다. 홍천에서는 2010년 첫 송이가 발생한 이후 2017년부터 올해까지 9년 연속 송이가 돋아나고 있다. 올해는 27개체가 새로 발생하며 전년도(17개체)보다 약 58.8% 늘었다.
송이 발생 시기의 적정 기온과 수분 조건이 갖춰진 데다, 지속적인 간벌과 가지치기 관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이는 단순히 “자연이 회복됐다”는 차원을 넘어, 체계적 산림 관리와 과학 기술이 결합할 때 숲의 생산성이 복원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이다.
산불이 삼킨 자리에 향이 피어나는 일은 결코 자연의 기적만은 아니다. 인공감염묘 기술은 생태 복원의 새 전기를 여는 ‘기술 기반 복원’의 첫걸음이다. 송이의 재배화 가능성은 곧 지역 임업인의 소득원 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산림 자원의 자생적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림미생물이용연구과 박응준 과장은 “고성과 홍천의 사례는 송이 감염묘 기술이 단순 연구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복원 방법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모델”이라며 “향후 기술 보급과 현장 적용을 확대해 송이산 조성을 촉진하고 임업인의 소득 향상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한때 검은 재로 덮였던 산이 이제 송이 향으로 살아난다. 숲은 잃어버린 시간을 기억하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회복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