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이 무뎌지면, 뇌가 보내는 첫 번째 신호일지도 모른다.”
파킨슨병이 단지 손 떨림의 병이라는 인식은 오래됐다. 최근 연구는 ‘냄새를 구분하는 능력’이 인지 저하를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뇌 질환 연구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이 수행 중인 ‘파킨슨병 환자 코호트 연구(BRIDGE-LoPD)’에서 밝혀진 이번 결과는, 환자의 후각 기능 저하가 인지장애(치매)로의 진행 속도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단순히 냄새를 구분하거나 감지하는 능력만으로도, 환자의 뇌가 얼마나 빠르게 인지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구는 2021년부터 질병관리청이 추진 중인 ‘뇌질환 연구기반 조성 사업(BRIDGE)’의 일환으로, 전국의 파킨슨병 환자를 장기 추적 관찰하며 발병 원인, 예후, 예방 가능성 등을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중석 교수가 책임연구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축적된 방대한 환자 데이터는 향후 인공지능 기반 정밀진단 기술 개발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이번 연구성과와 함께 「파킨슨병 바로알기」 카드뉴스를 제작·배포했다. 이 카드뉴스는 질병관리청 누리집을 통해 공개되며, ▲파킨슨병 주요 증상 ▲운동치료 및 약물요법 ▲‘닥터 파킨슨앱’을 이용한 자가진단 및 관리법 등을 쉽게 안내한다.


특히 ‘닥터 파킨슨앱’은 환자와 가족이 운동량, 약 복용, 수면 패턴 등 일상 변화를 기록해 질병의 추이를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된 맞춤형 관리 도구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최근 4년간 13.9% 증가(2020년 12만5927명 → 2024년 14만3441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환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많은 환자들이 비운동성 증상—후각저하, 수면장애, 자율신경 이상, 우울, 인지 저하—을 간과한 채, 병을 ‘노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파킨슨병은 단순한 운동 장애 질환이 아닌 ‘전신 신경계 퇴행 질환’으로, 조기 인지와 관리가 생명이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파킨슨병은 고령사회가 맞닥뜨린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이라며 “조기 진단과 체계적인 관리가 환자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질병관리청은 파킨슨병 코호트와 중재 연구를 통해 정밀진단기술을 고도화하고, 환자와 가족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파킨슨병은 더 이상 노년의 병만이 아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이 질환의 징후를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스스로의 몸이다. 냄새가 예전만큼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감기나 나이 탓이 아닐 수도 있다.
‘냄새의 기억’이 곧 뇌 건강의 바로미터라는 사실—이제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