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마침내 쉼표를 찍었다.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에 국내 첫 공영 사육곰 보호시설이 문을 열며, 오랜 세월 철창 안에서 살아온 곰들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이곳은 단순한 시설 개소를 넘어, ‘곰 사육 종식’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한 발 더 다가선 의미 있는 전환점이다.

환경부와 구례군이 협력해 조성한 ‘구례 사육곰 보호시설’은 9월 30일 문을 열었다. 개소식에는 금한승 환경부 차관과 이학영 국회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주대영 국립공원공단 이사장,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등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단순히 시설 개소를 축하하는 것을 넘어, 곰 사육 종식과 동물 복지의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시설은 총 2만 5,744㎡ 부지에 방사장 3곳, 사육동 2곳, 검역동 1곳을 갖춰 최대 49마리의 곰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운영은 구례군이 맡고, 국립공원공단이 전문성을 더해 사육곰 보호를 책임진다. 첫 입소 개체는 모두 10마리. 이들은 2022년 1월 체결된 ‘곰 사육 종식 협약’에 따라 시민단체인 동물자유연대와 녹색연합이 농가에서 직접 매입한 곰들이다. 경기도 연천의 농장에서 살아오던 이 곰들은 이제 지리산 자락에서 인간의 간섭 없는 휴식을 누리게 됐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일부 개체는 다리가 잘려 있거나 치아와 시력이 손상되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다. 이는 곰 사육의 잔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환경부와 구례군은 수의사와 전문 인력을 투입해 건강 회복을 지원하고 있으며, 곰들이 자연스러운 생태적 습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맞춤형 보호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개소식에서 금한승 환경부 차관은 “구례 사육곰 보호시설의 개소는 정부, 국회,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협력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환경부는 앞으로도 남은 사육곰들을 모두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 곰 사육 종식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또한 “오늘은 곰과 인간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이라며 “사육곰이 더 이상 착취의 대상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례 사육곰 보호시설은 단순히 동물을 보호하는 공간을 넘어, 사회적 합의와 협력이 만들어낸 성과이자 동물권 확대의 이정표로 평가된다. 사육곰이 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던 어두운 과거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지리산 자락의 이 쉼터에서, 곰들은 마침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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