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00만 년 전 화산활동이 남긴 독특한 지질 구조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은 부안 변산반도 일대에서 발견된 「부안 격포리 페퍼라이트」와 「부안 도청리 솔섬 응회암 내 구상구조」를 국가지정문화유산 천연기념물로 예고하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의 보존 필요성을 강조했다.
격포리 페퍼라이트는 변산반도 서쪽 끝 적벽강 해안 절벽에서 확인되는 약 1m 두께의 암석층이다. 페퍼라이트(peperite)는 뜨거운 용암이 물기 많은 퇴적층을 통과하면서 퇴적물과 용암이 물리적으로 섞여 급냉·고결되며 형성된 복합암으로, 검은색·회색의 물질이 마치 후추를 뿌린 듯 흩뿌려진 모습이 특징이다.

보통 페퍼라이트는 얇은 띠 모양으로 드러나지만, 격포리에서는 드물게 두꺼운 규모로 산출되어 형성과정과 지층 간 상호작용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현장 교과서’ 같은 가치를 지닌다. 현장에서는 상부의 화산암층(곰소유문암층)과 하부의 퇴적암층(격포리층)이 접하는 경계부에서 용암-퇴적물 상호작용의 다양한 물리·화학적 흔적을 확인할 수 있어 학계의 관심이 높다.

솔섬의 응회암 내 구상구조는 형태 면에서 더욱 이색적이다. 솔섬은 후기 백악기(약 8,7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작은 섬으로, 조수 간만의 차로 썰물 때 육지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 섬의 응회암 내부에는 다량의 구상구조(spherulite)가 발달해 있는데, 그 형태가 마치 포도송이처럼 집단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희귀한 현상이다. 구상구조는 응회암이 충분히 굳기 전에 열수(고온의 광물 용액)가 모암을 관통하면서 열수 속의 철산화물이 석출되며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외 사례가 드문 이 구조는 화산 분출 후의 열수 활동과 암석의 응고 과정, 지화학적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번 지정 예고는 단순한 명소 지정이 아니라 보존·관리의 시작이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한 뒤 자연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지정되면 해당 지역은 학술조사와 지질공원·교육프로그램 연계, 안내판 설치, 출입통제와 같은 보존조치가 도입될 수 있으며, 해안 침식·무단 채취·무분별한 탐방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한 관리계획이 수립된다.
학술적·교육적 파급효과도 크다. 페퍼라이트는 용암-퇴적물의 역학적 상호작용과 폭발적 증기 발생의 흔적을 보여주며, 솔섬의 구상구조는 열수 대체·광물 침전 과정을 현장 차원에서 확인하게 해준다. 대학의 지질학 수업, 지질공원 해설, 현장 실습 프로그램 등 교육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고, 지역 관광과 연계해 ‘과학관광(geo-tourism)’의 자원으로도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향후에도 학술적 가치가 높은 지질유산을 적극 발굴·보존·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보존과 활용 사이의 균형은 숙제다. 해안절벽과 섬이라는 취약한 자연환경은 기후 변화에 따른 해안 침식, 탐방객의 무분별한 접근, 불법 채취 등으로 쉽게 훼손될 수 있다. 특히 솔섬은 조수 영향으로 접근 가능 시점이 제한적이므로 안전관리와 탐방 통제가 필수적이다. 지정 이후에는 정밀 지질조사와 모니터링 체계 구축, 적정 탐방로와 관찰 포인트 설정, 안내·해설 인력 배치, 지역 주민·지자체와의 협력체계 마련 등이 병행돼야 한다.
보존조치가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도 면밀히 따져야 한다. 천연기념물 지정은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으나, 방문객 증가에 따른 환경부담과 생활영역 교란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지정 후에는 지역경제 활성화 전략과 환경보전 계획을 동시에 세워야 하며, 주민 참여형 관리 모델을 도입해 지역주민의 이해와 참여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절차는 예고-의견수렴-위원회 심의의 단계다. 전문가들은 “격포리와 솔섬은 각각 페퍼라이트와 구상구조라는 희귀 지질구조를 잘 보존하고 있어 지정이 타당하다”는 평가를 내놓는 반면, 일부는 “지정 후 실효성 있는 관리 예산과 인력, 법적 규정의 적용 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유산청의 결정은 단순한 칭호 부여를 넘어, 자연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미래세대에 전달할지에 관한 정책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천연기념물 예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지정이 확정되면 학계의 추가 조사, 교육 프로그램 개발, 지역과의 협의된 관광 관리 방안 수립, 장기적인 관측 및 보존예산 확보 등이 뒤따라야 한다. 격포리의 ‘후추 뿌린 바위’와 솔섬의 ‘포도송이 바위’는 인간의 손길로부터 지켜야 할 자연의 기록이자, 지구 역사를 읽는 현장 교실이다. 국가유산으로서의 보호와,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동시에 담보하는 보전 모델이 빠르게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