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흑백사진에 담긴 우리 식물의 정체성이 다시 깨어난다. 광복 80년을 맞아 국립수목원이 여는 특별한 전시회가, 잃어버린 식물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사진은 과거를 증명하는 증언이자, 이름을 되찾는 정치적 도구가 된다.
2025년 8월 14일부터 9월 30일까지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특별사진전은, 식물 탐사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Ernest Henry Wilson, 1876-1930)이 1917-1918년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흑백 사진과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울릉도, 금강산, 포천 광릉숲, 평안도와 함경도의 산야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사라졌거나 크게 변화한 식생과 지형지물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아놀드수목원이 보관 중인 사진 중 엄선된 수십 장이 전시되며, 일부는 현재의 모습과 나란히 비교 전시되어 100년의 세월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무게감은 단순한 자연 기록에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식물은 이름을 빼앗겼다. 식물학자 정태현의 사례처럼, 조선인 식물학자들이 발견하거나 연구한 식물들이 ‘조선총독부’와 외국 식물학자의 이름 아래 등재되면서 ‘이름 없는 기록’으로 남아야 했던 현실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식물 이름에 숨겨진 역사–이름을 빼앗긴 조선의 식물학자, 정태현’을 통해 그 억압과 상실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다. 학명의 지배는 식물자원의 지배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자원주권의 상실이었다.
또한 ‘우리식물 재도입’ 코너에서는 해외로 반출되었다가 다시 우리 땅으로 돌아온 식물들이 실물로 전시된다. 이 특별 공개는 단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만 운영되며, 그 희귀성과 상징성으로 인해 생물주권의 귀환을 실감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평가된다.
국립수목원 임영석 원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사진 전시가 아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식물 주권을 상실했는지를 되짚어보는 역사이자, 오늘날 생물다양성 보전과 식물자원 자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교훈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민 모두가 함께 이 사진과 기록을 통해 기억하고 지켜야 할 자산임을 느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가 열리는 광릉숲은 윌슨이 직접 탐사했던 지역 중 하나로, 100년 전 촬영된 사진 속 숲과 현재 숲이 교차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기억과 풍경이 겹치는 이 전시에서는, 일제의 이름 아래 기록되었던 식물들이 다시 제 이름을 찾아 국민 앞에 선다.
한편, 8월 17일에는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특별 해설 이벤트가 진행된다. 광복 80년을 맞아 80명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는 전시 해설과 국립수목원 투어가 결합된 하루가 마련되며, 참여 신청은 국립수목원 공식 SNS를 통해 추첨 방식으로 접수받는다.
광복은 단지 정치적 독립의 의미를 넘어 자원과 이름, 기록과 생물의 자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 식물’이라는 말은 더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자산이다. 국립수목원이 펼쳐내는 이 기록은 그 자산을 국민과 함께 지키고자 하는 첫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