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가 돌아왔다. 여름이 끝나가는 정원에 바람이 깃들고, 억새의 은빛 이삭이 춤추는 계절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8월 ‘우리의 정원식물’로 억새를 선정했다. 사계절 중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이 풀은 단순한 장식의 범주를 넘어, 정원 경관미와 생태적 가치를 동시에 품은 식물이다.
억새(Miscanthus sinensis var. purpurascens)는 우리나라 들과 산, 그리고 높은 고지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1~2m까지 자라는 억새는, 여러 포기가 모여 바람에 흔들릴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흔들림이 아닌 ‘흐름’이며, 정원이라는 공간을 살아 움직이는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가을 햇살이 기울 무렵, 억새의 갈빛 잎과 줄기 위로 은백색 꽃이삭이 피어난다. 마치 황금빛 바람결을 가르며 떠다니는 작은 구름 같다. 특히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정원을 덮을 때, 억새는 정원이라는 장소를 한 편의 정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버린다. 그 장면은 누군가의 마음속 오래된 기억과도 같다.

정원에서 억새를 기르기 위한 조건은 비교적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수. 물이 고이지 않는 흙에 심고, 식물 간 간격은 30cm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억새는 땅속줄기(뿌리줄기)를 통해 스스로 번식하며 번져나간다. 이 때문에 공간을 미리 염두에 두고 심는 것이 중요하다. 물주기는 초기 뿌리활착기에만 충분히 해주면 된다. 그 이후엔 오히려 다소 건조한 환경을 더 좋아한다. 이것은 물억새와의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증식법도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뿌리나 줄기를 나누는 방법이다. 뿌리는 23년에 한 번 캐어 잘라 심고, 줄기는 1315cm로 절단해 3:1 비율의 황토-모래 혼합토에 심으면 3~4주 내로 모종을 얻을 수 있다. 씨앗 증식도 가능하나, 일부 품종은 발아율이 낮거나 씨앗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억새는 생태적 역할도 탁월하다. 억새 군락은 곤충과 소형 동물에게 중요한 서식처로 기능하며, 토양유실을 막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일시적인 조경이 아닌, 장기적 생태 경관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정원 조성에 적합한 대표 식물이다. 단순히 ‘예쁜 식물’이 아닌, 정원을 살아 있는 생태계로 확장시켜주는 주체다.
국립수목원은 억새를 단순한 ‘추천 식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생겨난 문화와 생태의 교차점으로 바라본다. '우리의 정원식물' 시리즈는 그 해석의 연장선이다. 임연진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자원활용센터장은 “억새는 한국의 자연을 대표하는 식물로서 정원의 미학을 완성하며, 동시에 다양한 생물들의 삶터가 된다”고 설명했다. 억새는 아름다움과 생명의 경계를 넘나드는 식물이다. 이번 8월, 바람이 움직이는 정원에 억새를 심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