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이 하늘을 감시하고, 통신은 먹통이다. 사이버 공격이 국방 시스템을 교란하고, 전력망이 끊긴다. 도시는 정지한다. 이 모든 상황은 현실이 아니라 ‘을지연습’이라는 이름 아래 시뮬레이션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과거 관행적 훈련을 벗어나 “실제로 작동하는 국가 비상대비 시스템”을 시험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분명해졌다.
오는 8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 4일간 실시되는 ‘2025년 을지연습’은 그 어느 해보다도 첨단화된 위협과 전시 전환 체계를 상정해 진행된다. 훈련에는 4천여 개 행정기관·공공기관·중점관리업체 등에서 약 58만 명이 참여한다.
훈련의 키워드는 ‘복합 안보 위협 대응’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등에서 목격된 최신 전쟁 양상은 기존의 안보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드론 자폭 공격, GPS 혼선 유도, 사이버 인프라 파괴 등 전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로 교란된다. 정부는 이번 을지연습에 이러한 전술을 실전 시나리오로 통합했다.

전국 주요 국가중요시설을 대상으로 드론 공격과 사이버전이 복합 적용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이에 대응하는 정부·공공기관 간 합동대응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검증한다. 단순 대응보고서 제출이 아닌, 기관 간 협업과 정보공유, 즉시 조치까지 전 과정을 훈련한다.
이 과정에서 각 부처와 시·도 단위는 기관장 주재 아래 “1기관 1훈련”을 시행한다. 발전소, 도로망, 통신망, 전력설비 등 국가 핵심 인프라가 손상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따른 조치·복구 프로세스를 현장에서 점검한다.
특히 이번 을지연습은 전시행정체제 전환 훈련을 핵심 축으로 포함하고 있다. 훈련 기간 중 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불시에 비상소집을 단행하며, 평시 행정에서 전시 체제로의 전환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지는지를 확인한다. 법령 공포 절차, 전시 조직 개편, 동원령 통보, 긴급 행정명령 등 정부가 실제 상황에서 수행해야 할 모든 절차를 행동화 훈련으로 체화시킨다.
민간 영역에서도 훈련은 이어진다. 8월 20일 오후 2시, 전국 단위 민방위 대피훈련이 동시에 진행된다. 항공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시민은 건물 내 대피소로 이동하고, 동시에 소방차와 앰뷸런스 길 터주기 훈련이 함께 진행된다. 이번 민방위 훈련은 “단 15분만 협조해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취지에서 국민의 체감도와 실효성을 중시해 기획됐다.
접경지역 훈련도 강화된다. 경기 북부와 서해5도 등에서는 주민 대피 및 수용·구호 훈련이 시행된다. 특히 백령도·연평도 등 고립 섬 지역에서 실제 섬을 탈출한 주민을 상정하고, 이들의 수용소 운영과 긴급 물자 공급, 의료 지원까지 포함된 시뮬레이션이 전개된다. 군과 지자체, 보건당국이 함께 수행하는 이 훈련은 실제 전시 피난 작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을지연습에서는 예외 지역도 있다. 강원과 경북 등 최근 산불과 집중호우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일부 지역은 훈련에서 제외됐다. 주민 구호와 복구에 우선 초점을 맞춘 결정이다. 대신 제외 지역의 행정기관은 문서 및 체계 점검 등 비현장 중심 훈련으로 대체 참여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실제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훈련의 목표”라고 강조하며 “국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줄 때, 이 훈련은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닌 ‘국가 생존 전략의 현장 실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