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눈이 과거의 찬란한 문명이 아닌, 버려진 쓰레기 더미를 향하고 있다. 폐기물이 유산이 되는 전환점에서 고고학은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국제문화유산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 이크롬)와 함께 8월 6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 브람스홀에서 국제학술대회 ‘세계의 고고학: 쓰레기 고고학’을 연다. 신석기 패총부터 현대의 게임기 매립지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쓰레기 유산의 여정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펼쳐진다.
이크롬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이자 138개국이 가입한 문화유산 전문 국제기구로, 이번 행사는 지난해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맺은 문화유산 보존 협약에 따른 세 번째 공동 사업이다. 고고학의 시선은 더 이상 유적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번 학술대회는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 속에서, ‘환경고고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통해 쓰레기와 매립지라는 주제를 본격 조명한다. 고대의 조개껍데기 더미부터 현대의 비디오 게임 폐기물까지, ‘버려진 것들’을 통해 오늘과 내일의 유산을 논의한다.
학술대회는 한국, 이탈리아, 미국, 멕시코 등 다섯 국가에서 온 전문가들의 주제 발표와 학술대담으로 구성된다. 이크롬의 토마스 메라즈 카스타뇨는 폐기물과 문화 정체성의 관계를 조명하며 ‘무가치한 것에 담긴 가치’를 묻는다. 부산대 임상택 교수는 신석기 패총, 즉 조개무지를 분석해 당시의 식생활과 환경을 추적한다. 로마 시대 항아리 쓰레기 더미에서 형성된 ‘몬테 테스타치오’ 언덕은 고대 무역과 권력의 흔적으로 해석된다. 서울 도심의 일제강점기 유적은 버려진 건물 잔해를 통해 식민지기의 생활사를 복원한다. 미국 노스다코타대 윌리엄 로드니 카라허 교수는 아타리 비디오 게임 매립지 발굴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가 남긴 디지털 쓰레기의 문화적 의미를 짚는다.

이후에는 한국고고학회 이성주 회장을 좌장으로, 21세기 고고학의 과제와 쓰레기 유산 보존 정책 등에 대한 심화 토론이 이어진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분류하고, 기록하며 ‘기억의 유산’으로 남기는 작업은 단순한 고고학적 행위를 넘어,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문화정치학적 의미까지 포괄한다.
학술대회는 일반 시민 누구나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으며,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유튜브 채널에서도 실시간 중계된다. 폐기물이 유산이 되는 전환의 현장에 대중을 초대한 것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쓰레기와 유산’, ‘과거와 미래’, ‘환경과 기억’을 잇는 문화유산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엇이 유물이 되고, 무엇이 사라지는가의 문제는 곧 지금 이 시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물음에 대한 가장 고고학적인 대답이, 지금 버려지는 쓰레기 속에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