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에서 생명을 다시 길러낼 수 있는 과학적 전환점이 시작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이 국내 최초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 ‘산양’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유도하는 데 성공하면서, 생식세포를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생명공학 기술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 성과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멸종위기종의 유전자 다양성과 개체 복원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젖힌 사례로 평가된다. 야생동물 복원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이번 연구는 국립생물자원관이 2022년부터 추진해 온 ‘생물자원 동결보존 사업’의 일환이다. 연구진은 산양의 모근에서 채취한 체세포에 역분화 유전자(Oct4, Sox2, c-Myc, Klf4 등)를 주입, 이를 초기 줄기세포 단계로 되돌리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27%의 비율로 유도만능줄기세포 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미국, 영국, 중국 등 세계 주요국의 평균 성공률(최대 20%)을 능가하는 수치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는 이미 분화된 체세포를 다시 미분화 상태로 되돌려 다양한 세포로 자라게 하는 기술로, 줄기세포의 일종이다. 산양 세포에서 이를 성공적으로 유도했다는 것은 난자, 정자와 같은 생식세포는 물론, 신경세포·근육세포 등으로도 분화 가능한 ‘생명의 씨앗’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산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림 서식 멸종위기종으로, 기후변화와 서식지 단절, 자연재해 등 복합 원인으로 개체군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이다. 기존에는 포획-사육-방사라는 방식으로 복원을 시도해왔지만, 유전자 다양성 확보가 쉽지 않았고 근친 교배 문제도 제기돼 왔다.
이번 줄기세포 유도 성공은 바로 이러한 한계를 기술로 돌파한 사례다.
생식세포를 실험실 내에서 직접 분화시켜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를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 것이다. 특히 이 기술은 DNA 보존만으로는 불가능했던 개체 복원까지 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 향후 멸종된 종의 복원이나 ‘지구 생물다양성 유전자은행’ 구축에도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수준으로, 멸종위기 동물의 줄기세포 유도에 성공한 12번째 국가로 기록된다. 이미 북부흰코뿔소(미국), 자이언트 판다(중국), 침팬지(영국) 등에 이어 우리나라가 이름을 올리게 됐다.
연구 결과는 8월 중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투고될 예정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앞으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국립공원공단과의 연계를 통해 해당 기술을 산양 및 다른 야생동물 종 복원에도 실질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유호 국립생물자원관장은 “단순한 과학 성과를 넘어, 생물다양성 위기에 맞선 첨단 전략”이라며 “국가적 보전 전략과 융합해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전의 실질적 전환점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