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대는 끓는다. 감각의 전선 위로 예술이 흐르고, 서울의 여름은 더 이상 단순한 피서의 계절이 아니다. 세종문화회관이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2025 여름 시즌은 여느 해보다 도전적이고, 더 다채롭고, 무엇보다 확장적이다. 7월 21일부터 8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무대는 체임버홀과 대극장, S씨어터를 넘어서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꿈의숲아트센터까지 서울 전역을 감싸 안는다. 고전의 정제와 동시대 창작의 실험이 맞물리는 이 예술의 여름은, 관객을 단순히 ‘보는 사람’이 아닌 ‘참여자’로 초대한다.
이번 시즌의 중심에는 세종문화회관의 대표 창작 시리즈 <싱크 넥스트 25>가 있다. 총 11편 중 6편이 여름방학 기간에 집중되어 있으며, 각각의 작품은 장르와 형식, 사운드와 무브먼트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실험적 무대다. 리퀴드사운드의 <연희해체 프로젝트Ⅱ>는 전통 연희를 전자음악과 비주얼 아트로 재해석하며 무대 구조 자체를 바꾸고, 래퍼 제이통의 <솔방울과 비트>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잇는 사운드로 힙합의 공연 미학을 뒤집는다. 안무가 김성훈의 <PINK>는 무대 위 ‘살아 있음’을 감각의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문상훈의 <빠더너스>는 코미디라는 장르조차 라이브의 리듬으로 재창조한다. 전시장 같고 클럽 같고 극장 같은, 이 혼종의 무대는 ‘싱크 넥스트’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인다.
이 실험은 무대 밖으로도 확장된다. S씨어터 앞에 조성된 야외 라운지 <우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공연이다. 한국 전통주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칵테일 바, 예술가와의 토크, 인사이트 강연, 크리에이티브 체험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공연 관람 전후, 관객은 휴식과 대화를 넘어 또 다른 ‘예술’을 경험한다. 여기서는 무대 위 작품이 가진 여운이 시각과 미각, 지식으로 이어진다. 문화비평지 <HABO>와 함께하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의 강연, <미스테리아> 북토크, 예술가의 창작 과정 공유 등은 이곳만의 차별화된 문화감각이다.
고전 예술도 여름의 감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소리섬>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시대별 아리랑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국악기의 앙상블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를 품으며, 전통이 시대를 따라 숨쉬는 방식을 보여준다. ‘우리 소리’의 결을 따라 음악적 여정을 떠나는 이 공연은 국악의 품격을 지닌 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전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여름 가족음악회>는 온 세대를 위한 대표 합창공연으로, 친근함과 공감을 무기로 여름의 하루를 음악으로 물들인다.
클래식 입문자를 위한 공연도 준비됐다. <누구나 클래식> 시리즈의 일환으로 열린 <김정현의 해설 클래식–라흐마니노프와 피아노>는 해설과 연주가 어우러진 감성 중심의 무대다. 김정현의 해설과 신창용의 연주, 박근태 지휘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무대를 함께 채운다. 공연은 관람료 선택제와 ‘행복동행석’을 도입해 문화 접근성을 넓혔다. 누구나, 부담 없이, 클래식을 느끼는 진정한 ‘누구나 클래식’이다.
무용 역시 거대한 감정을 몸으로 전한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종묘제례악을 모티브 삼아, 절제된 미학과 현대 무대기술을 교차시킨 대표작이다. 뉴욕 링컨센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이 작품은 이번 공연에서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브랜드 ‘희녹’과 협업하여, 공연장의 향기와 시각까지 디자인한다. 탈취 정화수 ‘더 스프레이’를 활용한 공간 체험, 리허설 필름 공개 등은 관객의 몰입을 공연장 밖에서도 이어지게 한다.

서울시발레단은 <유회웅×한스 판 마넨>을 통해 동시대 발레의 첨단을 보여준다. 유회웅의 <노 모어>는 초연부터 매진을 기록하며 동시대 감정과 몸의 움직임을 절제된 안무로 풀어냈고,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최영규가 직접 무대에 오르는 <5탱고스>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형태로 소개된다. 국내외 예술가들이 한 무대에서 교차하는 이 더블 빌은 컨템퍼러리 발레의 미학을 집약한 공연이자, 무대 언어의 확장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도심 밖에서는 동화가 여름을 물들인다. 꿈의숲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어린이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와 음악극 <흥부전과 별주부전>은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으로 구성됐다. 아이들은 참여형 공연으로 직접 노래하고 움직이며 무대를 체험하고, 부모는 익숙한 전래동화와 국악의 조합 속에서 잊었던 감정을 회복한다. 클래식과 국악이 공존하는 음악극은 지역 거점 공연장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확인시킨다.
그리고 광장에서는 여름의 마지막 감동이 준비된다. <8.15 Seoul, My Soul>은 서울광장에서 광복의 의미를 뮤지컬 갈라 형식으로 풀어내며, 광화문광장의 <세종썸머페스티벌>은 거리 위에서 펼쳐지는 열린 댄스 무대다. 무대와 일상의 경계는 사라지고, 서울의 여름은 예술이 된다.
이 여름, 가장 감각적인 피서는 무대 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