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폭발했다." 지난달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벌어진 전동킥보드 화재 사고를 목격한 주민의 말이다. 새벽 2시경, 복도에 세워놓은 킥보드에서 갑작스럽게 연기와 불꽃이 튀었고, 삽시간에 화염이 벽을 타고 오르며 현관문까지 집어삼켰다. 대피는 늦었고, 화재는 인명 피해 없이 진압됐지만 집 일부가 전소됐다. 문제의 원인은 충전 중이던 리튬이온배터리였다.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 등 퍼스널 모빌리티가 도심 곳곳을 누비면서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도 잠시, 배터리로 인한 화재 사고가 일상 속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리튬이온배터리 관련 화재는 총 678건 발생했고, 그중 전동킥보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70%에 달한다. 2020년 98건이었던 배터리 화재는 2024년 117건으로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단순한 기계 결함이 아니라 사용자의 충전 습관, 보관 방식, 배터리 품질에 따른 복합적 결과”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많은 사용자가 배터리에 대해 무지하거나, 위험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고출력·고밀도를 장점으로 하지만, 충격이나 과열, 과충전 시 폭발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KC인증이 없는 배터리나 호환 충전기는 내부 회로 안정성이 떨어지고, 통전이 불균형하게 이루어져 발열이 극심해진다. 특히 시중에 유통 중인 저가 배터리 중 상당수는 방전 및 충전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공급되며, 일부는 온라인 직구를 통해 해외 직수입된 ‘검증 불가’ 제품인 경우도 많다.
더 큰 문제는 충전 습관이다. 많은 이들이 외출하거나 취침 중 전동킥보드를 충전한 채로 방치하고 있으며, 화재 발생 시 초기 대피가 불가능할 만큼 빠르게 확산된다. 복도나 현관 근처에서의 충전은 대피로 자체를 불길로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환경에서는 배터리의 자체 발열에 외부 온도가 더해져 과열이 더욱 가속화된다. 소방청은 현재 전국적으로 화재위험경보 ‘경계’ 단계를 유지 중이며, 전열기기와 멀티탭 사용 시에도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사용자가 실천할 수 있는 화재 예방 수칙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배터리나 충전기는 반드시 KC 인증 제품을 사용하고, 충전 완료 후에는 즉시 전원을 차단해야 한다. 타는 냄새가 나거나, 배터리 외형이 부풀고, 지나치게 열이 발생하면 즉시 사용을 중단하고 전문가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충전은 통풍이 잘 되는 서늘한 공간에서 가연물과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현관이나 계단, 방화문 근처는 절대 금물이다.
또한,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폐기 과정에서도 화재의 위험이 따른다. 단자 부분을 절연테이프로 감싼 후 지자체의 폐전지 수거함이나 정식 회수 채널을 통해 폐기해야 한다. 일반 쓰레기로 버릴 경우 수거·운반 중 충격에 의해 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전국에서 벌어진 리튬이온배터리 화재 중 상당수가 폐기 중 혹은 운반 중 사고였다. 무분별한 폐기는 결국 또 다른 재난의 씨앗이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리튬이온배터리는 원리적으로는 안전하지만, 관리 부주의와 잘못된 사용 습관이 그 장점을 모두 무력화시킨다”며 “기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태도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배터리 하나, 플러그 하나, 충전기 하나가 화재를 일으키고,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시대. 전동 모빌리티의 편리함은 그 자체로 축복이지만, 동시에 책임이 따라야 한다. 오늘 당신의 충전 습관은 안전한가. 완충 후 플러그를 뽑는 것, 그 작지만 확실한 행동 하나가 화재를 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