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황금빛 자작나무 숲이 너울거리고, 겨울이면 은백색 설원 위에 2만 마리의 말떼가 달린다. 목줄을 푼 대자연, 인간 손길이 닿지 않은 극상의 풍경이 사진가들을 부른다. 이곳은 ‘패상’으로 불리는 울란부통. 중국 내몽고 자치구 적봉시 커스커등기 울란보통진에 위치한 홍산군마장이다.


패상이라는 이름은 원래 중국 현지 지명은 아니었다. 2008년, 한 한국 사진작가가 이곳을 촬영해 성남시 사진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국내 사진계에 ‘패상’이라는 애칭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 공모전에서 이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줄줄이 수상하면서 사진계 안팎에 ‘패상 열풍’이 일었고, 지금은 ‘중국 출사 성지’로 통한다.


울란부통은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거대한 박물관이다. 청나라 강희제 시절, 준가르 칸국이 신장 이리 지역에서 침입하자 이곳 울란부통에서 대규모 전투가 세 차례 벌어졌다. 이 전투 끝에 준가르 국가는 역사에서 사라졌고, 이후 울란부통 일대는 군사 전략지로 개편되었다. 때문에 지명도 대부분 전쟁과 관련된 단어다.



‘장군포자’는 청나라 대포 수천 발이 쏘아진 전장 중심부였고, ‘공주호’는 청나라 공주가 전사한 남편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서린 호수다. 12개의 좌영(營)이 실제로 있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은 현재도 ‘군마의 본진’이라 불릴 만하다. 북경군구 소속의 2만 마리 군마가 이곳에서 방목되며, 계절과 관계없이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말들은 낮에는 드넓은 초원을 누비고, 밤에는 외부인 접근이 제한된 고지대 마장에서 관리된다. 말 떼가 들판을 가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영화적이다. 말이 일제히 달릴 때, 지면은 진동하고 하늘은 먼지로 흐려진다.


울란부통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무대이자, 역사 드라마의 중심지다. 중국 내 대표 드라마 ‘삼국연의’, ‘공자’, ‘한무제’ 등 100여 편의 작품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대규모 말 떼를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지역은 울란부통 외에 거의 없다. CG가 아닌 실제 장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감독들과 촬영감독들이 이곳을 찾는다.




사진가에게 이곳은 낙원이다. 사진 포인트만 해도 20여 곳 이상. 일출과 일몰이 동시에 가능한 언덕지대, 광활한 자작나무 숲, 붉게 타오르는 해와 역광으로 드리운 말 떼의 실루엣까지. 또한 군마 외에도 야크, 양, 낙타가 함께 방목되며, 계절에 따라 다양한 조합의 피사체가 등장한다.



가을의 울란부통은 특히 아름답다. 자작나무가 노랗게 타오르고, 풀을 뜯는 양 떼와 말 떼, 현지 몽골족의 게르가 초원을 수놓는다. 해질녘, 붉은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떨어질 때, 수증기 자욱한 풀밭 위로 말 한 마리가 실루엣처럼 걸어 나오는 장면은 사진가들에게 최고의 한 컷이 된다.


겨울엔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 된다. 기온이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혹한 속, 말의 콧김은 뿜어져 나오고, 입 주변엔 고드름이 맺힌다. 황량하지만 숭고한, 그야말로 눈으로 쓰는 시 한 편이 된다.

현지엔 패상 이외에도 ‘비공개 사막 촬영지’가 있다. 호텔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 아직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이 사막지대에선 낙타 촬영이 가능하다. 오전과 오후, 사막 지형을 배경으로 한 낙타 행렬, 인물 실루엣, 모래언덕 역광 장면 등 인상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울란부통의 숙소는 대체로 촬영지와 가까우며, 촬영 일출·일몰에 모두 대응 가능하다. 고도 차가 큰 곳도 있지만 대부분 차량으로 접근 가능하며, 숙소에서 새벽에 바로 출발해 해 뜨기 전 도착할 수 있다.
출사 여행으로 이만큼 다양한 피사체, 계절의 색, 역사적 맥락, 광활한 자연을 담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패상은 더 이상 비밀의 땅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없는, 시간과 자연과 인간의 흔적이 중첩된 ‘사진의 무릉도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