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은 더 이상 석유만의 영역이 아니다. 이제는 나무에서도 플라스틱 원료를 뽑아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나무 속 ‘리그닌’을 바이오플라스틱의 핵심 소재로 활용하는 신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산화촉매분획(Oxidative Catalytic Fractionation, OCF) 기술을 적용해, 목재에서 리그닌 단량체를 고순도로 추출하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리그닌은 셀룰로오스와 함께 목재를 구성하는 3대 성분 중 하나로, 식물 세포벽을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불균일해 대부분은 발전소에서 연료로 소각돼 왔다. 그나마 일부만 콘크리트 혼화제나 접착제 등으로 활용되는 수준에 그쳤다.

 

산화촉매분획 기술의 특징
산화촉매분획 기술의 특징

 

이런 리그닌에 주목한 국립산림과학원은 새로운 공정 기술로 **‘고부가가치 방향족 화합물’**로 탈바꿈시키는 데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존 열분해 방식은 리그닌 구조를 무차별적으로 깨뜨려 복합적인 부산물이 많이 남는 데 반해, 이번 기술은 선택적 분해를 통해 순도 높은 단량체, 특히 바닐린계 물질을 선별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바닐린계 화합물은 단순히 향료로만 쓰이지 않는다. 에폭시수지, 폴리우레탄, 폴리아크릴레이트 등 대형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쓰이며, 이들 산업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된다. 즉, 리그닌 단량체는 석유계 원료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천연 방향족 화합물인 셈이다.

 

리그닌 단량체 기반 친환경 화합물 생산 예시
리그닌 단량체 기반 친환경 화합물 생산 예시

 

기존의 플라스틱 산업은 화석자원에 기반해 탄소 배출과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어 왔다. 반면, 산림에서 유래한 리그닌을 원료로 삼을 경우, 재생 가능한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탄소 중립적 생산체계 구축이 가능해진다.

이 기술의 핵심은 단순한 소재 개발을 넘어, 목재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완전 액상화해 자원을 100% 활용하는 점이다. 찌꺼기 없이 고순도의 물질만 남기 때문에 추후 공정의 단순화와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유원재 국립산림과학원 임산소재연구과 연구사는 “리그닌 단량체는 석유 화학산업의 대체재로,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며, “목재 기반 산업의 지평을 확장하는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이중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향후 실증 단계에서 생산 효율과 품질을 높이고, 국내 목재산업 및 바이오플라스틱 기술과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플라스틱의 미래가 나무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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