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도 넘는 고열과 구토, 설사. 감기와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된 병이 열흘도 안 돼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농사를 짓는 평범한 일상이 어느 순간 치명적인 감염병 노출로 바뀌고 있는 현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농업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전파되는 감염병, 즉 인수공통감염병은 최근 농업과 축산 현장에서 새로운 ‘직업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질병관리청,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동국대학교와 공동으로 ‘슬기로운 인수공통감염병 예방 가이드’를 제작해 전국 농업 현장에 배포했다.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종합 안내서로, 농사로(www.nongsaro.go.kr), 농업인안전365 누리집에서도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이번 가이드에는 농촌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 위험이 높은 4종의 인수공통감염병이 포함됐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큐열, 브루셀라증,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AI)이 그것이다. 공통점은 치료제가 없고 감염원 대부분이 가축, 진드기, 분변 먼지 등 일상적인 농작업 환경 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가장 주의할 질환은 SFTS다. 이 질병은 SFTS바이러스를 가진 참진드기에 물리면 감염되는데, 특히 제초 작업이나 임산물 채취 과정에서 노출되기 쉽다. 물린 뒤 1~2주 안에 38~40도의 고열, 오심, 구토, 설사 증상이 나타나며, 백혈구와 혈소판이 급격히 줄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국내 치명률은 18.5%. 즉, 5명 중 1명은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큐열은 소, 양, 염소 등 반추동물의 분변, 양수, 태반에 존재하는 큐열균(Coxiella burnetii)이 말라 비틀어진 먼지로 바람을 타고 코나 입으로 들어가며 감염된다. 대부분 발열, 근육통 등 일반적인 증상으로 시작되지만, 조기에 진단받지 못하면 심장 내막염이나 만성 간염으로 진행될 수 있다. 감염자의 약 5%는 만성질환으로 악화된다.

브루셀라증은 감염된 가축의 혈액, 태반, 소변이 상처 부위나 눈, 입에 닿을 경우 전파된다. 가축 분만 과정, 폐사 가축 처리 시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감염 위험이 높다. 증상은 발열과 오한, 두통, 관절염 등 다양하고, 중추신경계나 심장을 침범할 경우 생명 위협까지 이어질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은 감염된 닭이나 오리, 야생조류와의 직접 또는 간접 접촉으로 전염된다.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농장 근로자, 계사 청소, 분변 처리자 등이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38도 이상의 발열, 기침, 인후통과 함께 결막염이 동반되며, 전파력이 강한 H5N1형 등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폐렴으로 진행돼 치명적이다.

문제는 이들 감염병이 공통적으로 상용화된 예방 백신이 없고, 감염 후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결국 사전 예방만이 유일한 대응책이다. 농촌진흥청은 모든 농업인에게 농작업 시 반드시 긴 옷과 장갑, 마스크, 고글 등의 개인보호구 착용을 습관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진드기 기피제 사용, 작업 전후 샤워, 작업복과 일상복 분리 세탁 등도 실질적인 감염 차단 효과가 있다.

예방 가이드는 농업인뿐 아니라 농업기술센터, 수의사, 방역 담당자 등 현장 관계자들의 교육 자료로도 사용될 예정이다. 총 13종의 인수공통감염병 가운데 농업과 직접 관련된 4종을 중심으로 감염 경로, 주요 증상, 예방 수칙, 이상 증상 발생 시 대응 방법 등을 영상, 소책자, 강의자료로 구성했다. ‘농사로’와 ‘농업인안전365’에서는 언제든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축산 농가에서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브루셀라증 등이 의심될 경우 즉시 **가축전염병 신고전화(1588-4060, 1588-9060)**로 신고해야 한다. 농업인이 본인의 건강에 의심 증상을 느낄 경우, 병원 또는 보건소 방문 시 반드시 농작업 이력, 동물 접촉 여부 등을 의료진에 알리는 것이 신속한 진단의 열쇠다.

농촌진흥청은 “고령화로 인해 감염병에 취약한 농업인의 생명을 보호하려면 개인 차원의 예방수칙 준수와 더불어, 농촌 보건체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며 “농업은 생존의 산업인 만큼, 방역도 생존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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