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자연재해 극복 흔적이 담긴 ‘영천 청제비’가 국보로 승격됐다. 이 비석은 단순한 석물에 머물지 않고, 고대 국가가 자연과 맞서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우고 토목 기술을 어떻게 운용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기록물이다.

국가유산청은 19일, 기존 보물이었던 「영천 청제비」를 국보로 지정하고, 조선 궁중 행사를 형상화한 병풍과 불교 관련 목판 등 6건을 보물로 추가 지정했다고 밝혔다.

영천 청제비는 경북 영천의 저수지 ‘청못’ 옆에 세워진 신라시대 비석으로, 홍수와 가뭄 같은 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제방 축조와 수리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축조비에는 536년 법흥왕 시기 큰 제방을 처음 완공한 사실과 공사 규모, 동원 인력, 책임자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수리비에는 798년 원성왕 때의 수리 작업과 경과보고까지 상세히 담겼다. 하나의 자연석 앞뒷면에 시기를 달리한 비문이 새겨진 점은 고대 석비로는 매우 희귀한 사례로 평가된다.

 

 

더불어 조선 숙종 때 청제비를 다시 세운 ‘청제중립비’도 함께 보존돼 있어,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해당 유산이 어떻게 인식되고 관리됐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이들 비석은 원래 위치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글씨체 또한 신라 특유의 자유롭고 예스러운 서풍이 살아 있어 고대 서예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이날 보물로 지정된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은 조선 영조 시기, 인원왕후의 회갑을 기념해 경복궁 옛 터에서 거행된 과거시험 ‘정시’의 장면과 왕이 지은 어제시, 신하들의 연구시를 담은 8폭 병풍이다. 정치적 안정과 인재 등용을 상징하는 장면이 병풍 속에 세밀하게 담겨 있으며, 경복궁의 주요 구조물 묘사 등 당시 궁궐 공간에 대한 시각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또한, 세종대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자치통감 권81~85』 역시 보물로 지정됐다. 주자소에서 초주갑인자로 인쇄한 이 책은 세종 18년까지 편찬된 역사서의 일부로, 군주가 정사를 참고하던 필수 고전이다. 현전하는 유일본으로서 희소성이 매우 크다.

경북 청도 운문사 소장 목판 4건도 이번 보물 목록에 포함됐다. 1515년부터 1588년 사이 제작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목판」,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목판」, 「치문경훈 목판」은 모두 완질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당대 고승들이 교정 및 집필에 참여해 문헌적 권위와 함께 조형적 완성도도 높다. 특히, 이 목판들로 인출한 책이 함께 전해져 원자료로서도 사료적 가치가 인정됐다.

국가유산청은 “지자체와 소유자 등과 협력해 지정 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과 활용 방안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국보·보물 지정은 단순한 문화재 보존을 넘어, 과거의 국가 운영 시스템, 자연 재해 대응력, 문화 예술의 집대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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