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 화려한 조경 대신 죽은 나무와 버섯, 이끼가 자리잡았다. 지나치기 쉬운 풀 한 포기와 작디작은 곤충까지 품은 이곳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다. 살아있는 정원, 생태계가 작동하는 ‘서식처 정원’이다. 인간 중심의 정원을 넘어, 생명 중심의 전환이 시작됐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제안하는 새로운 도시 생태 전략이다.

‘서식처 정원’은 자연 생태계를 축소한 실험실이다. 겉으로 보기엔 정돈되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고사목과 낙엽은 수북이 쌓여 있다. 하지만 그 틈 사이로 곤충이 기어가고, 이끼가 뿌리를 내리며,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쉰다. 인위적 관리를 최소화한 이 정원은 오히려 더 역동적이고, 더 생명력 있다.

이번 정원은 국립수목원이 ‘2025년 보급형 모델정원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것이다. 정원문화 확산을 목표로 지난 수년간 다양한 주제의 실험적 정원을 선보여온 국립수목원은, 이번에는 진주시에서 열리는 ‘2025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를 무대로 ‘서식처 정원’을 공개했다.

 

서식처 정원 / 산림청 국립수목원
서식처 정원 / 산림청 국립수목원

 

국립수목원은 그간 ‘선의 정원’, ‘정원 한 스푼’, ‘숲을 품은 정원’, ‘폴리네이터 가든 G,ate’ 등 다채로운 모델정원을 통해 정원의 개념을 확장해왔다. 이번 ‘서식처 정원’은 이 중에서도 가장 생태적 접근이 강한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기존의 전시 중심 정원에서 벗어나, 생물다양성을 중심에 둔 지속가능한 공간을 구현한 것이다.

특히 ‘서식처 정원’은 빛의 세기, 습도, 토양 성분에 따라 서로 다른 생물종이 공존하도록 설계되었다. 다양한 자생식물들이 주요 식재 요소로 활용됐고, 이끼, 돌, 버섯, 고사목 등의 비식물 소재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단지 식물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식물들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은 ‘관리 에너지의 최소화’다. 생태적으로 조화된 식재 방식과 물순환 구조, 인간의 개입이 적은 환경 설계는 기후 변화와 도시 열섬 현상 속에서도 자생적으로 유지되는 정원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관수나 인공 시비 없이도 유지되는 이 정원은 정원 유지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이 정원은 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진주 초전공원에 존치된다.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시민 누구나 언제든 찾고 생태를 체감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공공정원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공간과 생태, 인간의 관계를 다시 묻는 이 실험적 정원이 향후 도시계획과 공공조경의 방향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립수목원 전시교육연구과 배준규 과장은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정원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화려함이 아닌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정원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도심 속 자연 회복력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서식처 정원은, 인간 중심 조경에서 생명 중심 생태계로의 전환을 향한 작지만 강력한 한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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