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다발을 감춘 비밀금고, 명품가방이 가득한 고가주택, 은행 VIP 금고에 숨겨진 골드바. 세금을 낼 능력이 있음에도 납부를 회피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누려온 고액 상습체납자들이 국세청의 촘촘한 추적조사망에 포착됐다.

국세청이 지능적인 은닉 수법으로 세금을 회피한 고액상습체납자 710명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재산추적조사에 돌입했다. 이들 중에는 위장이혼으로 배우자에게 재산을 넘긴 뒤 함께 생활하는 경우부터, 종교단체나 친족에게 재산을 기부해 징수를 회피하거나, 법인의 배당을 악용한 사례까지 다양하다.

체납자의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체납 발생 전후로 부동산을 일가족 명의로 넘겨 명의신탁하거나, 수입을 차명계좌로 돌리는 식이다. 현금과 고액 수표, 귀금속 등을 은행의 대여금고에 보관하는 방식도 많았다. 일례로, 사채업으로 얻은 막대한 이자수입을 고스란히 금고에 숨긴 체납자는 현장 수색을 통해 적발되기도 했다.

 

배낭 속에서 발견된 금괴
배낭 속에서 발견된 금괴

 

해외 원정도박에 빠진 이들도 있다. 도박장 인근 고급호텔에 장기 투숙하며 현금을 인출하고, 고가의 명품백을 구입하는 등 생활은 호화롭지만 세금은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일부는 자녀 명의로 고급주택을 임차한 뒤 자신은 주소지를 허위로 등록하는 등 위장전입까지 시도했다. 수색 결과, 이들 주거지에서는 롤렉스 시계와 귀금속, 고액 현금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압류 물품 
압류 물품 

 

국세청은 이들에 대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실거주지 분석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잠복, 탐문, 수색 등 현장징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위장이혼 등을 통한 재산은닉에 대해서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명의신탁 재산에는 소유권말소등기 소송을 제기해 강제환수에 나섰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는 이미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국세청은 은닉재산 추적을 통해 총 2조8천억 원을 현금 징수하거나 채권으로 확보했다. 현장 수색만 2,000건 이상, 민사소송 1,000건 이상이 이뤄졌고, 체납처분 회피에 가담한 423명이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고액 체납자에 대해서는 명단공개, 출국금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대응할 계획이다. 세무서 내 추적조사전담반을 확충하고, AI·빅데이터 기반의 분석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체납자 포착 정확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특히 해외에 은닉된 자산까지 추적하기 위해 국제공조를 본격 추진하고, 내부 직원의 자발적 제보를 유도하는 징수포상금 제도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생계형 체납자나 경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납세자에 대해서는 체납액 분납, 납부지연가산세 면제, 압류 유예 등의 세정지원을 강화해 자립을 도울 계획이다.

‘조세정의’는 결국 성실납세자들이 느끼는 형평성에서 출발한다. 국세청의 이번 조치는 탈세를 일삼는 체납자들에게는 강력한 경고이자, 억울한 납세자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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