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오래된 고택 하나가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역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조선 후기 명신 류정원의 숨결을 간직한 '안동 전주류씨 삼산고택'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된 것이다. 3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이 고택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견디며 기억을 품은 산 증인이다.
삼산고택의 기원은 1693년, 조선 숙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정원의 부친 류석구가 지었고, 이후 그의 아들 류정원이 이곳에서 학문에 매진했다. 류정원은 조선 후기 대표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사도세자의 스승이었으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11차례나 언급한 ‘모범 지방관’이었다. 그가 남긴 『역해참고』, 『하락지요』 같은 저술은 유학 발전의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고택 안마루에는 그런 류정원을 영원히 기리는 '향불천위' 신위가 모셔져 있다.

고택의 건축미 또한 돋보인다. 경북 북부지방 전통 가옥의 전형인 ‘ㅁ’자형 뜰집을 기반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별동으로 배치되어 내·외 공간 구분이 뚜렷하다. 팔작지붕의 안채는 대청과 안방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지역 일반 구조와는 차별점을 보이고, 시기별로 지어진 좌우익사와 중문채는 다양한 평면적 실험의 결과물이다. 수장재 또한 보존 상태가 우수해 조선 후기 반가의 건축적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고택은 단지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 출신 후손들 중 10여 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해 국권 회복을 위해 몸을 던졌다. 고택의 역사와 정신이 그대로 민족의 정신사로 이어졌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국가유산청은 고택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나갈 방침이다.
삼산 류정원이 바라본 세 개의 산봉우리처럼, 고택은 학문과 충절, 그리고 저항의 상징으로 남아 후손에게 쉼 없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이 고택이 품은 정신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