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보이지 않는 거리’를 세계 최초로 수치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성과를 넘어, 양자기술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돌파구로 평가된다. 연세대 김근수 교수팀과 서울대 양범정 교수팀이 공동으로 고체 내 전자의 ‘양자거리’를 직접 측정한 것으로, 지금껏 이론적으로만 접근 가능했던 양자 상태 간 유사성을 실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초연구사업(리더연구, 선도연구센터) 지원 아래 수행됐으며,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6월 6일(현지시간 5일)자로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양자거리 측정 개념도.(제공=연세대학교 김근수 교수)
양자거리 측정 개념도.(제공=연세대학교 김근수 교수)

 

‘양자거리’란 미시세계 입자들이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를 수치화한 물리량이다. 전자의 양자 상태가 완전히 같으면 거리는 0, 전혀 다르면 1로 나타난다. 이 값은 양자 컴퓨팅이나 양자 센싱에서 연산의 정확도를 평가하거나 상태의 변화를 감지하는 핵심 변수다. 그러나 그간 고체 물질 속에서 이 값을 직접 측정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번 연구는 그런 난제를 처음으로 해결한 성과다. 공동 연구팀은 실험과 이론 양 측면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존 간접 측정 방식을 넘어서 ‘직접적’이고 ‘정량적’인 양자거리 측정에 성공했다. 서울대 양범정 교수 연구팀은 MIT와의 협업을 통해 양자거리 이론 연구에 깊이를 더해 왔으며, 연세대 김근수 교수 연구팀은 ARPES(각분해광전자분광) 기술을 정밀화하면서 물질 실험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졌다.

연구는 구조가 단순한 물질인 ‘흑린’을 실험 모델로 채택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서울대 연구팀은 흑린의 전자들이 가지는 위상차(phase difference)를 기반으로 양자거리를 정의할 수 있다는 이론을 확립했고, 연세대 팀은 이를 실제 실험에서 증명해냈다. ARPES 실험에서 편광된 빛을 이용해 전자의 위상차에 따른 신호 변화를 분석한 결과, 흑린 속 전자들의 양자거리를 정밀하게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위상차는 같은 파장을 가진 두 파동의 최대 진동 지점 간의 간격을 말한다. 미시세계의 전자는 파동적 성질을 띠기 때문에, 위상차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곧 양자 상태를 수치화하는 열쇠가 된다. 이 원리를 실험적으로 구현해낸 것이 바로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양 교수와 김 교수는 “정확한 거리 측정이 건축물의 안정성 확보에 필수인 것처럼, 오류 없는 양자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양자 상태 간의 정확한 거리 측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번 성과는 향후 양자컴퓨팅, 양자 센싱, 양자암호 등 다양한 양자기술의 기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이론과 실험이 단절돼 있던 양자물리 연구의 경계를 허문 전환점이자, 실용적인 양자기술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측정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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