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고요한 숲속, 두밀령 깊은 산중에서 한 송이 난초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고귀한 생명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었다. 사람들은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정작 그 꽃이 살아남기 위해 거쳐야 했던 시간과 환경, 그리고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를 아는 이는 드물다. 공식명칭은 ‘복주머니난’. 난초과 복주머니난속에 속하는 이 꽃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 두밀령 자락. 해발 고지의 숲은 쉽게 사람을 허락하지 않는다. 촬영 장비를 둘러멘 채 몇 시간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그곳. 그것은 마치 사라진 고서를 들춰보다 우연히 발견한 진귀한 문장의 조각 같았다. 줄기는 곧게 서 있고, 전체에 부드러운 털이 덮여 있으며, 꽃은 홍자색으로 반쯤 열린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약한 들꽃 같지만, 사실 이 꽃은 땅속의 균류와 기생공생 관계를 맺지 않으면 자랄 수 없는 까다로운 생물이다. 이 말은 곧, 이곳이 아니면 이 꽃은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복주머니난은 5월에서 7월 사이에만 꽃을 피운다. 한 줄기당 1송이, 길이 4~6cm 크기의 꽃이 고요하게 핀다. 꽃잎의 형태는 정말로 개의 생식기처럼 보일 수 있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과거에는 ‘개불알란’ 또는 ‘소오줌통’ 같은 명칭으로도 불렸다. ‘복주머니’라는 완곡한 표현이 뒤늦게 붙었지만, 이 꽃이 인간에게 감정적 거리감으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이 꽃이 이름만 이상한 것도 아니다. 자생지 근처에서는 특이한 향이 퍼진다. 단순한 꽃향기가 아니라, 마치 동물의 소변 냄새처럼 불쾌한 자극이 섞인 향이다. 이것은 특정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생물학적 전략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생존을 위해 꽃이 선택한 방식이다. 우리는 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을 ‘이해할 준비’ 없이 ‘소유’하려 든다.

실제로 많은 등산객들이 이 꽃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다 채취를 감행했고, 일부는 상업적으로 판매하거나 원예용으로 이용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 시도 대부분은 2~3년 내에 실패로 끝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주머니난은 특정한 땅, 특정한 기후, 그리고 그 속의 미생물과 곰팡이, 그리고 그 미생물들이 만들어주는 토양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흙, 물, 온실이 있어도 복주머니난은 자생지를 벗어나면 죽는다.

이 꽃은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오직 숲과 공생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존재로 인해 숲은 점점 줄어들고, 그 숲에 살던 복주머니난은 이제 거의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양구 인근, 백담사 주변, 광릉숲 등지에서도 꽤 자주 목격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고, 사람의 눈에 띄는 순간 생존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그만큼 민감하고, 고귀하며, 보호받아야 할 생명이다.

복주머니난은 단지 ‘희귀한 난초’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이며, 우리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경고등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두밀령에서 피어 있는 몇 송이의 복주머니난은 이 숲이 아직 살아 있다는,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암시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예쁜 꽃, 사진 한 장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이번 취재는 우리가 숲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로 남기고 싶었다.


복주머니난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침묵의 언어는 강렬했다. 숲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안의 꽃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 우리는 과연 그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