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사문화의 정수를 담은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유산 ‘등재 권고’ 의견을 공식 통보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재 보호를 넘어, 한국인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세계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조명을 받는 순간이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산 울주군 일대에 위치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아우르는 단일 유산으로, 약 6천 년에 걸쳐 새겨진 선사시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래사냥 장면부터 인간과 동물의 형상까지, 한반도 남동부 해안가를 삶터로 삼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반영한 이 암각화들은, 학계와 예술계에서 독창성과 예술성 모두를 인정받아 왔다.

이코모스는 이번 평가에서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 등재 기준 중 인간의 창의성이 담긴 걸작(기준 ⅰ), 그리고 사라진 문화 전통의 독보적인 증거(기준 ⅲ)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사실적 묘사와 독특한 구도, 희소한 주제를 담은 이 암각화는 단순한 선사시대 기록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창조적 진화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는 설명이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이미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렸으며, 국가유산청은 올해 1월 공식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후 이코모스의 현장 실사와 문서 심사를 통과하면서 세계유산 등재의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등재 여부는 오는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번 등재가 확정되면 한국은 총 17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이는 문화유산 15건, 자연유산 2건으로 구성되며,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내 암각화 유산으로서는 최초의 세계유산이 된다. 문화유산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선사시대 인간의 삶과 예술을 세계적 맥락 속에서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 최종 등재까지 남은 절차에 대응하기 위해 지자체 및 관계 부처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현장 보존과 가치 제고를 위한 조치를 지속하겠다”며 적극적인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한국의 고대 유산이 또 한 번 세계사 속에서 그 가치를 드러낼 순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