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돌담길이 천천히 살아난다. 오랜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인 그 거리 위로 봄의 빛이 스며들고, 그 빛을 따라 한복이 걷는다. 돌담 너머 고풍스러운 기와와 붉은 벽돌의 건축물이 배경이 되고, 꽃과 나무가 무대를 감싼다. 서울 도심의 일상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정지되는 순간, 덕수궁길이 패션쇼 런웨이로 변신한다.
서울시는 오는 5월 2일, 정동 덕수궁길에서 ‘2025 서울패션로드@정동’을 개최한다. 서울 도심의 공공 공간을 시민과 함께 즐기는 런웨이로 만든 ‘서울패션로드’ 프로젝트의 세 번째 무대다. 석촌호수, 뚝섬한강공원에 이은 이번 장소는 서울 근현대사의 중심지인 정동이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원형로터리 분수까지 이어지는 거리 전체가 런웨이가 되며, 도심 속 역사문화지구가 패션의 무대가 되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된다.

정동은 단지 오래된 길이 아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정동제일교회, 구 러시아 공사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등 각기 다른 시대의 기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런 배경 위로 전통한복의 우아함과 현대적 디자인이 어우러진 신 한복 스타일이 입혀진다. 그 결과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역사와 창조가 교차하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이 된다.
이번 패션쇼에는 국내 대표 한복 브랜드 네 곳이 참여한다. 자연의 색과 여백의 미를 담은 ‘서담화’는 조화롭고 담백한 한복의 미학을 선보인다. ‘기로에’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K-패션을 지향하며, 정제된 전통미와 도시적 감각을 조화시킨다. ‘꼬마크’는 젊은 세대를 위한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전통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한복스튜디오 혜온’은 소재와 실루엣에서 실용성과 세련됨을 동시에 드러낸다. 네 브랜드는 각자의 시선과 해석으로 한복의 현재와 가능성을 무대에 펼친다.
패션쇼는 단순히 옷을 입은 모델이 걷는 장면이 아니다. 음악이 함께하고, 감성이 깃든다. 공연 시작과 끝에는 뉴코리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현장 연주로 무대를 채운다. 클래식 왈츠와 익숙한 K-드라마 OST가 섞이며, 거리 전체가 시간의 서사로 물든다. 낮에는 봄햇살이 모델의 발끝을 따르고, 저녁에는 조명이 돌담과 한복을 은은하게 감싸며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서울시는 이번 쇼를 낮과 밤 두 회차로 구성했다. 오후 4시, 저녁 7시, 동일한 내용의 쇼지만 빛의 작용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과 감각이 연출된다. 도심 속, 거리 위에서 경험하는 이색적이고도 감각적인 장면. 모델뿐 아니라 시민 역시 그 공간의 일부가 된다. 패션과 서울, 그리고 시민이 함께 만드는 공공형 문화 프로젝트다.
현장 관람은 4월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패션로드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회차별 300명씩 총 600명이 선정되며, 당첨자에게는 4월 29일까지 초청 문자가 발송된다. 행사 당일 현장에서는 초청 문자를 확인한 후 입장 팔찌로 교환해 입장하게 된다.

이번 서울패션로드는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펼쳐지는 ‘2025 서울스프링페스타’와 연계해 열린다. ‘경이롭고 다채로운 경험(Make Wonders)’을 테마로 한 이번 축제는 서울의 주요 도심 공간을 문화와 예술, 감각과 체험으로 가득 채운다. 그 중심에서 서울의 전통미와 현대미를 동시에 보여줄 패션쇼가 덕수궁길에서 열린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행사 당일 덕수궁길(대한문~회전 교차로)은 자정부터 오후 10시까지 차량이 전면 통제된다. 오직 사람과 패션만이 존재하는 거리로 변모하는 하루, 도시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서울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서울시 경제실장 주용태는 “덕수궁길은 돌담과 역사 건축물들이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소”라며 “한복과 정동의 조합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적 깊이를 드러내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시민은 관람객이자 장면의 일부이며, 패션은 이 도시에 대한 새로운 감상의 도구가 된다.
빛과 그림자, 전통과 창조, 고요함과 음악. 덕수궁길은 5월의 중심에서 다시 서울을 이야기한다. 이 패션쇼는 단지 옷이 걷는 무대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가 스쳐 가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