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방음벽이 이제 단순한 소음 차단 기능을 넘어, 시민의 생명과 도시의 얼굴을 지키는 ‘안전+디자인 복합시설’로 탈바꿈한다. 국토교통부가 4월 18일 각 지자체와 도로관리청에 배포한 ‘도로 방음시설 설치계획 가이드라인’은 그간 늘어난 교통소음 민원과 방음벽 설치 수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첫 종합지침이다.

최근 10년 사이 교통소음 민원은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3년 750건이던 민원 건수는 2023년 1,455건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방음벽 설치 길이도 1,373km에서 1,556km로 증가했다. 방음시설은 소음을 막지만, 도시 미관을 해치고 화재에 취약하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왔다. 특히 아파트나 주거지 인근에 높게 세워진 방음벽은 폐쇄감을 유발하며, 지난해 발생한 방음터널 화재사건은 방음시설 전반의 안전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됐다.

이에 국토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방음시설 설치 전 단계에서부터 환경적·심리적·재난 안전까지 고려한 설계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저소음 도로포장과 같은 대체 수단을 우선 적용해 방음시설 설치 자체를 최소화할 것을 권고하고, 설치 시에도 방음벽 높이를 최대 15m 이하로 제한했다. 이는 도로 이용자와 지역 주민 모두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방음벽 주변 녹지공간 조성 예시 : 방음벽의 인공적인 이미지 완화 등 쾌적한 환경 조성
방음벽 주변 녹지공간 조성 예시 : 방음벽의 인공적인 이미지 완화 등 쾌적한 환경 조성
방음시설 시점부, 종점부 미관 처리 예시 : 여유부지 활용 유연한 시각적 흐름 유도
방음시설 시점부, 종점부 미관 처리 예시 : 여유부지 활용 유연한 시각적 흐름 유도

 

둘째, 주거지 밀집 구간이나 입체도로 구간 등 화재 취약 구역에는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재 또는 준불연재를 사용하도록 하였고, 방음시설 길이가 길 경우 화재 확산 방지구역을 50m 이내 간격으로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실제로 기존 방음터널이나 방음벽은 불이 한 번 붙으면 확산 속도가 빠르고 탈출구가 없어 위험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셋째, 방음시설의 디자인과 환경성도 대폭 개선된다. 학교, 병원, 산업단지 등 시설 주변 특성에 따라 조망권 확보, 자연 채광 도입, 녹지 공간 조성 등이 설계에 포함되며, 특히 방음림을 적용해 인공적인 이미지를 완화하고 도심 내 미세기후 조절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방음벽의 시점부와 종점부 처리 방식도 개선돼 시각적으로 더 유연한 흐름을 유도할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단순히 방음 성능을 높이겠다는 차원을 넘어, 도시의 소음·재난·심미적 문제를 동시에 해소하려는 첫 설계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국토부는 도로관리청 및 설계 관계자들이 본 가이드라인을 현장에서 적극 반영하도록 유도하고, 국민 누구나 정책자료 게시판(https://www.molit.go.kr)에서 전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도로는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도시의 신경망이자 생활공간이다. 그 공간을 감싸는 방음시설이 안전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할 때, 시민들의 일상은 더욱 쾌적해지고 도시는 조용한 품격을 갖추게 된다. 방음시설, 이제 기능을 넘어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이치저널(each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