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현수막이 마대자루, 장바구니, 우산, 심지어 벤치와 테이블로 변신하고 있다. 한때 단 몇 주간 거리를 장식하다가 쓰레기봉투로 직행하던 현수막이, 이제는 지역의 자원순환 구조를 바꾸는 핵심 재료로 재조명되고 있다. 현수막의 ‘인생 2막’을 여는 이 변화의 중심에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그리고 민간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업 시스템이 있다.

지난해만 해도 전국에서 폐기된 현수막은 6,130톤에 달했다. 이 중 재활용된 것은 1,817톤으로 29.6%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년 대비 전체 발생량은 줄고 재활용률은 3.7%포인트 상승하면서, 자원순환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고 있다는 신호를 보이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환경부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제2회 폐현수막 자원순환 문화조성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지자체와 민간기업의 협업 사례를 발굴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이 경진대회는 올해 공공기관까지 참여 대상을 넓히고 시상 규모도 대폭 확대했다.

 

 

현재 전국 75개 지자체는 자체 조례를 통해 현수막 재활용을 제도화하고 있다. 특히 파주시는 2023년 12월 전국 최초로 친환경 현수막 소재 사용과 재활용을 의무화한 조례를 제정하며 제도적 변화를 이끌었다. 이 조례는 다른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관련 조례 제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충북 진천군은 관내 기업과 협약을 맺고 수거된 폐현수막 1만 8천여 장으로 공공건축물에 설치할 벤치와 테이블 72세트를 제작했다. 광주 서구는 광주 신세계백화점과 협업해 어린이 안전우산 250개를 만들었고, 이를 지역 초등학교 6곳에 기부했다. 대전 동구는 수거된 7만8천여 장의 현수막 전량을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부직포로 가공해 전량 재활용하는 성과를 냈다. 이처럼 지역 맞춤형 사례가 곳곳에서 탄생하고 있으며, 이는 현수막 재활용의 실질적 가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2024년 경진대회 수상작 중에서는 파주시가 행정안전부장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경기도와 롯데마트는 민관협업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롯데마트는 점포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을 지역 전통시장에 기부할 벤치와 무대 패널로 가공해 골목상권과의 상생 사례로 주목받았다.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지자체에 재정과 기술을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2024년에는 전국 75개 지자체에 총 14억 원의 예산이 집행되었고, 이 재원을 바탕으로 장바구니·앞치마 등 25만여 개, 마대자루 약 69만 개가 제작됐다. 또한, 환경친화적 소재로 제작된 현수막도 2만7천여 개에 달한다. 행정안전부는 한국옥외광고센터 및 한국자원경제연구소와 함께 '환경친화적 현수막 사용 및 재활용 지침서'를 제작 중이며, 이는 전국 지자체에 배포될 예정이다. 이 지침서에는 수거 방법, 지역별 재활용 업체 현황, 가공 기술, 그리고 우수사례 등이 포함돼 보다 체계적인 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폐기물로 여겨졌던 현수막이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환경과 경제를 함께 살리는 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이 더욱 속도를 내기 위해선 단순히 조례를 만드는 것을 넘어 지역 내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기술 기반의 재활용 시스템 확장이 필요하다. 폐현수막은 단지 ‘버려진 것’이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이 가능성이 구체적인 성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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